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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9일 화요일

동선 짧아진 김정은…‘수소탄 실험’ 뒤 지방 발길 뚝 끊어

북한 김정은의 잠행(潛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주째 사저·노동당 청사만 오가
4~5㎞ 무력부 갈 때도 철통 보안
미국 지난주 스마트핵폭탄 공개
“고강도 무력시위에 긴장” 분석도
4차 핵 실험(지난 6일 함북 풍계리) 후 2주 가까이 공개활동이 사실상 중단된겁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동정을 추적하는 관계당국에 따르면 그는 현재 평양에 머물고 있습니다. 

중구역 창광동에 자리한 노동당 청사와 바로 옆 사저를 오간다는 건데요. 관영 선전매체가 보도한 김정은 동정을 살펴봐도 일치합니다.

‘수소탄 성공’에 기여했다는 핵 과학자들과의 기념촬영(11일 보도)과 국가 표창 수여 행사(13일 보도)가 모두 노동당 중앙위 사무실에서 열렸죠. 

사전 녹화 가능성이 높지만 1일 조선중앙TV로 방영된 김정은 신년사도 노동당 청사에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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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북한 선전매체들이 보도한 김정은의 인민무력부 신년 축하 방문 모습. [구글어스, 노동신문]
노동신문은 10일자에 김 제1위원장이 우리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를 축하방문했다고 사진과 함께 전했는데요.

정보 당국 관계자는 “집무실서 4~5㎞ 떨어진 무력부 청사를 철저한 통제 아래 잠깐 들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귀띔합니다.
 
지방의 군부대나 공장·기업소를 수시로 찾아다니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다는겁니다.

올들어 평양을 벗어난 김정은의 활동은 핵 실험 직전 북한군 대연합부대의 포사격 경기 참관(5일 보도)이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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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보 당국은 김정은의 집무실과 노동당 청사 등에 웬만한 포격에 견딜 특수 콘크리트 지하벙커가 갖춰진 것으로 파악합니다.

또 이 건물들 간에는 차량 이동이 가능한 지하 대피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는 겁니다.

인민무력부나 국가안전보위부 건물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요.

김정은이 유사시 긴급대피와 탈출이 가능한 시설에 머물며 대외활동은 자제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물론 핵 실험 직후엔 김정은이 평양을 비우기 힘든 상황도 생겼습니다. 

우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중국 등의 외교·군사적 대북조치에 대해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직접 보고받고 결정해야 하는 측면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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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집무·주거 시설이 몰려있는 평양 중구역 일반인 통제구역의 위성사진. [구글어스, 노동신문]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의 심상치않은 대북압박 움직임입니다. 워싱턴의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 강경한데요. 핵심 전략자산인 B-52 폭격기가 북한 상공을 관통하는 무력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고민은 깊을 수 밖에 없어보입니다.

 특히 지난주 미 국방부가 공개한 최신형 열핵폭탄 B61-12의 시험투하 영상은 김정은과 평양 지도부를 숨죽이게 했을 것이란 게 우리 정부 당국의 판단입니다.

무게 380kg의 오렌지색 탄두는 네바다 사막에 그려진 둥근 원 모양의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했는데요.

지하 45m미터 콘크리트 갱도의 가상 적 지휘부를 초토화 할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드러냈습니다.

이 실험은 지난해 말 북한의 핵 실험 징후가 포착된 직후 이뤄졌다고 합니다. 미묘한 공개시점을 두고 김정은 정권의 핵 도발을 억제·응징할 대북 맞춤형 핵무기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국도 이를 감추지 않고 있죠.

스마트 핵폭탄으로 불리는 B61-12를 두고 ‘반드시 보복받는다’는 인식때문에 북한의 전쟁의지를 개전(開戰)단계부터 꺾을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북한은 핵 선제 공격이나 전쟁시 전시 지휘부가 평양이나 북부 산간지역 지하벙커에 은신해 하게돼있는데요.

우리 군 관계자는 “통신감청이나 내부 협조자에 의한 정보인 휴민트(humint)등으로 파악해 지도부만 정밀타격하는데 최적화된 무기체계”라고 설명합니다. 폭발력을 제어할수도 있어 핵심 지도부가 있는 곳의 상황에 맞게 타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나 환경오염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는군요.

평양의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동정을 보도하면서 활동 시점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신변을 보호하려는 차원인데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엔 최고지도자의 동정을 구체적인 날짜와 함께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03년5월 미군 무인항공기가 탈레반 지도부의 지휘차량을 포격해 몰살당하자 상황이 달라졌죠. 그해 7월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군부대나 공장 방문 날짜를 감추기 시작했다는군요.
<기사 출처 : 중앙일보>

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北 평양 53층아파트 어떻게 지어졌길래..'최고수준' 자찬

