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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8일 월요일

구구단 적힌 1500년전 나무문서 발견

문화재재단 판독결과서 첫 확인
4년전 백제 사비성터 발굴 유물


구구단 목간 전면(왼쪽)과 숫자공식이 보이는 중간부분. 四(사)三(삼) 十二(십이:4×3=12)’ ‘四(사) 四(사) 十六(십육:4×4=16)이라고 쓰여있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곱셈 기초공식 ‘구구단’을 써넣은 1500여년 전의 백제 목간(나무쪽 문서)이 발견됐다. 한반도에서 처음 확인된 수학 공식을 써넣은 고대 문서이자 국내 최고의 수학사 관련 유물이다.

한국문화재재단은 16일 열린 한국목간학회 발표회에서 2012년 백제 사비성터인 충남 부여읍 쌍북리 일대의 옛 관청터를 발굴조사할 당시 나온 6~7세기께 목간들의 정밀판독 결과를 공개하고, 이들 가운데 1점에서 구구단 일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단 쪽 자료를 보면, 구구단 목간은 길이 30.1cm, 너비 5.5cm로 칼 모양이다. 전면에 희미하게 먹글씨로 쓴 수십여개 숫자들이 보인다. 재단과 학회 연구진이 판독한 결과 목간 맨 위와 중간 아래 부분에서 각각 ‘九(구) 六(륙) 五十四(오십사:9×6=54)’ ‘四(사)三(삼) 十二(십이:4×3=12)’ ‘四(사) 四(사) 十六(십육:4×4=16)’ 등의 구구단 공식이 확인된다. 이 목간은 맨위에서 9단 공식이 먼저 시작되고, 아래로 그보다 적은 숫자의 단으로 읽어내려가는 순서여서 오늘날과 정반대 순서로 구구단을 읽었음을 알 수 있다. 정훈진 연구원은 “애초엔 물품 수량 등을 적은 하찰로 봤으나, 정밀판독해보니 상하 네개 숫자를 한 단위로 삼아 구분선을 횡으로 긋고 공식을 되풀이하는 구구단임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학계는 확인된 구구단 목간이 옛 백제 관청터에서 나온 점으로 미뤄 관리들이 세금용 곡식의 수량을 재는 계산도구로 활용하거나 암기용 교재로 삼았을 것이란 추정을 내놓았다. 여느 목간과 다른 칼 모양이어서 계산 도구로 쓴 뒤 다시 깎아 제의용구로 재활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재홍 국민대 교수는 “삼국시대 선조들이 수학을 생활에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주는 획기적 유물”이라며 “백제인들이 구구단으로 숫자를 셈하면서 건축이나 측량에 활용할 만큼 상당한 수준의 수학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중국, 일본에서는 구구단 목간이 종종 출토된다. 중국 실크로드 유적인 신장위구르자치구 니야 유적과 간쑤성 거연 유적간에서 기원전 시기의 구구단 목간이 나왔고, 일본에서도도 7~8세기 옛 도읍 나라 등에서 출토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일본에선 이번에 부여에서 나온 구구단 목간과 비슷한 모양새와 내용의 목간이 출토된 바 있어 시기가 앞서는 백제 구구단 목간이 그대로 전래됐을 가능성이 크다. 
<기사 출처 : 한겨레>

2016년 1월 6일 수요일

신라 연못터 코앞에 건물지으며 발굴조사 안했다

유적 발견 불확실한 물리탐사 한 뒤
연못터와 2m 떨어진 거리에 건축
신라 저택터 등 묻힌 것으로 추정
문화재법상 시굴·발굴조사 해야


황룡사터 서쪽 외곽에 짓고있는 황룡사역사문화관. 건물 앞쪽의 컨테이너 가건물과 건축용 자재가 쌓인 공터 일대가 5년전 복토된 신라연못터다.
신라시대 연못터를 덮은 뒤 그 위에 지어진 것으로 드러난 경주 황룡사역사문화관 건립 과정(<한겨레> 4일치 26면 ▷[단독] 신라 연못터 확인하고도…그 위에 콘크리트 건물 지었다)에서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건립터 지하의 유적 여부를 확인하는 기본 발굴조사도 실시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5일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2010년 3~4월 황룡사터 서쪽 외곽의 역사문화관 건립터를 사전조사하다 장방형 연못터가 드러나자 유적에서 불과 2m 떨어진 북쪽 땅에 새 건립터를 잡은 뒤 사전 발굴조사 없이 지중물리탐사 결과만을 근거로 2013년 공사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에 관여했던 연구소 관계자는 “건물이 들어선 곳은 연못 발굴 당시 나온 흙을 쌓은 곳으로, 지중 물리탐사 결과 이런 퇴적물 때문에 지하 유적 실체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단 결과를 보고했으나, 문화재청 쪽은 이미 건립터가 정해졌다며 발굴조사를 생략하고 건립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문화재보호법상 유적지에 건물신축 등 현상변경을 하려면 땅속 유적 여부를 확인하는 시굴 혹은 발굴조사를 거치게 되어 있다. 문화재청 쪽은 이에 대해 “당시 발굴 자문회의에서 황룡사터 주변은 모든 곳이 유적이어서 발굴조사 뒤 검토는 불합리하므로 조사 없이 매트공법(지하를 파지 않고 짓는 공법)으로 건립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 문화재위원회 검토 아래 진행된 것으로 안다. 불법 여부는 모르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계는 연못터 북쪽인 현 건물 지하에 연못을 낀 정원시설터와 저택터 등 중요 유적들이 묻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 문화재위원인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국가사적 권역에서 발굴조사 없이 불명확한 물리탐사 결과만 내세워 건물을 신축한 것은 전례가 없는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문화재청은 전날 연못터 유적 위에 역사문화관이 건립됐다는 <한겨레> 보도에 대해 해명자료를 내어 연못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건립 위치를 변경해 별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추가 확인 결과 복토된 연못터는 신축 건물의 앞마당에 해당돼 유적 자체가 역사관 경내에 포함된다. 또 연못 북쪽 석축은 역사관 건물 남쪽 처마 경계선 안으로 약 2m나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연못터 바로 위에는 자재 야적장과 감리단 가건물 등이 들어차 토압에 따른 훼손도 우려된다.

5월 개관 예정인 황룡사역사문화관은 연면적 860여평의 콘크리트 2층 건물로, 애초 가건물로 문화재위원회 승인을 받았다가 다시 콘크리트 건물로 재승인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허가 경위를 둘러싼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기사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