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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수요일

“최순실 부친 최태민씨 목사 아니야 ” 언론보도 줄이어

최순실 부친 최태민씨.
국민일보가 25일자 미션라이프에 ‘최태민씨 목사 아니다…정통교단서 안수 받은 적 없어’ 기사를 보도한 후 최씨를 지칭할 때 목사 호칭을 쓰지 않는 언론매체가 늘고 있다. 

 중앙일보는 26일자 신문을 통해 최태민씨에 대해 목사 호칭을 쓰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 신문은 6면 기사에 “최태민씨는 목사 안수를 정식으로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목사라는 호칭은 쓰지 않고 씨로 표기합니다"라는 편집자 주를 달았다.

 경향신문도 이날 ‘여적’이라는 칼럼에서 “기독교계가 최씨는 목사가 아니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그가 1975년 4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란 교단이 존재했는지 확실치 않고, 있었다 해도 사이비 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독교계는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최씨에게 목사 칭호를 붙이는 건 부적절하며 선량한 목회자들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어 “중앙정보부가 국정을 농단한 혐의로 최씨를 조사한 문건 등을 볼 때 그가 신학대학이나 교계에서 인정받은 신학교에서 교육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재판에서 ‘최태민은 사이비 목사’라고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계가 억울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고 밝혔다. 

 헤럴드경제도 "기독교계는 최태민 씨는 목사가 아니었다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가 1975년 4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란 교단이 존재했는지 확실치 않고, 있었다 해도 사이비 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기독교계는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최태민 씨에게 목사 칭호를 붙이는 건 부적절하며 선량한 목회자들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최태민씨라고 지칭했다.  

아시아경제도 “ 최태민 역시 기존의 기독교 교단에서 정식으로 안수를 받은 적 없는 사이비 목사다"라고 보도했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최태민과 다섯째 부인 사이서 태어난 최순실… 국내외 재산 수천억說