수천가구 입주한 주상복합 추정…과학자·교육자 등 입주
북한이 최근 평양시내에 완공한 53층짜리 아파트를 '북한 건축물 중 최고 수준의 자랑거리'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있다.
최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등 북한 주요 매체들은 지난 3일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에서 준공된 53층 초고층 살림집(아파트)에 대해 "미래과학자거리의 상징 건물로, 수도 평양에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만한 또 하나의 선경거리가 생겨났다"고 치켜세웠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박봉주 내각 총리, 김기남·최태복·김양건 당 비서, 로두철 내각 부총리 등이 지난 15일 입주민의 가정을 방문하고 아파트 시설을 둘러본 것도 이 건물이 북한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주로 과학자와 교육자, 국가와 노동당 책임일꾼들이 입주한 이 아파트는 한 층에 6가구씩 살도록 시공됐다. 수천 가구의 살림집과 건물 단층에 150여 개의 상업·편의 봉사망(상업·서비스 시설) 등을 갖췄다고 밝힌 점으로 미뤄 주상복합시설로 추정된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휴식터와 농구장, 배구장, 배드민턴장 등 체육시설과 조경시설이 꾸며져 있다.
내부를 보면 원형으로 시공된 복도에 4대의 고속 승강기가 설치돼 맨 위층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출입문에서부터 시원하게 탁 트인 공동살림방(거실)은 반원형으로 된 베란다와 연결돼 있고, 공동살림방을 거쳐 부모방, 부부방, 자식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식방은 동심에 맞게 밝은 색을 바탕으로 하고 세로줄 무늬로 장식돼 온화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또 방을 비롯한 실내의 모든 공간에는 고급 가구와 비품들이 비치됐다.
특히 제일 높은 곳인 53층 살림집에서는 창문을 열고 아침 안개가 드리운 평양 수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꼭대기에는 높이 24m, 무게 40여t의 상징탑이 세워졌다.
궤도에 진입하는 위성 모양인 상징탑은 "마치 금시라도 지구를 세차게 휘감으며 힘차게 타오를 북한의 문명과 최첨단 과학의 거세찬 불길처럼 느껴진다"고 묘사됐다.
북한 매체들은 이런 훌륭한 주거시설에 교원과 연구사들이 돈 한 푼 내지 않고 손짐만 들고 오면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평양에서는 이 아파트가 건립되기 전에는 2012년 6월 평양 창건거리에 들어선 45층 아파트가 가장 높은 공동주택이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이름을 붙인 미래과학자거리에는 원자구조 모양의 과학기술전당을 비롯해 김책공업종합대학 자동화연구소, 기상수문국, 탁아소·유치원·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공공건물, 각종 편의 봉사망과 휴식터, 체육공원 등이 종합적으로 꾸려져 있다고 조선중앙TV는 설명했다.
북한 국가우표발행국은 지난 12일 53층 아파트 등을 포함한 미래과학자거리의 준공을 기념해 이 거리의 전경을 담은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11월 16일 월요일

반기문, 이번 주 北 평양 전격 방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번 주내에 북한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국내 일부 매체는 15일(현지시간) 유엔 고위 소식통을 인용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는 최초로 북한을 공식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아직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현재 반기문 총장의 평양행 일정에 대해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반 총장은 방북 시기는 이번 주중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기사 출처 : 머니투데이>

2015년 11월 9일 월요일

'확 달라진' 평양 도로…끼어들기에 중앙선 침범까지



방북자가 올린 유튜브 '평양 교통' 영상 눈길 (서울=연합뉴스) 자카 파커(Jaka Parker)라는 인물이 지난 5일 유튜브에 올린 '평양 교통'(Pyongyang Traffic) - 2015년 9월 26일'이라는 제목의 1분27초 분량의 영상에는 교통체증이 빚어지는 평양 시내 도로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더러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거나 중앙선을 침범하는 차도 있어 통행을 한층 어렵게 한다. 야광봉을 손에 든 채 교통정리를 하는 남성과 교차로 중앙에서 수신호를 하는 여경의 모습도 들어있다.

방북자가 올린 유튜브 '평양 교통' 영상 눈길

북한의 평양시내 도로에서 교통체증이 빚어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자카 파커(Jaka Parker)라는 인물이 지난 5일 유튜브에 올린 '평양 교통'(Pyongyang Traffic) - 2015년 9월 26일'이라는 제목의 1분27초 분량의 영상에는 평양 시내 도로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 있다.

자카 파커 씨는 "가족과 평양시내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영상을 찍었다"면서 "교통이 혼잡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방북자가 올린 유튜브 '평양 교통' 영상 눈길
그는 "오늘날 평양시내 교통은 2012년 처음 왔을 때와 매우 달랐다. 많은 자동차와 택시들로 붐볐다"며 3년 전에도 방북한 경험이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영상 속에는 차들이 시내로 들어가는 3개 차선 모두를 꽉 채워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보인다.

더러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거나 중앙선을 침범하는 차도 있어 통행을 한층 어렵게 한다.

야광봉을 손에 든 채 교통정리를 하는 남성과 교차로 중앙에서 수신호를 하는 여경의 모습도 들어있다.

도로 위의 자동차는 구체적으로는 식별되지 않지만 닛산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이 있고 워런 버핏이 투자해 유명해진 BYD, 화타이자동차 등 중국산 브랜드가 특히 많다.

방북자가 올린 유튜브 '평양 교통' 영상 눈길
영상은 평양 인민군교예극장 부근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도로변에는 북한의 인공기도 걸려 있다.

