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그리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그리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6년 9월 28일 수요일

하루키가 반해 3년 머문 미코노스 섬, 그럴 만했다

미코노스의 어느 멋진 날

▲  멀리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새하얀 집과 파란 지붕은 그리스 섬들의 상징이다.
ⓒ 한성은

아주 오래전에 우린 마주쳤지
서로 알아봤어
운명이란 말도 필요 없어 우리는
어렴풋한 얘기지 지나버린
믿기 힘든 말투지 하지만

넌 나에게 100퍼센트
더 말할 게 없는
나를 봐 뒤돌아봐
날 알아줘

- 보드카레인, '100퍼센트' 노랫말 중에서

100퍼센트 완벽한 여행지. 눈부시게 맑은 하늘과 끝없는 푸른 바다 사이에 새하얀 집들이 새파란 지붕을 머리에 얹고 바다를 향해 앉아 있다. 모아이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것처럼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풍경은 단지 자연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마을을 단장한다. 섬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거대한 풍경화를 그리듯 벽과 지붕을 칠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되었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은 그 하얀 벽을 배경으로 파란 창문 곁에 서서 인생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곳으로 모여든다. 일생에 한 번뿐인 허니문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그곳은 바로 미코노스(Mykonos) 섬과 산토리니(Santorini) 섬이다.

우아하게 차려입고 예쁜 캐리어를 끌며 신혼여행으로 왔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누가 봐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색으로 그리스 에게 해 투어 첫 번째 목적지인 미코노스 섬으로 왔다. 누군가에게는 신혼여행지, 누군가에게는 누드 해변과 비치 클럽 파티로 기억될 미코노스 섬이지만, 나에게 미코노스는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 숲)의 고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상실의 시대>를 집필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미코노스 섬은 성지(聖地)였다. 

20대를 보내는 동안 해마다 여름이면 하루키 소설을 읽었었다. 주인공들이 25m 풀장을 가득 채울 만큼의 맥주를 마시면, 나도 덩달아 자취방 구석에 맥주병을 산처럼 쌓았다. 그들이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음악을 들으면 나도 들었고, 그들이 야나체크(Janacek)의 신포니에타(Sinfonietta)를 들으면 클래식 음악이 뭔지도 모르면서 귀에 꽂고 있었다.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읽었던 작품이 <상실의 시대>였다. 몇 번이나 읽었던 그 작품을 그리고 그 두꺼운 책을 밤새 읽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겉멋이 가득 차기 마련인 20대였으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날의 기분이나 그때의 감상은 떠오르지 않지만, 13년 전 이맘때쯤 입대를 앞두고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는 기억은 뚜렷하다. 그래서 꼭 미코노스 섬에 왔어야 했다. 

미코노스에서 하루키를 찾고 싶었다.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3년을 지냈을까. 미코노스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에게도 하루키 같은 영감이 찾아올까. 어쩌면 미코노스에서 와타나베와 키즈키, 미도리와 레이코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 놀이 공원에서 외치는 것처럼 미코노스는 나에게 '꿈과 환상의 나라'였다.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 집필한 미코노스 섬

▲  파라다이스 비치는 누드가 허용되는 해변이다.
ⓒ 한성은

▲  비치 클럽에서는 뜨거운 한낮에도 파티가 열린다.
ⓒ 한성은

미코노스 섬 전체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인 파라다이스 비치 리조트의 캠핑장에 도착해서 침대보다 먼저 도마뱀과 인사를 했다. 삐걱거리는 선풍기는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콘센트에 꽂아놓은 여행용 전기 쿠커는 언제나처럼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물을 팔팔 끓여주었다. 라면 스프를 풀고 파스타 면을 끓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먹었지만, 해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신나는 클럽 음악은 마음을 들뜨게 해주었다. 저녁노을을 받은 바다는 붉게 물들었고, 젊은이들은 시간이 살짝 비켜 서 있는 비치 클럽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거점 마을인 타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차를 타고 한참을 와야 하는 파라다이스 비치는 그야말로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천국이었다. 물론 비싼 술값을 감당할 수도 없고, 밤새 춤을 추고 놀 만큼 체력이 넘치지도 않는 나는 그저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지켜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말이다.

미코노스 섬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기 때문에 대중교통 사정이 좋지 않았다. 섬에서 운영하는 로컬버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주요 해변을 중심으로 운행했는데 배차 시간도 길고 요금도 비쌌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스쿠터를 빌리기 위해 타운으로 갔다. 타운의 정식 명칭은 '호라(Hora)'인데 모두들 그냥 타운이라고 불렀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미코노스에 머물면서 타운은 매일 한 번씩은 들러야 하는 곳이다. 물론 숙소가 타운에 있으면 좋겠지만, 한여름 성수기에 타운의 숙소들은 호기심으로 한 번 물어보기도 민망할 만큼 가격이 비쌌다. 미코노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두 타운에서 찾을 수 있다. 

'리틀 베니스'라 불리는 호라의 해변은 정말 사진으로 보던 베네치아와 닮아 있었다. 실제로 미코노스가 과거에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베네치아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진 건물들이란다. 바다를 향해 나 있는 창문과 발코니들이 그림 같았다. 그릭도어(Greek door)라 불리는 파란 대문과 창문들이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과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을 텐데 이제는 그것이 관광 자원이 되어 지금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니 참 아이러니다.

미코노스의 상징과도 같은 풍차도 호라에 있다. 바다를 향해 줄지어 선 다섯 개의 풍차는 미코노스에 도착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힘차게 돌며 곡식을 빻았지만, 지금은 그 기능을 잃고 그저 관광용으로만 서 있다. 이미 사진으로 책으로 참 많이 보던 장면이었다. 그래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괜히 두근거리고 설?다. 미코노스를 검색하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피사체를 똑같은 각도에서 찍었는지 직접 보니까 이해가 쉬웠다. 나 역시 미코노스 타운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5개의 풍차니까. 

