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모기와의 전쟁 나선 싱가포르 2016.8.29 싱가포르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대량발생 지역인 알주니드 구역에 숙주인 이집트 숲모기 퇴치법을 설명하는 플래카드가걸려 있다. (AFP=연합뉴스자료사진) 태국 수도 방콕 중심가에서 최근 21명이 지카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11일 방콕포스트와 타이랏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환자 21명은 모두 주요 은행과 대사관, 고급호텔 등이 밀집해 있는 사톤(Sathon) 중심업무지구에서 발생했다.
방콕광역시(BMA) 등 관계 당국은 감염자들에게 30일간의 자택격리를 권고하는 한편 방코렘, 방락, 클롱터이, 파툼완, 야나와 등 주변 지역으로의 감염 확산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 확진자 중에는 임신 37주였던 임신부도 포함됐다.
완타니 완타나 BMA 부사무차관은 "이 여성은 싱가포르에 다녀온 남편을 통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열과 발진, 안구충혈 등 증상을 보였지만 무사히 출산을 마쳤다. 아기도 건강하다"고 말했다.
태국에서는 이달 초에도 치앙마이와 펫차분, 붕칸, 찬타부리 등지에서 모두 20여 명의 지카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해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린 바 있다.
한편, 지카 바이러스 대량 발병 사태가 발생한 싱가포르에서는 첫 지역 감염자가 나온 지 보름만인 10일까지 총 318명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ㆍ‘저가 수주 → 대규모 손실’ 교훈 ㆍ서로의 기술력 합쳐 공동 입찰 ㆍ‘싱가포르 지하철’ 공사 수주 ㆍ최저가 안 쓰고도 중국 제쳐 쌍용건설과 현대건설이 손잡고 싱가포르 지하철 공사를 수주했다.
최근 많은 건설사들이 해외사업 부문에서 대규모 적자를 보는 것은 국내 업체들 간에 벌어졌던 저가 수주경쟁의 후유증 때문이다. 이번 공동수주는 ‘국내 업체들 간의 해외사업 출혈경쟁→저가 수주→대규모 손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는 사례로 평가된다.
쌍용건설은 싱가포르 육상교통청이 발주한 도심지하철 308공구를 2억5200만달러(약 3050억원)에 수주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쌍용건설이 주간사로 75%의 지분을 갖고 현대건설(지분 25%)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따낸 것이다.
쌍용건설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2억5200만달러에 공동수주한 싱가포르 도심지하철의 내부 조감도. 쌍용건설 제공 쌍용건설과 현대건설은 현재 싱가포르 도심지하철 다른 공구의 공사를 각각 진행하고 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단독으로 입찰하면 국내 업체들끼리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지난해 4월 프로젝트 입찰 공고가 난 직후부터 양사가 협의를 시작, 지난해 9월 공동으로 입찰해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두 회사가 공동수주에 나선 것은 양사의 협조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쌍용건설은 현존하는 최고 난도 지하철 공사로 평가받는 싱가포르 도심지하철 921공구에서 세계 최초로 1600만인시(人時) 무재해를 달성하고, 2010년 이후 싱가포르 육상교통청에서만 24회의 수상실적을 보유하는 등 기술력과 안전관리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건설은 싱가포르 현지에 최첨단 터널굴착기계인 ‘TBM(터널보링머신)’을 보유하고 있으며,TBM공법의 기술력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번 프로젝트 입찰에는 중국 업체 2곳을 비롯해 스페인, 호주, 싱가포르 등에서 총 7개의 건설사와 컨소시엄이 참가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쌍용·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참가사들 중 최저가가 아닌 3위의 가격으로 입찰했음에도 타국 업체들을 따돌리고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과거 국내 업체들 간의 출혈경쟁으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해외공사를 수주했던 악습에서 탈피한 것이다.
2010~2011년 대형 건설사들은 국내 주택경기가 침체하자 일제히 해외사업에 ‘올인’했고, 중동 지역 등의 사업에서 국내 업체들 간에 저가·덤핑 수주경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적정 공사비보다 10~20%나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은 해외사업들이 속출했다.