9일 오전 현재 이 영상은 1만2천500회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11월 3일 화요일

北 평양시 표기 확대…자체 OS '붉은별3.0'에도 적용



최근 방북 스코트 씨, 비즈니스인사이더에 관련글 기고

북한이 자체 개발한 컴퓨터용 운영체제를 포함해 전방위적인 '평양시간' 표기 확대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전 구글 직원인 윌 스코트씨는 비즈니스 및 IT 뉴스 웹사이트 비즈니스인사이더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자체 개발한 데스크톱 운영체제(OS) '붉은별 3.0'에 평양시를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스코트씨는 '붉은별 3.0'을 구입해 미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컴퓨터에 북한의 운영체제를 직접 설치해본 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북한은 '붉은별 3.0' 설치 중간과정에 시간대 설정의 옵션으로 '조선-평양'을 선택할 수 있게 해놨다. 

'붉은별 3.0'이 발표된 시점이 2014년 2월이고 평양시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올해 8월15일부터이므로 북한은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면서 평양시를 넣은 것으로 보인다.

'붉은별 3.0'은 오픈소스 OS인 리눅스를 기반으로 제작됐지만, 디자인은 애플의 OS X와 닮았다.

북한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최신 스마트폰 '평양타치'에도 이미 평양시를 반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문우 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은 "붉은별 3.0과 스마트폰 소프트웨어는 모두 조선콤퓨터쎈터(KCC)와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개발된다"면서 "이들 소프트웨어에 평양시를 반영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타치'에는 북한이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탑재돼 있지만 하드웨어의 모양 등은 한국 삼성전자의 갤럭시와 상당히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은 광복 70주년인 지난 8월15일 남한이 표준시로 사용하는 동경시 기준 0시 30분부터 평양시를 사용하면서 TV도 남한보다 30분 늦춰 방송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개성공단 출입경 시간을 평양시에 맞추라고 남측에 통보했으며, 최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평양시 기준으로 치러졌다.

애플도 지난 9월 자사 제품의 운영체제를 'iOS 9'로 업데이트하면서 평양시를 새롭게 반영했다.

북한은 평양시 제정이 "일제에게 빼앗겼던 표준시간을 되찾고 민족사를 바로잡는 애국애족적인 조치이자 과학적 견지에서 볼 때도 합리적이고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외국의 여러 전문가, 누리꾼들은 이러한 조치가 남북 동질성 회복에 지장을 가져오고 나아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여왔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10월 31일 토요일

"북한 당장은 아니지만 체제변형 과정서 붕괴 가능성"


켄 가우스 미국 해군연구소 박사가 자신의 저서 '북한의 하오스 오브 카드' 출간기념 설명회를 하고 있다.
미국내 북한리더십 전문가 켄 가우스 '북한의 하우스 오브 카드' 출간

북한 김정은 정권의 '수령 체제'가 한계에 달해 중추 세력의 변화가 불가피하며 이러한 과정이 결국에는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30일(현지시간) 미국 내 한 북한 리더십 전문가가 내놓았다,

켄 가우스 미 해군연구소(CNA) 켄 가우스 박사는 이날 워싱턴 D.C.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북한의 하우스 오브 카드-김정은 체제 하에서의 리더십의 역학' 출간 기념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북한 리더십 전문가인 가우스 박사는 "향후 2∼5년은 북한 정권에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김정은은 이 시기에 그의 권력을 공고화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정권 내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그 문턱을 넘어서게 되면 권력의 공고화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비록 다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북한 정권이 2∼5년 내 붕괴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정권이 기본적으로 명령의 리더십에 기반을 둔 수령체제로 작동하기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며 다른 체제로의 변형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체제에서는 권력의 중추에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는 다른 목소리들이 있을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북한의 기존 정치문화가 지탱하기에 엄청나게 힘든 체제로 이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가우스 박사는 "물론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연쇄적인 과정으로, 결국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그러한 과정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내년 5월초 노동당 제7차 대회를 연다고 밝혔는데 이는 정권이 빠르게 공고화 과정의 최종 단계로 향하고 있음을 적어도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문제는 비공식적으로 김정은이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가이며 이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밝혔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8월 31일 월요일

북한 고려항공 여승무원들 월간지 표지모델로 등장


북한 고려항공 여승무원들 월간지 표지모델로 등장 (서울=연합뉴스) 북한 유일의 국제항공사인 고려항공 승무원들의 '화사한 미소'와 '세련된 치장'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31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북한의 대외용 월간 화보 '조선' 9월호에는 다섯명의 여자 승무원들이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표지에서는 지난 2013년 바뀐 짙은 감색의 유니폼을 차려입고 왼쪽 가슴에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착용한 승무원들이 고려항공 여객기가 보이는 공항을 배경으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고 있다.
'화사한 미소·세련된 치장'…관광 활성화의 선봉대 

북한 유일의 항공사인 고려항공 여승무원들의 '화사한 미소'와 '세련된 치장'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31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북한의 대외용 월간 화보 '조선' 9월호에는 다섯명의 여자 승무원들이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지난 2013년 바뀐 짙은 감색의 유니폼을 차려입고 왼쪽 가슴에는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착용한 승무원들은 고려항공 여객기가 보이는 공항을 배경으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고 있다. 

짧은 치마와 까만 구두, 세련된 화장과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단장하고 화사한 미소를 띤 승무원들은 여느 나라 항공사의 승무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과거와 달리 세련된 모습의 북한 승무원들이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 당국이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항공 서비스 질 향상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2012년 7월 초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시찰하면서 "안내원(승무원)의 복장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잘 만들어주며 여객들에게 봉사하는 식사(기내식)의 질을 높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고려항공은 지난달 기내식을 서양식 '버거'에서 '김밥'으로 교체했다. 