▲  타운이라 불리는 호라 마을의 전경.
ⓒ 한성은

▲  미코노스를 상징하는 5개의 풍차.
ⓒ 한성은

1년 내내 클럽 파티가 벌어지는 해변

호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건물들 사이로 미로처럼 뻗은 골목을 품고 있어서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한참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여유가 넘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답게 호라의 좁은 골목들에는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매장들이 즐비했다. 입이 쩍 벌어지는 가격표를 달고 있는 옷과 보석들이 전시된 고급 부티크들 사이로 걸으면 미코노스의 전통 가옥들이 만들어내는 소박한 풍경과 달라서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해외 명품 브랜드의 매장들도 자기 브랜드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미코노스의 풍경에 녹아들어 있어서 묘한 이질감은 그대로 호라의 독특함으로 기억되어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사동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은 세계 최초로 영어가 아닌 현지 언어로 간판을 달고, 전통 기와와 창호 디자인으로 외관을 꾸몄다.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 상권을 잠식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현지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는 것은 좋은 태도인 것 같다. 미코노스에서도 이들 브랜드가 미코노스의 풍경을 해치고서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명품 브랜드나 고급 부티크가 아니라 미코노스 현지인들의 삶이 녹아 있는 거리였다면 더욱 아름다웠을 것 같지만 말이다.

호라의 골목을 헤매고 다니다가 배도 고프고 인터넷을 사용할 일도 있어서 그 유명한 '그릭 요거트'를 먹어보기로 했다. 미코노스의 모든 가게가 그렇듯 작고 아담한 요거트 가게는 테이블 세 개가 전부였다. 

요거트를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팥빙수 그릇만 한 대접을 하나 갖다 준다. 가격이 저렴해서 조그만 젤라또 한 스쿱 정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푸짐하게 주어서 참 흐뭇했다. 그릭 요거트의 핵심은 그 특유의 찰진 식감인데, 한 스푼 가득 떠서 뒤집어도 요거트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릭 요거트에 유기농 꿀을 섞어서 떠먹으면 그야말로 '몸이 건강해지는 맛'이다. 우리나라 슈퍼마켓에서 파는 요거트와는 완전히 달랐다. 요거트를 먹는 게 아니라 밥을 퍼 먹는 것처럼 커다란 수저로 그릭 요거트를 푹푹 퍼먹었더니 그대로 한 끼 식사가 되어 주었다.

▲  한 끼 식사로도 손색 없었던 정통 그릭 요거트.
ⓒ 한성은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스쿠터를 빌리러 갔다. 호라의 버스 정거장 주변에는 미코노스의 교통 사정을 알려주듯 렌터카와 스쿠터를 빌려주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영업을 하는 데도 스쿠터 렌트비가 가게마다 달랐다. 가격 담합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또 한참 발품을 팔아야 했다.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낡은 스쿠터를 빌릴 수 있었다. 

스쿠터를 빌려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대형 할인마트였다. 미코노스에는 까르푸와 알파비따 마트가 여러 군데에 있었다. 숙소 근처의 미니 마켓은 모든 것이 비쌌기 때문에 3일간 먹을 식량을 비축해야 했다. 슈퍼마켓에서 사는 식자재 가격은 그리스 본토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나라보다도 저렴했다. 

여행용 전기 쿠커만 있으면 밥, 국, 파스타 등등을 모두 해 먹을 수 있어서 상하지 않는 것들을 잔뜩 사서 스쿠터 앞뒤에 실었다. 리조트의 음식이 너무 비싸서 물 한 병 마시는 것도 조마조마했는데, 스쿠터 가득 실려있는 음식들을 보니 쳐다만 봐도 마음이 든든했다. 이날 산 것들은 미코노스에 지내는 3일 동안 비싸고 맛없는 리조트 음식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생존을 위한 여러 가지 기술이 늘었지만, 그중에서 특히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중국인 슈퍼마켓에서 춘장을 사서 그럴싸한 자장면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스쿠터를 타고 미코노스 섬 투어를 시작했다. 미코노스는 해안가 곳곳에 크고 작은 해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지도에 표시된 해변만 21곳에 달했다. 미코노스 본 섬 외에 델로스 섬과 라니아 섬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났다. 그리고 해변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슈퍼 파라다이스 비치(Super Paradise Beach)와 파라다이스 비치(Paradise Beach)는 1년 내내 클럽 파티가 벌어져서 전 세계의 젊은이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또한 누드가 허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모두가 누드로 다니는 것은 아니었고 아주 가끔 용감한 사람들이 누드비치를 즐기고 있었다. 칼라파티스 비치(Kalafatis Beach)는 그리스 정부가 인정한 청정 해변이다. 현지 사람들은 에코 비치(Eco Beach)라고 부르기도 했다. 스쿠버 다이빙과 윈드서핑 같은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엘리아 비치(Elia Beach)는 미코노스 섬에서 손꼽히는 긴 해변과 잘 갖추어진 편의시설 때문에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지내기에 좋아 보였다. 그 외에도 간이매점 하나 없는 작은 해변들도 어떻게들 알고 찾아가는지 곳곳에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미코노스를 찾는 관광객들은 이들 해변 중 자신의 여행 목적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바다를 즐겼다.

▲  미코노스에는 특색있는 해변들이 많다.
ⓒ 한성은

▲  가족 단위 여행자들도 편하게 쉴 수 있는 해변.
ⓒ 한성은

스쿠터를 타고 해변이 아니라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마을을 보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이나 머물렀다는데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클럽 비치에서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어딘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코노스 섬의 또 다른 풍경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해변이 아닌 내륙으로 스쿠터를 몰았다. 

호라 마을에 이어 미코노스에서 두 번째로 큰 마을이라는 아노 메라(AnoMera)로 가는 길은 우리네 시골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염소와 소들이 논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다만, 멀리 갈 수 없도록 앞다리와 뒷다리를 줄로 묶어 놓아서 걷는 것이 불편해 보였다. 누군가가 내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줄로 묶어 놓는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묶여 있는 다리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팠다.