출혈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의 후유증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해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해외사업 부문에서만 매년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대까지 적자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쌍용건설 해외영업 총괄 이건목 상무는 “이번 수주는 해외건설에서 국내 업체 간의 출혈경쟁이 아닌 협력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출처 : 경향신문>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사진은 시공 중인 잠실 롯데월드타워 114층(462m) 아래로 내려다본 서울 전경. 한강 너머로 해가 저물고 하늘이 얼굴을 붉히는 가운데 갖가지 희로애락을 실은 차들이 강변도로를 쉬지 않고 내달리고 있다. 그 길 끝에서 새로운 해가 우리를 기다린다. 삶은 멈추지 않는다. 2015.12.29 seephoto@yna.co.kr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로 선정됐다.
한국은 '2016 블룸버그 혁신 지수'에서 총점 91.31점을 받아 조사 대상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고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독일이 85.54점을 얻어 2위에 올랐고 스웨덴(85.21점), 일본(85.07점), 스위스(84.96점), 싱가포르(84.54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미국은 8위, 중국은 21위로 조사됐다.
세부 항목별로는 제조업 부가가치, 고등교육 효율 등 두 부문에서 한국이 1위에 올랐고 연구개발(R&D)과 첨단기술 집중도, 특허등록 활동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연구원 분포도에서는 6위로 조사됐다.
다만, 생산성 부문에서는 39위로 평가받아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는 동유럽 개발도상국인 슬로바키아(38위), 에스토니아(34위) 등 보다도 밀리는 순위다.
한국은 2014년 이래 3년 연속으로 이 조사에서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해는 2위인 독일과 격차를 6점 가까이 벌리며 최고 순위를 공고히 지켰다.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부소장은 "한국은 저임금의 중국과 기술적으로 더 발전한 일본 사이에 끼어 있다"며 "그래서 지금 같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감과 급박감 같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1949년 분단 뒤 66년 만에 양안 지도자 신분으로 처음 정상회담을 하기까지 중국과 대만은 애증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타도해야 할 철천지원수에서 경제협력 강화로, 이른바 ‘차이완’ 시대를 맞기까지 양안 관계는 변화무쌍했다. 이번 양안 정상회담 성사로 중국과 대만은 모든 면에서 한반도의 남북 관계 발전 속도를 앞질렀다.
국민당이 공산당에 쫓겨 대만섬으로 이주한 1949년 중국과 대만은 각자 정부를 수립했다. 장제스 대만 총통은 ‘삼민주의’에 기초한 통일 중국을 지향했다. 그는 대륙과의 접촉도, 협상도, 타협도 없다는 이른바 ‘3불 정책’을 고수했다. 중국 역시 공산당 정권 수립부터 1976년까지 사반세기의 마오쩌둥 집권 기간 내내 무력에 의한 대만 통일을 주장하며 위협을 가했다.
냉전 시기였던 1950년대 중국의 진먼다오 포격 사건은 양안 관계를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게 했다. 1954년 7월23일 “장제스 집단은 미 제국주의의 지지 아래 구차적 목숨을 부지하면서도 부단히 대륙에 도발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 반드시 타이완을 해방할 것이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사설은 당시 양안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은 1954년 9월 200여문의 야포에서 5000발이 넘는 포탄을 쏘며 1차 진먼다오 포격을 실시했다. 1958년에도 진먼다오에 47만여발의 포격을 가했다. 포격은 60년대 말까지도 수시로 이뤄졌다. 철저한 반공주의자 장제스와 토종 공산주의자 마오쩌둥의 성향이 그대로 양안 관계에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개혁개방의 설계자로 불리는 덩샤오핑이 중국의 실권을 잡고 대만에서도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 총통이 집권하면서 양안 관계는 개선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은 1979년 1월 통상, 통항, 통신의 ‘3통’ 개방과 경제, 문화, 체육, 과학기술 교류를 제시하면서 양안 관계 개선 시동을 걸었다. 장징궈 대만 총통은 1987년 중국 대륙에 친척이 있는 대만인들의 중국 방문을 허용하는 탐친법(探親法)을 제정하면서 3불 정책을 철회했다. 개혁개방 시기 대만에 인접한 중국의 저장·푸젠성 등에서는 대만 자본의 투자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장제스 25년 ‘3불’ 깬 덩샤오핑-장징궈의 ‘3통’ 로맨스 양안 관계는 민간 교류로 확대 시진핑-마잉주 유례없는 ’밀월’에도 해바라기 운동·우산시위로 역풍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 변수지만 “민진당 집권해도 큰 변화 없을듯”