[최순실의 국정 농단]
최순실(60)씨는 고(故) 최태민씨의 다섯째 딸이다. 최태민씨는 다섯 명의 부인과의 사이에서 3남 6녀를 두었다.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장남을,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 딸과 아들을, 셋째 부인과의 사이에는 딸을 낳았다. 넷째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아들을, 다섯째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최순실 등 딸만 넷을 두었다. 최순실씨는 1982년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대구 출신 김모씨와 결혼했다가 4년 만에 이혼했다. 후에 최태민씨의 비서출신인 정윤회씨와 1996년 재혼해 딸 정유라씨를 낳았다. 정씨와도 지난 2014년 5월 이혼했다.
최순실씨는 친모(親母)가 낳고 키운 자매 넷과 각별히 지냈다고 알려져 있고, 재산도 이들에게 집중돼 있다. 네 자매 가족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수천억원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순실씨가 정윤회씨와의 이혼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공식 재산만 365억원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7층 건물 200억원, 신사동 4층 건물 85억원, 역삼동 대지 30억원, 시세 40억원 정도의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대형 음식점 부지, 강원도 평창 땅 7억~10억원 등이다. 그러나 독일 등 해외 재산 등을 합치면 실제론 수천억대 자산가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최씨의 동생인 최순천씨는 가구·외식사업이 주업인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 대표를 맡고 있다. 최순천씨의 남편 서모씨는 국내 유명 유·아동복업체인 서양네트웍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500억원이었다. 이들 부부는 서울 한남동 고급 아파트 외에, 강남 노른자위 땅에 1300억원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최씨의 언니 최순득씨 역시 서울 도곡동 고급 빌라 외에도 삼성동의 7층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최씨, 20代부터 朴대통령의 말벗·분신 역할… 언니라 부르기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
- 朴대통령과 최순실의 40년
朴대통령 멘토였다는 최태민이 1970년대 중반 딸 순실 소개
朴대통령이 명예총재로 있던 새마음봉사단 대학생 회장 맡아
2006년 유세 중 '커터칼 테러' 때 崔가 병원 드나들며 일처리
2012년 대선 직전까지도 비선조직 신사동팀 깊이 관여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崔가 朴대통령 의원 시절 추천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인연'의 시작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씨는 20대 초반부터 네 살 많은 박 대통령의 '말벗'이자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이후 박 대통령 후광을 빌려 자신의 활동 범위와 사업을 확장해왔다. 박 대통령이 두 동생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박 대통령 주변 생존 인물 가운데 가장 끈끈하게 얽힌 최측근은 최씨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시절 정신적 멘토였다는 고(故) 최태민씨 소개로 1970년대 중반 최씨의 딸 순실씨를 만났다. 최씨는 자신이 세운 단체 '대한구국선교단'에 박 대통령을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이후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꾸며 조직을 급속히 키웠다. 최씨는 새마음봉사단에 중·고교·대학생은 물론 종교계·재계 등을 모아 각종 산하 기구를 만들었는데, 1979년 단국대 재학 중이던 딸 순실씨에게 대학생 총연합회장을 맡겼다. 새마음봉사단은 국민 정신교육이나 봉사 활동도 했지만, 어물시장 운영권을 따내는 등 각종 이권 사업도 벌였다. 이때 대기업 총수·임원들을 불러 거액의 운영기금을 갹출했다고 한다. 당시 태평양을 시작으로 현대·동아·대농·쌍용 등 재벌들이 차례로 '새마음 직장 봉사대'에 참여했다. 현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기업 모금 방식과 유사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애 시절인 1979년 6월 10일 최순실(앞줄 왼쪽서 셋째)씨와 함께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열린‘제1회 새마음제전’에 참석해 웃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새마음봉사단 명예 총재와 새마음대학생 총연합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뉴스타파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박 대통령이 칩거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최씨가 1985년 재회 이후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불렀다는 목격담도 있다. 지난 2006년 박 대통령이 지방선거 유세 때 '커터칼 테러'를 당했을 때도 "최씨가 병원 입원실이나 삼성동 자택을 드나들며 필요한 일을 처리해줬다"는 얘기가 있다. 최근까지도 최씨가 청와대에 박 대통령의 옷·액세서리·여성용품 등을 챙겨 보낸 것은 수십 년 된 일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씨 역할이 단순히 '말벗'이나 '여자 수행원'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최씨는 1980년대 들어 박 대통령과 관련된 조직·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우선 1986년 박 대통령이 이사장인 육영재단 부설 유치원을 강남에 개설했고, 박 대통령이 삼양식품에서 넘겨받아 이사장을 맡은 '한국문화재단' 부설 연구원 부원장을 맡아 출판이나 장학사업 등의 실무를 맡았다. 서울 신사동에 있는 한국문화재단은 2002년 박 대통령이 잠시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탈당 선언문을 작성하는 등 비선(�線) 업무를 수행한 장소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대선 국면에서 해체되기 전까지도 박 대통령이 드나들어 일명 '신사동팀'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최씨가 실무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정계 입문을 전후해 최씨가 밀착 수행했던 정황은 정계에서도 극소수만 기억하고 있다. 한 인사는 본지에 "1994년 야인(野人)이던 박 대통령이 한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할 때 최씨가 따라오더라. 인터뷰 뒤 방송사 사장·국장 등 고위간부들과 식사 자리가 이어졌는데, 최씨가 배석해 깜짝 놀랐다. 그냥 수행비서면 그런 자리엔 합석할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된 뒤 의원외교 활동차 영국에 갈 때 당시 정식 보좌관이 아닌 최씨가 함께 왔다"며 "최씨가 영어를 꽤 잘해 통역도 했고, 박 대통령을 대신해 크고 작은 중요한 일들을 결정했다. 굉장히 자신감 있고 유능해 보였다"고도 했다. 한 여당 중진급 인사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최씨 가족과 함께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최씨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최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1996년부터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았으나, 부부 사이가 멀어지면서 정씨도 자연스레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나게 됐다고 한다. 최씨와 정씨 부부가 박 대통령 의원 시절 추천해 들인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보좌관 등은 현재도 청와대에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서 최씨는 '회장님'으로 불리면서도 공식 직책은 전혀 맡지 않았고, 다만 측근 남성들을 내세워 인사와 사업·자금 운용 등을 총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