염소를 만나면 또 길을 잠깐 멈추고, 동키를 만나면 또 길을 잠깐 멈추고, 멋진 해안선을 만나면 또 길을 멈추며 아노 메라로 갔다. 돌담을 쌓아 길을 내고, 돌담으로 논밭을 구별해 놓은 곳을 보니 제주도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물론 어디를 보더라도 제주도 보다 예쁘지는 않았다. 해변 마을의 풍경은 이곳 사람들의 노력과 에게 해의 물빛이 더해져 미코노스가 더 예뻤다. 하지만 미코노스 섬의 안쪽은 어린 나비가 바다로 착각했다는 청무우밭 사이로 난 돌담길을 돌아가는 제주 올레길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눈이 닿는 곳마다 넉넉하고 소담한 제주의 그 풍경과 달리 미코노스는 쓸쓸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푸른 바다는 가졌지만, 푸른 산은 없었다. 

그제야 해변 마을이 유달리 그림 같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산과 나무가 없어서 사람 손으로 지은 인공물들이 자연 속에 어우러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색깔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화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화려함은 금세 지루함으로 바뀌어 버려, 미코노스에서 사흘 밤과 나흘 낮을 보내고 나니 그 예쁜 풍경 앞에서도 나는 점점 무덤덤해져 갔다.

아노 메라는 중심 마을답게 마을 입구에 커다란 공영 주차장이 있었다. 마을 중심에는 작은 광장이 있고, 작고 아담한 식당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만나면 언제나 반가운 슈퍼마켓도 광장 한 편에 있었다. 중심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붉은 지붕으로 유명한 파나기아 투리안니 수도원(PanagiaTourliani Monastery)을 제외하면 딱히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수도원 안에 있는 성당은 내부 장식을 모두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했단다. 

규모도 크지 않은 곳이라 화려하게 꾸민 내부는 여유 공간 없이 가득 차 버려서 보는 이를 답답하게 했다. 오후의 붉은 해가 실내에 비치자 황금색을 칠한 액자와 장식들이 번쩍번쩍 일렁인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신들이 '황금'을 좋아할까? 황금 불상, 황금 성당을 만들면 신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신에게 더 잘 전달될까?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으면서 시답잖은 생각을 해본다. 석가모니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부와 명예를 다 버리고 해탈하여 부처님이 되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은 석가모니 불상에 금칠을 하고 있다. 부처가 된 석가모니가 이런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정말 궁금하다.

▲  파나기아 투리안니 수도원. 붉은 지붕은 밖으로 멀리 나가야 볼 수 있다.
ⓒ 한성은

▲  성당 내부는 모두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 한성은

섬을 그렇게 좋아했다던 하루키의 마음이 이해됐다

찜찜한 기분으로 성당을 나와 마을 광장에 앉아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 보니 바람이 무척 많이 불었다. 한 무리의 인도인들이 시끄럽게 몰려오더니 자기들끼리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사진을 참 좋아한다.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고,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인도 여행할 때 어색한 순간을 없애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카메라를 꺼내는 것이다. 그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진을 중심으로 두터운 친구가 된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보급되어서 모두의 손에 카메라가 하나씩 있지만, 10년 전에 처음 인도를 갔을 때만 해도 카메라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자기들끼리 한참을 찍더니 이번에는 나에게 와서 사진을 찍어 달란다. 같은 장소에 서서 다른 포즈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경쟁하는 대회가 있다면 단언컨대 인도 사람들이 1등일 것이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 주고 나니 이번에는 나보고 자기들이 찍었던 자리에 가서 서 보란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사진을 찍으니 그게 아니라며 다양한 포즈를 요청해 왔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근엄한 국어교사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좋다며 손뼉을 친다. 

아주 오랜만에 '나마스떼'와 '나마스까'를 주고받으며 인사하고 헤어지니 인도가 그리워졌다. 내년 봄에는 인도로 갈 텐데 여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다음 여행지를 생각하면 설렌다.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은 다 없어지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 있는 인도. 막상 여행을 시작하면 또 사기를 당하고, 악을 쓰고, 짜증을 내고, 웃고, 울고 하겠지.

다시 스쿠터 시동을 걸고 구석구석에 있는 해변들을 찾아 나섰다. 해변마다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잠깐씩 머물다 나오는 것만으로 시간이 금방 흘렀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비치파라솔이 해변을 뒤덮은 곳이 있는가 하면 쓸쓸함이 잔뜩 묻어나는 해변도 있었다. 해양 레포츠가 발달해 있다는 해변에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곳이 신기루처럼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미코노스 곳곳을 진득하게 즐기려면 한 달도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키는 3년을 미코노스에서 살았나 싶었다.

스쿠터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마을 풍경들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황량한 들판과 민둥산을 보며 달리니 이제야 미코노스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미코노스하면 떠오르는 그 하얀 집과 파란 지붕은 호라 마을을 중심으로 한 서쪽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동쪽 마을은 새롭게 관광지로 개발하는 곳만 듬성듬성 새하얀 집들이 있었다. 그곳은 쓸쓸하고 황량했다. 