평양의 '관문'인 순안국제공항도 지난달 깔끔한 현대식 신청사로 새단장했다. 

화보 '조선'은 순안국제공항에 대해 "모든 면에서 국제비행장으로서의 체모(모양새)를 완벽하게 갖춘 선군시대의 기념비적 창조물"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의 항공 서비스 질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영국의 항공서비스 전문 조사기관인 스카이트랙스는 전세계 600개 항공사의 비행기 노후화, 공항 탑승 편의, 기내 봉사 및 기내식 등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고려항공에 별 5개 만점에 최하위 등급인 별 1개를 줬다. 

스카이트랙스는 전체 평가 대상 항공사 중 '별 1개'는 고려항공이 유일하다며 "평가 영역 전반에 걸쳐 형편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5월 15일 금요일

“방글라데시 북한식당서 비아그라·술 불법 판매하다 적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한 북한식당이 비아그라와 술을 불법적으로 판매하다 당국에 적발됐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세관조사국과 경찰은 현지시간으로 어제 오후 다카 바나니의 '평양식당'을 수색해 비아그라 2백여 알과 불법 의약품, 위스키 등을 압수했다고 현지 영자신문 프로톰알로가 전했습니다.

또 이 식당 지배인인 북한 여성 1명이 체포됐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국가로 정부의 허가 없이 주류를 판매하거나 보관할 수 없습니다.

지난 3월에는 다카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는 1등 서기관이 금괴 등을 불법 반입하려다 공항에서 적발돼 추방되기도 했습니다.
<기사 출처 : KBS뉴스>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법원 '여호와의 증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




8년 만의 무죄 판결…2011년 헌재 합헌 불구 논란 '재점화'할듯

법원이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게 무죄를 선고해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이 다시 일 전망이다.

광주지법 형사 5단독 최창석 부장판사는 12일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A씨 등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사이의 조화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며 "기본권과 국민의 의무 등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경우 이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규범의 조화적 해석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방의 의무는 전시 전투원뿐 아니라 경찰 업무나 재해방지·수습 업무, 공익근무, 사회복무 등 대체복무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라며 "국방의무 이행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도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도 보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남북대치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연간 양심적 병역거부로 교도소에 복역하는 인원은 600∼700명가량으로 전체 입영 인원의 0.2%에 불과하고 대체복무 형태의 군 복무자는 매년 징병검사 인원 중 약 13%에 달해 군사력 저하 등을 탓하기도 어렵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A씨 등은 병무청으로부터 입영 통지를 받고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됐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선고는 200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 판결 이후 8년 만에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2004년 5월 서울남부지법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모두 유죄 판결을 했으며, 2004년과 2011년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는 지난 3월까지 모두 9천934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추산됐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4월 24일 금요일

'평창' 가려다 '평양'간 케냐인 "많은 사람 헷갈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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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 24일자 1면 / 사진=캡처
'평창'에 가려다 '평양'에 간 케냐인의 사연이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실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4일자 1면에 '올림피언, 한국말 주의'라는 제목으로 케냐 마사이족 다니엘 올로매 올레 사핏이 지난해 10월 평창에서 열린 유엔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평창’을 가려다가 처음에 '평양'에 도착했던 사연을 보도했다. 

사핏은 베이징에서 평창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탔는데 도착한 곳은 '평창'이 아닌 북한 '평양'이었다. 

사핏은 사핏은 북한 출입국 담당자에게 평양과 평창을 혼동했다는 사실을 설명한 후 베이징으로 되돌아 와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사핏은 몇시간 동안 북한 입국심사소에 억류됐고 항공비용 뿐만 아니라 무비자 입국 관련해 500달러의 벌금도 물어야 했다. 

사핏은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평양과 평창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내에는 외국인이 읽고 발음하기에 헷갈리는 지명이 많아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임정운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프랑스인 손님들이 오는데 택시 기사가 '선릉'을 '신풍'으로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도 이같은 어려움을 인식하고 개선 노력을 벌이고 있다. 2018년 열릴 평창올림픽을 대비해 평창의 영문명을 ‘Pyongchang’에서 ‘PyeongChang’으로 변경했다. 기존의 영문명이 ‘평양Pyongyang’과 비슷해서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환영사에서 "이곳 평창은 4년후 동계올림픽이 개최될 곳으로 '평양'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기사 출처 : 머니투데이>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새누리당 김진태, ‘조선일보’ 흔들며 “‘성완종 리스트’에 정신 파는 사이 태극기가 불타고 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1주년 범국민대회’를 거론하며 “‘성완종 리스트 정쟁’ 때문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태극기가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태 의원은 이날 범국민대회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이 태극기를 소각하는 사진이 실린 <조선일보>를 흔들며 “태극기를 불태운 것은 대한민국 국민을 불태운 것인데 이를 방치하면 이게 국가냐”라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했다. 

같은 당 김도읍 의원도 동일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고의적으로 불태우기 위해 태극기를 소지하고 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형법상 국기모독죄”라며 “검거하려 노력하고 있느냐”고 황교안 장관에게 물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철저하게 수사하도록 지도·감독하겠다”면서 “검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태극기를 불태우거나 찢으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에 처해질 수 있다. 단, 대한민국을 모욕할 의도가 있었는지가 확인돼야 한다. 미국에서는 1989년 연방대법원에서 성조기 소각을 금지한 텍사스주 법률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고, 2005년에는 성조기 소각 처벌 법안이 상원에서 부결됐다.