중국-대만 연도별 인적교류 및 교역액 1990년대 들어서면서 양안 관계는 민간 교류를 확대하면서 개선 속도를 냈다. 대만과 중국은 1991년 민간교류 단체인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와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를 설립하면서 교류 창구를 개설했다. 1992년에는 구체적인 성과물이 나왔다.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이 공인하는 ‘92공식’에 합의한 것이다. 1993년엔 해협회와 해기회 회담이 시진핑-마잉주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중국 덩샤오핑이나 대만의 리덩후이 총통과 두루 친분이 있던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중간에서 다리를 놨다. 싱가포르 쪽은 당시 양안 회담장인 호텔의 엘리베이터 2대를 가동해 회담장에 양쪽 대표단이 동시에 도착할 수 있도록 세심한 준비를 했다. 중국에서는 상하이 시장을 지낸 왕다오한 해협회장이 나왔고, 대만에서는 리덩후이 총통의 측근인 구전푸 회장이 나왔다. 두 사람은 이른바 ‘왕구 회담’을 통해 “정치적 주권이라는 어려운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고, 서로 실질적인 교류 협력에 초점을 맞추자”는 데 인식을 같이해 양안 교류를 정례화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 사이에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 분위기가 분출하고 하나의 중국을 부정할 때마다 무력 시위를 벌였다. 특히 1995년에는 중국과 대만이 별개라는 양국론을 펴는 리덩후이 대만 총통이 미국 방문을 추진하자 대만 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듬해 3월에도 육·해·공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중국은 대만 맞은편 푸젠성에서 대만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 설명회를 중단하지 않았다.
대만 야당인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이 집권한 2000년부터 2008년까지는 양안 관계의 경색기였다. 천 총통은 ‘대만과 중국은 각자의 나라’라는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을 주장하며 중국과 긴장관계를 이어갔다.
양안관계 주요 일지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 강화라는 친중 노선을 내세운 국민당 출신 마잉주 총통이 2008년 집권에 성공하면서 중국과 대만은 사상 유례없는 밀월기를 맞았다. 마 총통은 집권한 뒤 ‘대만의 독립이나 중국과의 통일을 모두 추진하지 않으며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3불’ 정책을 내세웠다. 11월엔 2차 양안회담이 열려 통상, 통항, 통신을 허용하는 대3통(大3通)에 합의했다. 2010년 5월에는 양안이 상호 관광사무소를 개설했고, 한달 뒤엔 5차 양안협상이 열려 중국-대만 사이의 자유무역협정에 해당하는 ‘양안경제기본협정’(ECFA)이 체결됐다. 이 협정은 상품 무역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서비스 무역 개방, 투자 보장, 분쟁 해결, 지식재산권 보호 등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무역협정이다. 양안은 2012년 중반까지 800개 항목의 상품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했다. 이 무렵 양안 관계의 급속한 발전을 두고 ‘제3차 국-공 합작’ 또는 ‘차이완 시대’라는 말이 나왔다.
2013년 중국 국가주석에 취임한 시진핑 주석도 양안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13년 2월과 6월 롄잔, 우보슝 국민당 명예주석을 잇따라 베이징에서 만났다. 지난해 2월엔 중국 난징에서 분단 뒤 65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이 아닌 양안 정부의 장관급 회담이 열려 ‘정치 대화’의 첫 단추를 끼웠다.
장즈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과 왕위치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은 상시 대화채널 구축에 합의했다. 시 주석은 올해 5월 마잉주 총통을 이어 새로 국민당 주석에 오른 주리룬 주석을 베이징에서 만나 “어렵게 쌓아온 양안 관계 협력의 성과물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국민당에 힘을 실었다. 9월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70주년 열병식에 롄잔 국민당 명예주석을 초청하면서 항일 전쟁 당시 국민당의 공로를 일정 부분 인정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안의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는 급속히 늘어 지난해 1983억달러(214조원)에 이르며 인적 교류도 941만명에 이르렀다.