미코노스 동쪽 지역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준다면 누구도 이곳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미코노스 섬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나무 전봇대가 서 있고, 염소 무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는 이 풍경이 내게는 훨씬 정감있게 다가왔다. 호화 유람선과 쏟아지는 관광객과 밤낮없이 이어지는 클럽 파티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나와서야 에게 해에 둘러싸인 작은 섬의 그 소담한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스쿠터를 반납하기 위해 다시 호라 마을로 향했다. 다시금 미코노스는 저무는 붉은 햇볕으로 단아하게 단장을 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도 각자의 탈 것들을 길가에 세워두고 언덕 위로 모여들었다. 그 자리에서 탄성을 지르지 않은 것은 햇볕이 잘 드는 명당자리에 앉아 털을 고르며 하품을 하는 들고양이들뿐이었다. 마을의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 서서 해가 지는 속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호라 마을을 보고 있으니 이 섬을 그렇게 좋아했다던 하루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  타운이라 불리는 호라 마을의 중심부.
ⓒ 한성은

쏟아지는 별빛과 무서운 모기와 시끄러운 클럽 음악과 바다 냄새와 같은 밀도의 맥주 냄새에 취해 미코노스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목적지는 산토리니 섬이다. 사실 미코노스에서 에게 해의 섬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은 다 느껴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토리니를 제외하고 크레타 섬으로 바로 가려고 했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산토리니는 '미코노스보다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예쁜 곳' 정도라고 했다. 미코노스를 갔다면 굳이 산토리니는 갈 필요가 없고, 산토리니를 갔다면 미코노스는 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산토리니행 배편은 운항 거리도 짧은데 비용은 크레타로 가는 것보다도 비쌌다. 워낙 유명한 곳인 데다가 성수기가 겹쳐서 그런 것 같았다.

지나온 여행지를 떠올려보면 또 가고 싶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마음속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실 미코노스는 굳이 나누자면 후자에 속했다. 정말 예쁜데 그냥 예쁘기만 해서 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냥 '오직 예쁘기만 한 곳'의 정점이 산토리니였다. 하지만 결론은 그러니까 가보자 싶었다.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곳이니까 왠지 숙제하는 마음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섬을 만들어 보자고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작정하고 꾸민 섬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수많은 화보와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했던 그 파란 지붕을 사진으로 찍어 보자는 숙제를 안고 페리 예약을 했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2016년 1월 22일 금요일

중국, 피레우스 항구 인수… '일대일로' 유럽 거점화

국영 해운사, 4912억에 투자자로 ‘진주목걸이 전략’ 교두보 의미도 작년엔 아프리카에 첫 군사기지 시진핑 중동 순방 ‘일대일로’ 일환
중국 국영 해운업체인 코스코(COSCO) 그룹이 그리스 최대 항구인 피레우스항을 인수한다.

이 항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중대 거점이다. 그리스 최대 항구이자 아시아·동유럽·북아프리카로 향하는 관문인 피레우스항 인수를 계기로 중국의 유럽 진출이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21일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그리스 민영화기구인 국영 자산개발기금(HRADF)은 전날 이사회를 연 뒤 “코스코 그룹을 우선투자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코스코는 피레우스항만공사(OLP)의 피레우스 항구 지분 67%를 인수하게 되며, 입찰가는 3억6850만유로(약 4912억원)에 이른다. 

최종 인수 여부는 그리스 회계당국, 의회 등의 승인 절차를 거쳐 오는 3월 최종 결정된다. 하지만 코스코 그룹이 단독 입찰해 우선투자자로 지정된 만큼 피레우스 항구 지분 인수는 사실상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거래가 완료되면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부 두 번째 규모의 국영자산 민영화 사례가 된다.

중국은 ‘차이나머니’를 바탕으로 제해권과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중동에서 남중국해까지 해로를 따라 주변 국가들과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해왔다. 이들 국가 중에서 파키스탄의 과다르,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미얀마의 벵골만 연안, 남중국해의 주요 거점들을 이으면 진주목걸이 모양이 된다고 해서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 피레우스항 확보는 이같은 진주목걸이 전략을 유럽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교두보 마련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언론은 분석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피레우스 항구와 관련해 "시진핑 지도부가 추진하는 광역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의 중요한 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에 동맹국이나 우호적인 해상거점이 없는 중국은 2009년부터 코스코가 피레우스항 컨테이너 터미널 운영권을 확보한 것을 발판으로 피레우스항 인수에 심혈을 기울였다. 

중국은 지난해 11월에도 아라비아반도 부근 아프리카 동북쪽 지부티에 아프리카 대륙의 첫 군사기지를 확보하며 해상 패권 강화에 나섰다.

올 들어 시진핑 주석이 첫 순방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이란 등 중동 핵심 3개국을 선택한 것도 일대일로 구상의 일환이다. 시 주석은 첫 순방국인 사이디아라비아에 이어 20일(현지시간) 외교·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중동의 인구대국 이집트를 공식 방문했다. 중국 정상이 이집트를 공식 방문하기는 12년 만이라고 이집트 언론은 전했다. 시 주석의 이집트 방문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내 최다 인구보유국(약 8500만명)인 이집트에서 경제대국으로서 인지도를 높이고 이 일대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마지막 순방지인 이란은 시리아 내전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중동의 주요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국제현안의 중재자 역할을 해온 나라다. 최근 핵폐기 결단을 통해 서방국의 경제제재에서도 풀려나 이란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기사 출처 : 세계일보>