앞서 김진태 의원은 이달 초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비용 문제’ 등을 거론하며 세월호 인양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 남은 실종자 9명에 대해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고 했다가 가족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기사 출처 : 경향신문>

2015년 4월 4일 토요일

시아누크 국왕, 16번째 부인은 北 여성

[남]김정일 친위대 간부 출신의 충격 증언, 계속 이어집니다.

북한 김일성은 생전 시아누크 캄보디아 전 국왕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까웠는데요.

[여]시아누크 전 국왕이 북한에서 망명 생활을 할 당시 김일성이 나서 한 북한 여성과 결혼시켰고, 이 여성은 할아버지뻘인 국왕의 16번째 부인으로 살아야 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손효주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2012년 사망한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는 1970년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왕위를 뺏긴 뒤 북한으로 망명합니다.

실각한 국왕이었지만 김일성은 평양 인근에 '장수원'이라는 궁전을 지어주며 예우했습니다.

이후 시아누크는 정치적 위기때마다 북한에서 체류했는데 당시 한 북한 여성이 김일성 주선으로 할아버지뻘인 시아누크와 결혼했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습니다.

[인터뷰: 고일민 / 전 북한군 호위사령부 소좌]
"(북한 여성은)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이 거처하던 숙소(장수원)를 관리하던 관리원이었어요. 거의 손녀뻘인데 눈이 맞은 거죠. 그런 사실이 김일성에게 보고됐고… ."

증언에 따르면 시아누크의 마음을 알게 된 김일성이 직접 나서 두 사람을 결혼시켰고, 이 여성은 시아누크의 16번째 부인이 됩니다.

이 여성은 시아누크와의 사이에서 자녀도 낳았는데, 북한 당국이 이 여성과 가족들을 과거 시아누크가 머물던 장수원에서 살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인터뷰: 고일민 / 전 북한군 호위사령부 소좌]
"지금 장수원 초대소 영빈관에 그 여성이 살고 있고. 거기에 그 여성의 부모들도 와 있고… . 그 여성의 집처럼 돼 있죠.

시아누크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 역시 북한에서 주요 직책을 맡으며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기사 출처 : 채널A뉴스>

2015년 4월 2일 목요일

天池밑 10km 지점 마그마 가득… 수년째 ‘수상한 움직임’

韓中, 백두산 폭발대비 공동탐사

“백두산 현지 탄화목(화산재에 불탄 나무 화석)을 분석한 결과 백두산은 1076년 전인 939년 대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분석 결과는 일본의 역사 기록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홍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자원분석실장은 지난달 23일 제주 제주시 삼도동 오션스위츠호텔에서 열린 ‘한중 백두산 마그마 연구 워크숍’에서 탄화목 분석 결과를 처음 공개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을 이용해 탄화목에 남아 있는 탄소를 추적한 뒤 나무가 숯으로 바뀐 시기를 확인한 것이다. 탄화목처럼 과학적인 증거물을 통해 백두산 폭발 시기를 알아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두산은 일본 후지산, 미국 옐로스톤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화산으로 꼽힌다. 용암이 조금씩 흘러나오는 활화산보다 백두산처럼 땅속에 마그마를 잔뜩 품고 있으면서 화산활동만 멈춘 ‘조용한 화산’이 훨씬 위험하다. 언제든지 큰 폭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이 마지막으로 폭발한 건 1903년이다. 939년 대폭발을 일으킨 뒤 몇 차례 작은 폭발이 이어졌고, 약 1000년 뒤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939년 대폭발 당시 백두산 분화 규모는 7이었다. 이는 당시 분출된 화산재 양이 100km³에 이른다는 뜻인데, 이 정도면 한반도 전체를 5c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양이다. 1903년 폭발 때도 25km 높이까지 화산재를 뿜어냈다.

최근 수년간 백두산 근처에서 일어나는 조짐은 심상치 않다. 천지(天池) 2∼5km 깊이에서 화산 지진이 늘고 있고, 온천의 수온이 올라가는 등 화산 폭발 직전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학원은 1999년부터 백두산 곳곳에 지진파 탐지기 등을 설치해 두고 폭발에 대비하고 있지만 땅속 마그마의 움직임까지는 알 수 없어 결국 한중 공동탐사를 결정했다.

류자치(劉嘉麒) 중국과학원 원사(院士)는 “땅속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당장 수년 내 백두산이 폭발하리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마그마가 흐르는 지하의 지각구조를 제대로 이해해야 화산활동도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측 연구진은 마그마가 백두산 천지 10km 근방에 초고온 상태로 뭉쳐 있을 것으로 보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탐사를 벌인다. 우선 2017년까지 비파괴 검사를 통해 백두산 지하의 지질구조를 정교하게 확인한다. 어느 지점을 뚫고 들어가야 마그마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초음파 검사 장비와 땅속 전기저항을 측정해 지질 구조를 알아내는 ‘전기비저항토모그래프’ 장비 등도 동원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백두산 땅속 최대 12km 부근까지 입체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이 첨단 탐사 장비들은 모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자체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 시추공을 뚫고 마그마를 직접 꺼내는 작업은 2018년 이후 진행될 예정이다. 마그마는 지하 10km 근방에 있지만 주변부까지는 7km가량만 뚫고 들어가면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중 양측은 이 프로젝트에 일본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백두산은 대륙에 있지만 일본 열도와 관계가 깊다. 일본은 두 개의 큰 지각판이 부딪치며 화산활동을 통해 생겨난 섬이다. 이런 점에서 백두산은 일본 열도와 뿌리가 같다. 땅속으로 가라앉은 지각판이 400km 지하에서 수평으로 움직여 600km 떨어진 지점에서 솟아올라 백두산을 형성했다는 게 전문가 대부분의 의견이다. 울릉도도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났다.