역풍은 다시 불었다. 대만에서 지나친 중국 경도 현상에 대한 우려가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만 대학생들은 지난해 3월 중국과의 급격한 경제협력 확대가 대만의 경제를 중국에 예속시키고 자신들의 미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면서 20여일 동안 대만 입법원을 점거하는 ‘해바라기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중국과의 경협으로 대기업만 배를 불렸을 뿐 제조업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임금이 저렴한 중국인들에게 빼앗겼다”는 인식이 퍼져갔다. 이들은 양안 장관급 회담이 열리는 회담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기다 지난해 10월 홍콩을 민주화 열기로 들끓게 했던 ‘우산 시위’의 여파도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키웠다. 중국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완전 자유 직선제를 요구하는 홍콩 시위대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묵살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들은 “홍콩 민주화 요구의 배후에는 중국을 적대시하는 서방 세력의 개입이 있다”며 이들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속에 주민의 고도자치를 허용하는 제도)를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국양제는 중국이 대만에도 적용하는 제도인 까닭에 대만인들은 중국과의 통일은 자치권이 보장되지 않는 공산당의 통치라는 인식을 지니게 됐다.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대만에서는 이들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게다가 시진핑 집권 뒤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언론 단속과 사상 이념 통제 강화는 대만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추겼다. 홍콩 시위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한다는 답변이 12%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해 11월29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이런 민심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집권 국민당은 전국 6개 직할시와 현, 시 등 22개 단체장 선거에서 단 6석밖에 건지지 못했다. 이는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옮겨온 뒤 최대의 참패로, 당시 대만 언론들은 “국민당이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굴곡을 거듭해온 양안 관계는 내년 1월16일로 예정된 총통선거와 입법원 선거(한국의 총선)를 분기점으로 또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판세는 민진당의 일방적인 우세다. 국민당은 지난달 총통 후보였던 훙슈주 전 입법원 부원장을 주리룬 주석으로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럼에도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가 갑절 가까이 그를 따돌리고 있다.
차이 후보는 대만 독립 노선을 내세우거나 92공식도 부정하지 않으면서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온건한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중국으로선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보다는 달갑지 않다. 중국은 1996년 장쩌민 주석 시절 무력 시위를 통해 대만 독립을 내세운 리덩후이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는 노골적인 수단 대신, 위험 부담이 적은 수단으로 대만 총통선거에 개입하고 있다. 시 주석이 분단 뒤 처음 공산당 총서기 자격이 아닌 국가 지도자 자격으로 마잉주 총통을 만나는 것도 이런 ‘소프트 개입’의 일환이다. 앞서 6월엔 위정성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대만 독립 및 분열 세력은 양안 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동포간 결합을 막는 최대 장애물”이라며 “대륙을 오가는 대만 동포들에게 입경 허가증을 면제하겠다”고 언급한 것도 중국과 긴밀한 국민당 지지 성향의 대만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훈수다.
한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가 총통에 당선되더라도 이미 1000만명에 육박하는 인적 교류와 대만 무역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제적 비중을 볼 때 급격한 대중국 정책 변화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향후 그가 어떤 대중국 메시지를 던질지, 중국의 반응은 어떨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한겨레>
손잡은 마잉주-시진핑 (AFP=연합뉴스) 중국과 대만의 현직 최고지도자가 7일 분단 66년만에 처음으로 만나 손을 잡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7일 오후 3시(현지시간)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1949년 분단 이후 양안의 지도자가 국가원수이자 정부 대표 자격으로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긴장과 대립으로 점철됐던 66년 양안 분단사에 한 획을 긋는 회담으로 평가된다.
66년만의양안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마잉주-시진핑 (AFP=연합뉴스) 두 정상은 이날 오후 샹그릴라호텔 아일랜드볼룸에서 서로 만나 악수를 하고 곧바로 양측의 주요 관계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1시간가량 비공개 회담을 진행했다.
이날 두 정상은 각각 국가원수 신분으로 서로 '양안 지도자'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선생'으로 호칭했다. 그동안 양안 사이에서는 지난 10년간 국민당과 공산당 영수 자격으로 7차례의 접촉이 있었을 뿐 국가원수간의 만남은 없었다.
두 정상은 양안관계의 평화발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양안의 각종 교류협력과 양안 주민의 복지증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마 총통은 시 주석에게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도록 중국측이 양해해줄 것을 요청했다. 양측은 또 양안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대만, 66년 만에 정상회담 (싱가포르 AF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7일(현지시간)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마 총통은 회담 예정 시간인 오후 3시가 되기 10분 전 샹그릴라호텔에 들어선 뒤 곧바로 회담장으로 향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