2015년 4월 26일 일요일

지중해 태양빛에 홀려… 그림 속을 걸었다


그리스 산토리니(Santorini)
이아 마을 해질녘 풍경이다. 이 동화 같은 풍경에 반해서 관광객들이 산 넘고 바다 건너 섬을 찾아온다.
자, 지중해 동쪽 에게해에 있는 어떤 섬 이야기다. 풍광에 관한 한 여기 한 번 안 가보고 명함 내밀기 민망한 섬이다. 지금부터 그 섬, 산토리니(Santorini) 이야기다.
◇서점 아틀란티스와 고양이 실비
그리스 산토리니 섬 북쪽 도시 이아(Oia)에 있는 서점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산다. 이름은 실비(Sylvie)다. 암컷이다. 손길 주인은 마케도니아인부터 한국인까지 다양하다. 주인 크레그와 올리버는 영국인 부부고 서점 이름은 아틀란티스다. 아틀란티스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대륙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토리니가 바로 그 사라진 대륙이라고 믿는다. 주인 크레그도 그랬다. 실비도 그럴 것이다. 실비는 손님 손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손님 손길에 무관심하다. 산토리니를 닮았다.
2002년 산토리니에 놀러갔던 크레그와 올리버는 이 섬에 푹 빠졌다. 2년 뒤 두 사람은 미니밴을 타고서 영국해협을 건너 육로와 해로를 거쳐 산토리니에 정착했다. 미니밴에는 책이 하나 가득 실려 있었다. 신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이 섬나라에 책방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선장의 집 지하실에 문을 연 서점 아틀란티스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예쁜' 서점으로 소문이 났다. 얼마만큼 예쁜가 하면, 산토리니만큼 예쁘다. 지구를 돌고 돌아 산토리니까지 와서 결혼 사진을 찍는 젊은 신혼부부들만큼 예쁘다.
1 산토리니 북서쪽 이아(Oia)에 있는 서점 아틀란티스에는 고양이 실비가 산다. 2 할머니가 지나가는 피르고스 골목.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와 산토리니
기원전 1500년 에게해에 있던 화산섬 티라가 폭발했다. 티라는 분화구만 남기고 사라졌다. 티라에 융성했던 키클라데스 문명도 사라졌다. 밀려간 쓰나미는 남쪽에 있던 크레타 섬을 덮쳤다. 크레타 섬에 있던 미노아 문명도 망했다. 황망하게 사라진 키클라데스 문명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플라톤이 언급한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가 이 티라 섬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티라 섬은 분화구 능선만 초승달처럼 남고 폐허가 됐다. 13세기 섬에 들어온 로마인들은 데살로니카에 살았던 성녀 이레네(Santo Irene·산토 이레네) 이름을 따서 섬을 산토리니라 불렀다.
사람들은 분화구 쪽 절벽에 남향집을 짓고 살았다. 가파르기 짝이 없어서 아랫집 지붕은 윗집 마당이 되고, 어렵사리 담과 담을 비집고 골목이 생겨났다. 벽은 흰색으로 칠하고 창틀은 바다를 닮은 코발트색으로 칠했다. 대지를 반듯반듯하게 구획할 엄두도 못 내고 대충 살았다. 샘물 하나 없는 척박한 땅이라 경제 개발도 꿈꾸지 못한 채 살았다. 그렇게 한 이천년 살다보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눈부신 흰색과 눈부신 코발트빛 집들,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직선이 사라진 골목에 파스텔 톤으로 대충 덧칠한 낡은 담벼락이 거기 정지해 있지 않은가. 문명사회에서 일찌감치 사라져버린 모든 것들이. 그림 그리는 쟁이들이 몰려들고 이어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1956년 대지진에 마을들이 파괴되자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똑같이 집들을 재건했다. 그게 산토리니로 사람들이 오는 이유였으니까. 물 한 방울 솟지 않는 척박한 땅은 오히려 포도나무 잘 자라는 훌륭한 땅으로 재인식됐고 산토리니 여름은 숨 막히는 더위에서 투명한 태양빛으로 재포장됐다.
3 피르고스에 있는 스물아홉 개 교회 가운데 하나인 성모마리아 교회. 4 피르고스 가정집에 빨래가 걸렸다.
◇피르고스(Pyrgos), 그리고 이아(Oia)
산토리니 본섬은 면적이 80㎢ 정도로 작다. 경주하듯 차를 몰면 반나절이면 다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흘도 모자란다. 분화구 능선을 따라 마을들이 늘어서 있는데, 제일 큰 마을은 피라(Fira), 가장 유명한 마을은 이아(Oia)다. 광고 영상이나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은 이아 마을이다. 섬 북쪽 끝에 있다. 이 동화 같은 마을은 해질녘 볼거리로 남겨두도록 한다. 피라에서 남쪽으로 7.5㎞ 떨어진 피르고스를 첫 번째 방문지로 삼는다. 다른 마을과 달리 분화구 능선에서 벗어나 선지자 엘리야 수도원이 있는 프로피티스 엘리아스 산 기슭에 있다.
마을로 오르는 언덕길 꼭대기에서 일단 멈춤. 작은 그리스 정교회 건물 앞에서 마을을 보면 마을이 온통 흰색이다. 장난감 블록을 대충 쌓은 듯한 그 외곽을 카메라에 담고 길을 이으면 마을 입구 공터가 나온다. 그다음부터는 미로(迷路)다. 의도적으로 만들려면 난해하기 짝이 없는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바닥에 돌들을 깔아놓고 틈새를 석회로 칠해 걷기에도 딱 좋다. 담은 희고 노랗고 때로는 푸르다. '그림 같다'는 말은 최소한 피르고스에서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벽과 창틀을 도화지 삼아서 사람들은 거친 마티에르 질감의 비구상 작품을 그려놓았다.
민속촌과 박물관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그 흰 담 너머를 기웃대다가 사람 소리에 한 번 놀라고, 그 사람이 튀어나와서 어깨를 걸고선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란다. 주민 수는 600명이다.