이윤수 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북한과의 공동연구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중국과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 만큼 앞으로 한중일 3국의 공동연구로 발전시킨다면 충분한 과학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질자원연구원은 이를 위해 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중국지질조사소, 일본지질조사소 등과 함께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는 동북아 해저 지질구조와 백두산 재해 대응 공동연구 등이 논의된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2015년 3월 30일 월요일

"팬티까지 벗겨 쇠파이프로... 자살하려는 심정을 알겠더라"

[인터뷰] 고문피해자 임봉택씨... "지금도 자다 일어나 아버지 생각하며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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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봉택씨. 출어 준비가 끝난 자신의 배(성덕호) 앞에서
ⓒ 조종안

초등학교 졸업하던 해 주꾸미배를 타기 시작, 평생 어부로 살아온 임봉택(69)씨. 그는 1947년 전북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에서 둘째 아들(6남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별다른 직업이 없었고, 집안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끼니때 보리죽 먹기도 어려웠다.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지 체구도 왜소했다. 그럼에도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깡다구' 센 소년으로 성장한다. 

56년이 지난 지금, 주꾸미, 꽃새우 등을 잡는 성덕호(1톤) 선주가 된 임씨. 그는 '국가폭력 고문 생존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공안정국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2년 1월 초 수사기관에 불법 구금되어 물고문, 전기고문, 통닭고문, 잠 안 재우기 고문 등 온갖 가혹행위를 당한 것. 임씨는 또래에서 강골에 속하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려면 가슴과 목, 어깨 등이 쑤시면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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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군산군도에서 군산과 가장 가까운 개야도 전경
ⓒ 군산시

임씨 고향 개야도는 군산에서 20km 남짓 떨어진 고즈넉한 섬으로 산봉우리가 없는 게 특징이다. 1960, 1970년대 주민은 1000여 명. 한때는 어업 중심기지로 4~8월에는 삼치, 조기 파시가 형성되어 고깃배들이 몰려들었다. 당시엔 서해에서 조업하다 북한 경비정에 피랍되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다. 정권 연장을 위해 삼선개헌을 준비하던 박정희 정권은 1960년대 후반부터 귀환 납북어부들을 미필적 고의를 적용하여 처벌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개야도에서 광룡호(1960), 대덕호(1963), 승룡호(1967), 영창호(1968), 제5공진호(1968) 등이 납북됐다. 대표적인 남북어부 간첩조작사건은 '임봉택 외 2인의 반공법 위반사건', '서창덕 간첩조작 의혹 사건', '정삼근 간첩조작 의혹 사건'(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기록) 등으로 관련자 모두가 최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피해자와 참고인으로 경찰에 불법 구금되거나 조사받은 주민만 1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고문당하기 전에는 친구가 진짜 간첩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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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구금 되던 당시를 떠올리는 임봉택씨
ⓒ 조종안
대부분 어로작업이 근해에서 이뤄지던 1971년. 임봉택은 스물다섯의 청년 어부가 되어 있었다. 당시 서해안 어선들은 12월부터 휴어기에 들어갔다. 안강망 선원이던 임씨도 서울에 사는 사촌 누이를 만나기 위해 장항선 열차에 오른다. 호주머니가 두둑했던 그는 휘황찬란한 내온 불빛과 꿈같은 연말연시를 보낸다. 그리고 1972년 1월 초 은세계가 펼쳐지는 기차여행을 즐기며 군산에 내려온다. 죽음보다 징그러운 고문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군산에는 저녁 때 도착혔지. 사촌 형(임OO)이 제일극장 뒤에 살었는디 끗발이 좋았지. 보안대에 있었거든.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형수가 깜짝 놀램서 군산경찰서 형사들이 나를 찾으러 동기간 집들을 쑤시고 댕겼다는 거여. 무슨 일인지 궁금혀서 큰아버지에게 전화했더니 거시기 아들(박춘환)과 주고받은 거 없냐고 묻더라고. 그런 일 없었다고 혔지. 그럼 됐담서 내일 경찰서에 가보자고 허는디 깝깝혀 죽겠더라고. 저녁 먹고 오늘 가자고 혔지


박춘환은 내 친군디 납북어부(1968년 영창호)였어. 귀환해서 1년쯤 징역 살고 다시 어부생활을 혔는디 경찰이 잡아다 이북에서 가져온 불온서적 두 권을 어디에 감췄냐면서 조지니까 나하고 유명록이에게 한 권씩 줬다고 거짓 자백을 혔나벼. 나는 보안대에 있는 임OO와 친사촌이고, 유명록은 외가로 동생 되거든. 그러니까 잡혀가도 빽 좋은 사촌 형이 빼줄 것이다, 그렇게 통빡을 잡고 우리를 끌어들인 거여. 그때는 박춘환이가 진짜 간첩인 줄 알았다니까."

