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일 수요일

비빌 언덕 없는 N포세대…"5년간 로또만 300번 사"

◆ 내부갈등에 무너지는 한국 사회 ③ 좌절을 넘어선 '포기' ◆


서울 시내 한 중소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는 최 모씨(32)는 스스로를 '로또 폐인'이라고 부른다. 매주 월요일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서 1만원어치 로또 복권을 산 지 벌써 5년째. 취업준비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300여 차례 복권을 샀지만 대부분 '꽝'이었다.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낮다지만 최씨는 "좀처럼 복권 구매 습관을 버리기 어렵다"고 한숨을 쉰다. 언젠가부터 복권만이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당첨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왜 모르겠나.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복권이라는 희망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1만원의 희망밖에 남지 않은 현실에 한숨을 쉰다. 

"죽도록 일했다"는 최씨는 3년차 직장인이다. 그의 월급은 세후 260만원.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 썼지만 여태까지 모은 돈은 3000만원이 전부다. 통계청이 발표한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최근 5억5123만원으로 최씨가 월급 200만원을 매달 모아도 서울 시내에서 아파트를 마련하기까지 20년 이상이 걸린다. 그는 "몇십 년이 걸려도 제 힘으로 서울에 내 집 한 채 살 수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사회냐. 결혼은 이미 포기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최씨뿐만이 아니라 연애와 결혼, 출산을 넘어 취업,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 희망까지 포기해야 하는 젊은 세대는 이른바 '7포 세대'로 대변된다. 최근에는 '7포'를 넘어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아예 무한대라는 'N포 세대'로 발전했다. 

젊은 세대는 "문제의 원인이 사회구조에 있음에도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노력만을 요구한다"며 '노오력(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뜻하는 역설적 표현)'이라는 신조어로 기성세대에 불만을 털어놓는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내놓은 '한국형 사회 갈등 실태 진단 보고서'는 우리 사회에 '희망'이 사라지고 '좌절과 포기' 정서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국면에서는 젊은 세대 전반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넘쳤지만 불과 30여 년 만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진 우리 사회는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의 형성'이 어려운 구조가 됐다. 청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내 집을 마련하기조차 어렵다.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고착화가 결국 우리 사회를 '희망이 없는 곳'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보고서는 염려했다. 취업난과 생활고에 지친 청년들 사이에서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포기 문화'가 번지면서 악성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사토리(깨달음) 세대'로 불리며 사회·경제적 성공을 포기한 일본 젊은 세대와 그 모습이 빠르게 닮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포기 사회'의 극단적 형태인 일본 사토리 세대는 국가 미래를 어둡게 하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태다. 

포기 사회 양상이 비단 젊은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보고서 연구팀이 105명을 상대로 심층 면접한 결과 기성세대에서도 '포기' 정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경제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40대와 50대 역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우 지쳐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연구진이 40·50대 실험 대상자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 기성세대는 "자녀들만은 풍요로운 환경에서 키워보겠다는 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의지"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자 하는 계획" 등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대부분 비관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주부 A씨(65)는 "옛날에야 자수성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빈손으로 어떻게 일으켜나가느냐. 기초가 있어야 일으켜나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광주에서 판매업에 종사하는 B씨(55·여) 역시 "열심히 살아서는 절대 잘살 수 없다고 본다. 그냥 열심히 살면 먹고사는 정도지, 부자로는 절대 못 산다"고 푸념했다. 
<기사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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