골목 계단을 올라갈수록 1956년 지진의 흔적이 남아서 주변 색깔은 원색에서 흙색으로 변한다. 아무리 헤매도 질리지 않는 미로의 끝이다. 그 폐허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산토리니 섬 전체가 보인다. 파란 색은 바다거나 밭이고 하얀색 덩어리들은 마을들이다. 골목 어귀에 있는 찻집에서 그리스 에스프레소를 홀짝여본다. 동행 한 사람이 말했다. "진흙만큼 진하고, 진흙만큼 맛없다." 7월 20일에는 산꼭대기 수도원에서 엘리야 성자 축제가 열린다. 피르고스에는 푸른 돔과 흰 십자가를 가진 교회가 스물아홉 개 있다. 모두 아름답다.
섬 북쪽 끝에 있는 마을 이아는 피르고스와 또 대비된다. 전형적인 산토리니 마을이며 동시에 가장 유명한 마을이다. 가장 어린 마을이기도 하다. '선장의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잘나가던 상업항구였지만 1956년 대지진은 이아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아테네 옆 피레우스 항으로 집단이주했던 주민들은 1980년대 들어서야 돌아왔다. 마을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고. 그런데 그 마을 위치가 하필이면 남서향 절벽 위다 보니, '세계 최고의 석양'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면서 순식간에 산토리니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둔갑한 것이다. 순식간에 집들은 선물가게, 화랑, 명품점, 부티크 호텔로 변신했다. 피르고스처럼 주민이 사는 게 아니라 밤이 되면 가로등만 덜렁 불을 밝히는 상업도시가 되었다.
그래도 눈은 즐겁기 한량없다. 파란 하늘과 하얀 집들과 좁은 골목과 파란 교회 지붕이 활처럼 휜 절벽을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빈틈없이 채운다. 자세하게 보면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열심히 촬영 중인 중국인 커플들이 셀 수 없이 눈에 보인다. 그들을 따라 서쪽 끝으로 갈 무렵 날이 맑고 해가 지면 좋겠다. 성채가 있는 즈음에 성벽에 걸터앉아 바다를 보면 낡은 풍차와 하얀 절벽과 골목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황금빛으로 불탄다.
엠포리오 마을 뒷골목들. 담벼락은 흰 회칠을 했고 문은 코발트 계통으로 푸르게 칠했다. 골목과 골목이 무한히 연결돼 미로를 만들었다.
◇엠포리오(Emporeio)와 피라(Fira)
피르고스와 이아만큼 서로 대비되는 마을들이다. 엠포리오는 주민들이 작심을 하고 옛 모습을 남겨둔 마을이다. 역시 능선을 벗어나 내륙 산 기슭에 있다. 산토리니에서 가장 큰 마을이지만 마을 위쪽은 옛 모습 그대로다. 마을회관이 있는 중심광장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장난감 같은 건물이 나온다. 하얀 벽에 빨간 창문을 가진 3층짜리 건물이다. 그 뒤로 가면 낡은 성채가 나오고 성채 위로 아치형 골목이 보인다. 골목은 또 다른 골목과 이어지고, 그 골목은 또 다른 골목과 만난다. 모퉁이만 돌면 나타나는 그림 같은 풍경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중첩되는 골목 어귀에서 슥 하고 지나가는 고양이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자. 모델 짓에 익숙한 놈들이라 도망가지도 않는다.
피라는 번화하다. 온갖 먹을 것, 살 것들이 이 마을에 집중돼 있다. 워낙 상업화된 곳이라 정작 낮에는 정이 가는 곳은 아니다. 밤이면 다르다. 다른 마을들은 어둠 속에 잠들지만, 피라는 밝다. 몸에 좋다는 그리크 샐러드와 요거트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고 가난한 배낭족들을 위한 분식집도 많다. 이거저거 다 입에 안 맞는 사람들은 다섯 군데나 있는 중식당에 가도 좋다. 절벽 아래 옛 선착장에서 피라까지 케이블카와 당나귀가 유료로 오간다. 섬이 좁으니 어디를 가든 끼니는 이곳에서 편하게 때울 수 있다.
산토리니의 동쪽은 해변이다. 검은 모래와 붉은 모래가 뒤섞인 해변에서 사람들은 발가벗고 태양볕을 쬐고 산토리니 토종 동키 맥주를 홀짝인다. 서쪽 능선과 동쪽 해안 사이는 너른 초원이다. 지금쯤 유채가 피고 포도잎이 솟아 있겠다. 관광업에서 소외된 토종 농부들이 주인인 공간이다. 큰 마을들을 순례하다가 다리가 아파오면 그 푸른 공간을 지나 해변으로 가서 휴식한다. 5월이면 벌써 태양이 뜨겁다. 가끔 내리는 비에는 사하라에서 날아온 모래가 섞여 있으나, 걱정은 하지 않는다. 중금속이며 미세먼지는 없으니까.
여행수첩 오려두세요
가는 길
1. 유럽행 항공: 유럽으로 가는 여러 항공편 가운데 터키항공 추천. 이스탄불에서 여러 목적지까지 운항 시간이 짧다. 항공편에 따라서 공짜로 이스탄불 시티 투어도 할 수 있다. 2011년부터 작년까지 유럽 최고 여행사에 선정됐다. 인천-이스탄불 주11회, 이스탄불-아테네 주42회 운항. www.turkishairlines.com, 전화 1800-8490
2. 유레일패스: 한국 배낭족이 즐겨 찾는 유레일패스에 그리스 페리선 티켓인 아티카 패스(Attica Pass)가 추가됐다. 그리스 국내 4회, 국제선 2회를 탑승할 수 있는 티켓이다. 한국에서 예약 가능. 아테네~산토리니 왕복과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파트라스~바리 구간 국제선도 포함돼 있다. 육로 이동수단도 포함돼 있다. 1등석 242유로, 2등석 174유로. 아티카 패스 없이 직접 사는 것보다 10만원 정도 저렴하다. 패스는 각 여행사 및 kr.eurail.com에서 구입 가능. 유레일 개략 정보는 www.eurailgroup.org
산토리니 여행
1. 여행 적기: 10월부터 4월은 우기(雨期). 흙탕비가 내린다. 6월 중순부터는 불볕 더위다.
2. 이동 수단: 렌터카 필수. 하루 60유로 정도. 작은 섬이지만 걷기에는 크고 패키지를 따라다니기에는 아쉽다.
3. 숙소 구하기: 짐이 적다면 이아 혹은 피라에 있는 분화구 쪽 부티크 호텔 추천. 계단으로 오르내리기 때문에 엄청 힘들다. 짐이 많다면 아예 능선 바깥쪽에 숙소를 잡고 편하게 돌아다닌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2015년 4월 24일 금요일