1971년 12월,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구실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이는 그해 10월 시울시 일원 위수령 발동과 무장군인 대학 상주에 이은 것으로 국민의 몸과 마음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소식이었다. '유신헌법은 독재다'라는 말만 해도 징역을 살았던 불안하고 살벌한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임씨는 경찰서 가는 게 무섭지 않았냐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섭기는, 방위 받을 때 소품이랑 건빵 받으러 드나들었거든. 아는 형사도 여럿 있었으니까. 경찰서 지하실(정보과)에 갔더니 마침 김 형사가 있어서 인사 혔드니 '응, 왔냐'고 허면서 앉으라고 허드라고. 큰아버지는 '잘 부탁헙니다'라고 인사하고 돌아가고. 김 형사가 이리저리 전화허고 조금 있으니까 형사 몇 명이 몰려오더라고. 그리고는 '이런 ×만 한 새끼가···'라고 하면서 머리카락을 잡아댕기고, 주먹질을 해대는디 아프기도 했지만 성깔이 솟더라고. 

전후 사정을 내가 어떻게 알어. 암시랑 않은 사람을 왜 때리냐고 대들었더니 '박춘환 사건을 몰라서 그러냐'며 쪼인트를 까더라고. 넘어졌다가 벌떡 일어나니까 옆에 있던 남궁OO 반장이 의자로 내 허리를 내려치는 순간 비명을 지르면서 시멘(트) 바닥으로 뒹굴었지. '이 새끼 엄살 부리네, 반절은 죽여놔야 헌다'면서 짓밟고 두들겨 패는디 숨도 못 쉬겠더라고. 그렇게 사정없이 당하니까 매에는 장사 없다고 힘이 빠지고 기를 펴지 못하겠더라니까···." 

'다 알고 있으니 불온서적 어디에 감춰뒀는지 실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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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봉택씨가 통닭고문 당시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 조종안

형사들은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를 신호로 녹초가 된 임봉택을 군산극장 뒷골목의 여인숙 골방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폭력과 회유로 허위자백을 강요한다. '다 알고 있으니 박춘환에게 받은 불온서적을 어디에 감춰뒀는지 실토하라'는 것. 그때부터 임씨는 경찰서와 여인숙을 옮겨 다니며 고문과 구타 등 온갖 가혹 행위를 당한다. 정신을 몇 차례 잃기도 한다. 

"하루는 '이 새끼 안 되겠다'면서 내 옷을 벗기더라고.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퉁퉁 부어 소매가 빠지지 않는 거여. 이놈(형사)들이 가위로 옷을 잘라내고 팬티까지 벗기더니 쇠파이프를 양 무릎에 끼고 포승줄로 묶어 책상 사이에 꺼꾸로 매달더라고. 그게 '통닭고문'이드만. 차라리 몽둥이로 맞는 게 낫지, 못 견디겠더라고. 째지고 부어터진 몸에 얼음물을 부으면 짜릿짜릿하면서 금방 죽겠는 거여.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 그때 알았다니까.  

밤낮으로 조지는디 정신이 없드만, 지금도 내 왼쪽 눈(망막)이 안 좋은 이유가 있어. 한번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니까 목이 심하게 마른 거여. 형사 두 놈은 한쪽에서 얘기 나누고 있고. 마침 구석의 바께쓰(양동이)가 보이더라고. 살짝 가서 바닥걸레가 담긴 그 더러운 물을 꿀꺽꿀꺽 마셨지. 그런데 형사 한 놈이 욕을 혀댐서 내 목을 몇 번씩 처박는 거여. 나는 반항허고, 그러다가 뾰쪽 나온 곳에 눈을 찔렸지. 그 형사 이름도 기억허는디, 지금은 다 죽었댜.  

하루는 저녁때쯤 유명록이 고문실에 왔더라고. 형사랑 함께 왔는디 들어오지도 않고 문만 빼꼼이 열고는 '야, 봉택아 내가 너한티 불온서적 한 권 줬잖여'라고 허는 거여. 그리고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형사가 데리고 가는디 미치고 환장하겠는 거여. 당장 때려죽이고 싶더라고. 나중에 그놈도 고문당허다가 나한티 뒤집어씌운 것을 알았지.  

유명록이가 왔다 가고 전기고문을 당혔는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함) 반장이 '야, 조지다 매'라고 허는디, 성기에 연결하라는 뜻이더라고…. 다행히 엄지발가락에 연결해서 고문을 당혔는디, 3~4회 정신을 잃고 나니까 '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고문을 또 시작헐라고 해서 '책 내놓겠습니다'라고 혔지. 군산은 금방 탄로 날 것 같아서 개야도 대숲에 감췄다고 혔지. 고문을 2~3시간이라도 안 당헐라고 지도까지 그려줬어.   

형사들이 개야도로 출발허고 얼마나 불안혔는지 몰라. 일어났다 앉았다.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더라고. 불안에 떨다가 개야도에 책 감춰뒀다는 말은 거짓이었다고 형사에게 털어놨지. 그랬더니 '이 새끼가 사람을 놀리네!'라며 경찰봉으로 막 후려치더라고. 그때는 나도 악에 받쳐 대들었지. '야이 새끼야, 나도 안 죽을라고 거짓말 혔다'면서 대들었더니 품에서 권총을 꺼내 '팍, 쏴 죽이겠다'고 겁주면서 문밖에 대고 '이놈이 미쳤다'고 소리치더라고. 