많이 읽혀진 고린도의 편지와 오렌지 꽃향기

-여름 성수기에나 번지점프를 할 수 있지 지금은 안 해요.
'어? 고린도에서 번지점프를 꼭 하고 싶었는데..'

고린도 운하의 다리 밑에는 번지점프를 할 수 있게 시설을 갖춰 놓아 성수기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로 여자들이 하는 것을 보게 되니 그녀들의 간 크기는 남자들과는 다른가 보다.

고대 운하가 없었던 때에 아테네에서 델피까지 배를 타고 가게 되면, 펠로폰네소스 반도 밑으로 돌아서 가는 것과 고린도의 동쪽에 도착한 뒤 배를 육로로 이동하여 서쪽에 배를 다시 띄운 후 항해하는 방법이 있었다. 
뱃길이 약 550Km 차이가 있어 육로로 배를 이동하는 방법을 택하고는 하였는데 한계가 있었기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운하를 만들고 싶었했다. 하지만 운하는 오랜 세월이 지난 1893년에서야 비로서 만들어진다.

↑ 운하를 지나는 배

양쪽 끝에 수문 역할을 하는 다리가 놓여 배가 지나갈 때 다리전체가 바다 속에 잠겼다가 배가 지나간 후에 다시 올라온 다리에서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보곤 한다. 
잠수교 옆에는 고대에 배들을 운반했던 육로가 조금 남아있어서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을 보며 어릴 때 시청각 자료도 없이 외워야 했던 학창시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 잠수교와 디올코스 (배를 육로로 운반한 길)

고린도에서는 기독교 전도자였던 바울을 간과할 수 없다. 
1928년 지진으로 고린도 주민들은 생활 터전을 옮겨 신도시를 건설하였고, 정교회에서는 바울을 기념하는 교회를 세워 1대 사도로 바울이, 2006년부터 디오니시오스 신부가 89대 교회 지도자로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많이 들어본 사랑에 대한 글이 적혀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 사랑이란?

바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삶만큼이나 매우 다양한데 그가 고린도에 온 것은 AD50년경으로 추정한다. 
고린도가 BC146년 로마에 의해 폐허가 되었으나 고린도의 지형적인 조건으로 BC44년에 다시 도시가 건설되어 풍요로움을 되찾고 있었으며 한 세기를 못 채워 바울이 방문하였을 때는 새로운 상업의 중심도시로 급성장하여 약 30만 명이 있는 큰 도시가 되어있었다.

아크로 고린도의 최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는데 아마도 1000여명의 여 사제들이 양쪽 항구에 들어오는 배들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희극 배우들이 바람둥이를 가리켜 '고린도 사람같이 산다.'라는 표현이 만들어질 만큼 아크로 고린도는 아프로디테 신전 여 사제들의 역할로 문란한 도시가 되어 버렸다. 
바울의 눈에 비춰진 고린도의 이런 모습들은 그에게 큰 도전이 되지 않았을까? 
1년 6개월을 머물며 교회를 세우고 떠난 후에 걱정이 되어 보낸 4통의 편지가 2편으로 편집되었다는 견해도 있는데, 유실된 편지가 있는지, 편지가 편집되었는지 현재 2편만이 성경에 수록되어 고린도 전, 후서로 전해지고 있다.

고린도에 다시 방문한 바울은 아크로 고린도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2000년 전의 북적거림은 빈말이 되어 신전이 있었다는 팻말만이 남아있지만 이오니아 해와 에게 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당임에는 틀림없다. 
아크로 고린도에 올라가 보는 것이 쉽지 않은데 무작정 집을 떠나 그리스에 온 청년을 만난 덕분에 이곳까지 올라와 보게 되었다. 
인생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답답한 마음으로 계획 없이 집을 나선 청년과 함께 탁 트인 양쪽 바다를 보며 청년의 답답한 마음과 생각이 다소 정리되기를 바랐었다.

↑ 아프로디테 신전 터에서 본 이오니아 해와 에게 해

그리스에서는 바울을 기독교 전도자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이콘에서 볼 수 있다.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표현한 이콘을 보면 12사도들이 그려져 있는데 가장 가운데 베드로와 바울이 그려져 있다. 
실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12제자에 속하지 않았음에도 기독교의 전도자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하기에 바울을 12사도에 표현한 것이다. 
당시 최고의 수식어를 다 갖고 평탄대로의 앞날이 보장되어 있었던 청년이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역할에서 180도 바뀌어 예수를 전하는 자로, 종국에는 순교까지 하는 삶은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고 있어 그에 대한 그리고 전하고자 했던 이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는 모습

현재 고린도 유적지는 폐허 위에 다시 세운 기원 전후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고린도에는 로마시대의 유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화, 역사, 기독교, 유물, 풍경 등 특별히 관심을 갖는 분야가 각기 다른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조각품 하나에 큰 관심을 가진 분이 있었다. 
일명 높이 보정용 샌들을 신고 있는 조각으로 그분의 카메라가 방향을 바꾸며 하나의 조각상을 위해 수많은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재활의학과 교수이었다. 
이렇듯 보는 입장에 따라 무심히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조각상이 누군가에는 큰 의미로 다가옴을 본다.

↑ 보정용 샌들

성지순례로 고린도에 오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고 가는 곳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재판을 받았던 장소이다. 
로마의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아꼈던 세네카의 형 갈리오가 새 총독으로 51년 7월 1일 고린도에 부임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여 재판을 받게 되는데, 바울이 변론하기도 전에 갈리오는 소송을 중단시킨다. 
'유대인 여러분, 사건이 무슨 범죄나 악행에… 나는 이런 사건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피고가 법을 어긴 부분이 없어 재판할 필요가 없다고 명확하게 판결한 곳으로 비마(연단)라고 적혀 있다. 
바울이 있었던 장소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회당에서 나와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곳의 정확한 장소는 모른다. 
알려진다면 순례 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겠지만..

↑ 바울의 재판이 있었던 곳

고대 그리스 비극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두 가지 유형이 고린도와 연관되어 있다. 
비극의 결정판인 오이디푸스의 이야기와 그 후손에게 이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버림을 받아 극단의 선택을 한 메데이아의 이야기가 얽힌 샘이 있다. 
또한 눈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면 시시포스가 받고 있는 형벌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어쩌면 그 형벌의 원인 제공이었던 샘이 고린도에 남겨져 시시포스가 흘리는 땀과 함께 물을 쏟아내고 있다.