개야도에서 돌아온 남궁OO 반장이 내 옷을 홀랑 벗기더니 고문을 다시 시작하더라고. 얼마나 혹독혔는지 살갗이 찢어지고 눈에 불나는 것 같더라고. 몸을 지지는 것 같기도 하고….(호흡을 가다듬은 뒤) 내 몸에 세계지도처럼 그려진 상처들이 다 그때 고문경찰들 작품여. 엄지손가락이 이렇게 비틀어진 것도 고문 후유증이고. 말이니까 그렇지 그때를 생각허믄…. (눈물을 글썽임) 그놈들도 안 되겠는지 그 후로 작전을 바꾸드만."

전주 대공분실로 옮겨져... "순순히 자백 안 하면 너는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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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문 후유증으로 굽은 임봉택씨 엄지손가락
ⓒ 조종안

그 후 형사들은 임씨를 여인숙에 가둬놓고 박춘환의 자백이라며 '납북당했을 때 북에서 양주도 마시는 등 대접을 잘 받았다', '평양은 경치가 좋다', '북한은 트랙터로 농사를 짓는다', '흥남 비료공장은 질 좋은 비료를 많이 생산한다' 등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려줬다. 그리고 '박춘환의 북한 고무찬양을 듣지 않았느냐'고 가혹하게 추궁했다. 아무리 유도해도 임씨가 일관되게 "못 들었다"고 증언하자 잠 안재우기 고문을 가한다. 

"나중에는 내가 살아온 얘기를 자술서 식으로 쓰라고 하드라고. 지들은 한쪽에서 양담배 물고 화투만 치면서… 힘들게 써놓으면 읽지도 않고 찢어버림서 '야 이 새끼야 다시 써'라고 허는 거여. 그뿐인가. 바둑알을 섞어놓고 흰 돌과 검은 돌을 골라내도록 하면서 잠을 못 자게 허는디 죽겠더라고, 며칠 지나니까 정신이 흐려지고 몸이 이상해지더라고. '임' 자(字)를 쓰려면 간격도 안 맞고 동그라미가 두 개, 세 개로 보이는 거여. 도저히 못 하겠다고 뻗었더니 즈들끼리 상의를 하더라고. 그 다음 날인가 전주(대공분실)로 넘어갔지.

전주에서 2주쯤 조사받었는디 철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건물이었어. 그때부터 군산경찰서 형사들은 싹 빠지고 전주 형사들이 다시 시작혔지. 이튿날인가, 형사 한 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몸의 상처를 쓰다듬더니 '봉택아, 너 군산에서 많이 맞았구나, 자식들 사람을 왜 이렇게 때려'라고 하면서 어르고 달래드라고. 그리고는 자백하라고 하기에 대답을 안 했더니 '그려, 지금은 기억이 안 날거다'라며 밥도 주고, 잠을 자라며 이불을 덮어주더라고.  

하루는 형사를 따라 지하실(고문실)에 내려갔더니…. (놀라는 표정) 가죽채찍, 철봉에 매달린 수갑, 투구에 매놓은 전기선 등 얼마나 살벌헌지. 옆방에서 누가 고문당하는지 악쓰면서 자지러지는 소리까지 들리더라고. 겁에 질려 있는디 형사가 '우리는 네 몸에 손 하나 안 대. 대신 순순히 자백 안 하면 너는 죽어'라고 겁주는디 더는 버틸 수 없드라니까. 군산 형사들이 들려준 북한 이야기 중 10가지 남짓 써내고 반공법(불고지죄) 위반으로 구속됐지…." 

충격받은 아버지는 자살... "간첩 잡았다는 뉴스 보면 걱정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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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못 자니까 이름도 못 쓰겠더라고 말하는 임봉택씨
ⓒ 조종안
임씨는 "아무것도 모르던 섬놈이 형사들에게 북한의 관광지와 비료공장 위치 등을 배웠다"며 "그때 경찰들은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들었다"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의 구속 소식은 곧바로 개야도에 전해지고, 섬마을은 온통 술렁이기 시작한다. 납북어부 간첩 사건이 연중행사처럼 일어나고 그때마다 시달렸던 개야도 주민들에게 반공법은 저승사자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법. 임봉택이 간첩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충격을 받은 임씨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외면을 견디지 못하고 그해 이른 봄 자살한다. 임씨는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그해 12월 석방된다. 임씨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아버지 묘소. 아버지가 천명을 다하지 못한 것은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슬픔의 오열을 터뜨렸다.

그는 고향 사람들의 싸늘한 눈길을 피해 부산, 경상도 등지에서 어부생활을 계속한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자처럼 떠돌던 그는 나이 마흔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딸도 하나 두고 자그만 단독주택도 마련했다. 2006년 변호사 사무소에 근무하는 지인의 도움으로 진실을 규명. 2011년 3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어 억울한 누명도 벗었다. 2009년 6월에는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박춘환, 유명록을 만나 용서하고 회한의 눈물도 흘렸다. 

임봉택씨는 "온갖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한 뒤 불고지죄로 구속되어 옥살이했던 1972년 이후에는 TV에서 납북어부 간첩단을 일망타진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또 죄 없는 몇 사람이 걸려들어 고통당하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면서 "43년이 지난 요즘도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벌떡 일어나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린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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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얘기하다 눈물짓는 임봉택씨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