↑ 글라우케 샘
↑ 아폴론 신전
↑ 피레네 샘

'이게 바다야? 호수지!' 

에게 해의 사로닉만에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 이용한 겐그레아 항구가 있는데 지진으로 사라져 지금은 동네 주민들이 즐기는 해변으로 남아있다. 
힘들었던 고린도의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자 머리를 깎았던 곳이며 로마서를 건네주었던 곳이다. 
여유가 있으면 지진으로 잠긴 바다 속의 부두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남는 곳이다.

↑ 겐그레아

프로크루스테스의 잣대란 말이 있다. 
사람이름인데 침대에 특수 장치를 해서 길이가 유동적인 침대에 사람을 눕혀 침대보다 작으면 늘려서, 크면 자르는 못된 짓을 하다가 테세우스에 의해 똑같은 방법으로 정리가 된다. 
그래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혹은 잣대란 모든 것을 자신의 잣대로 해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테세우스가 아테네까지 가는 길에 있었던 일로 그의 여정 일부가 고린도에서 에피다브로스로 가는 길에 펼쳐지고 있다. 
주변 경치는 차로 마냥 달리기엔 아쉬움을 남긴다.

↑ 아크로 고린도에서 보는 풍경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물리치료, 자연요양, 적당한 운동 그리고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 종합병원이라 불린 에피다브로스에는 몸을 정결케 하기 위한 목욕시설, 치료를 위해 환자가 꿈꾸는 곳과 그 꿈을 해석하는 곳, 실내음악당, 스타디움, 연극장, 기원을 위한 신전, 숙박시설 등이 고루 갖춰져 있었다. 
그리스 신앙을 우상숭배로 여겨 금지되어 버려지고 지진으로 인해 그나마 남은 것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유일하게 완벽한 모습으로 남은 연극장이 있다. 
산비탈인 것처럼 흙에 묻혀있다 발견되어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서 현재는 6~9월에 연극 공연을 하는 곳으로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로 아늑하게 느껴지는 산기슭에 있고 앞이 탁 트여 마치 자연을 무대로 둔 느낌을 준다. 
BC4세기 유명한 조각가의 아들 폴리클레이토스 2세에 의해 만들어졌고 BC2세기에 확장되어 약14,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그리스 극장의 특성인 원형 오케스트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 중앙의 제단에 서서 소리를 내어 보면 마치 마이크 앞에 서서 말하는 것 같은 느낌에 전율을 느낀다. 
이제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관리하여 아쉽지만…

↑ 에피다브로스의 극장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기 위해 에피다브로스의 극장에 대한 논문을 찾아 지금은 대학원생인 아들에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보라고 했다. 
'아빠. 미적분까지 해야 돼?' 
이젠 근의 공식도 흐릿한 내게 아들의 말은 그 논문을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을 빨리 포기시켰다. 
이제는 미적분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안 되지만, 혹여 했다 한들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 논문의 요지는 원형극장이 완벽한 음향을 전달하는 것에는 원형극장의 구조에도 영향이 있지만 극장에 사용된 석회암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한다.

↑ 에피다브로스 극장과 어울리는 황금비율을 품은 꽃

치료경위에 대한 기록이나 수술도구도 유물로 남아 있는데 아테나 여신의 탄생이 제우스의 머리를 열고 나왔다는 이상야릇한 얘기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린도의 뇌를 표현한 유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머리를 여는 외과 수술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유추가 되기도 한다.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상징성이 있는 999란 숫자가 있는데 오래 전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며 계단의 숫자를 확인해 보겠다고 열심히 세다가 그만 잊어버렸다. 
계단을 다 오를 때까지 어떻게 이야기 한마디 안하고 가겠는가..

팔라미디 성에 오르는 것은 차로 접근해 쉽게 들어가는 것보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힘들지만 뒤에 펼쳐진 풍경과 함께 오르는 것이 좋다. 
프랑스에서는 그리스 여행에 나프플리오가 필수라고 할 정도로 프랑스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인데, 아마 성채보다는 도시 자체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여느 그리스 도시와는 다르게 오래되었지만 잘 정돈된 건물 벽을 타고 내린 꽃, 아기자기한 모습의 골목에 보이는 상점과 음식점 등을 기웃거리며 골목길 산책하듯 지나 항구로 방향을 바꾸면 '날 부르지~'하는 소리가 바람에 실린 듯 바다 위에 덩그러니 성채 하나가 외롭다고 서 있다. 
브루지를 마주하고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카페들이 줄지은 야자수와 함께 있으니 어찌 커피 한잔 없이 떠날까?

↑ 브루지 성채

'뭐 뿌리셨어요? 냄새 좋다~' 
-오렌지 꽃향기에요.

오렌지 나무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보며 질문을 던졌는데 나를 대변하듯 재미없게 짧게 답변해 놓고 멋 적어서 향기를 맡아 보자고 차를 세우고 오렌지를 사서 몇 개를 권해 본다. 
매년 4-5월에는 나프플리오에서 고린도로 이어진 길은 오렌지 꽃향기가 가득하여 달리는 차 안에도 스며든다.

봄에 맡는 향기도 좋고 겨울에 달린 열매를 보는 것도 그 달콤함 그대로이다. 
교민 한 분이 차를 세워놓고 이름하여 서리라는 것을 하고 있었는데 몇 개 따지 않아 안쪽에서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미안한 마음으로 주인 앞에 섰는데,

-차 트렁크를 열어봐요.

에구~ 트렁크 확인을 하겠다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트렁크를 여니 주인이 수확하던 오렌지 한 박스를 맛보라며 차에 넣는 순간 그 교민 분의 마음은 감동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떠나 생활한지 오래되어 잘 모르지만 그리스에는 이런 모습이 남아있다. 
차를 세우고 몇 개 따볼까?

↑ 가로수로 쓰인 오렌지 나무의 열매와 꽃, 맛은..
<기사 출처 : 유로자전가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