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4일 금요일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한국은 각자도생의 사회: 어려움에 빠져도 타인의 도움 기대 못해

한국은 진정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인가? 자기 살 길은 자기가 알아서 찾아야 하는 사회일까? 곤궁에 처했을 때,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나 역시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돕는 '건전한 공동체'와는 거리가 먼 사회일까? 

지난 6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더 좋은 삶 지수(Better LifeIndex)'를 보면 정말로 그렇다.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당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친구나 친척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인은 72%가 '그렇다'고 대답해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스위스가 96%로 공동 1등, 덴마크, 핀란드, 스페인 등이 95%로 그 뒤를 이었다. OECD 평균은 88%였다. 

어떤 이들은 '72%면 많은 거 아냐'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90%가 넘는 나라들이 이상한 거 같다'며 신기해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가 한국이 '각자도생의 나라'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약하다는 증거일 뿐이다. 

더욱이 한국은 하위계층, 다시 말해 타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더 사회에서 고립돼 있다는 점에서 '병든 공동체'라고 할 것이다. 초등학교 의무교육만을 받은 하위계층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 친구나 친척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겨우 53%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역시 OECD 국가 중 꼴찌였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은 거의 절반 가량이 '각자도생'의 삶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반면 아이슬랜드와 스위스는 하위계층의 96%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핀란드는 94%, 아일랜드는 93%, 노르웨이, 뉴질랜드는 92%가 '그렇다'고 답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하위계층조차 대부분이 자신을 도와줄 친구가 있다고 답하는 이들 나라가 눈물 나도록 부럽다. 

이들 나라에서는 대학을 나온 상류층이든 초등교육만 받은 하류층이든, '그렇다'는 대답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이슬랜드는 아예 차이가 없었고 핀란드와 아일랜드는 상류층이 하류층보다 겨우 3%포인트 높았을 뿐이다. 반면 한국은 상류층이 하류층보다 무려 30% 포인트나 높았다. 이는OECD 국가 중 유례없이 큰 격차다. 최근 몇 년 새 경제위기로 나라가 휘청대는 그리스가 21% 포인트로 한국 다음이고, 터키와 포르투갈이 15% 포인트로 그 다음이다. 웬만큼 선진국 대열에 들어 있는 나라에서는 하위계층도 어려울 땐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산다.

인간은 어려움에 처하면 타인의 도움을 갈망하게 된다. 원래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물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도와주세요'라고 소리치지 않는가. 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 속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옥시토신은 타인과 연결되고, 소통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려고 한다. 따라서 공동체의 도움을 얻어 어려움을 이겨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요, 생리적 작용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불행히도 10명 중 3명 꼴로, 특히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받은 하위계층은 거의 10명 중 5명 꼴로 그런 생리적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나는 왜 한국에서 그토록 '욱'하는 마음에 저지르는 '우발적 범죄'가 많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도움을 호소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몸 속에서 옥시토신 호르몬이 분비돼, 타인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으니, 스트레스는 더욱 더 가중된다. 드디어 분노의 감정에 도달한 순간, '욱'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는 공동체 네트워크가 유독 발달돼 있다. 이들 나라 중 덴마크에서는 누군가가 "힘들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그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하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덴마크인들은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힘들다"고 말하면 그는 진짜 힘든 것이고, 그렇기에 그를 도와야 한다는 공동체의 의무감이 더욱 강해진다고 한다.

그에 비해 지금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가? 송파 세모녀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는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최상류층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만다. 어차피 최상류층은 권력과 돈의 위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중산층 이하 계층은 타인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 타인의 도움에 기대지 않고, 나 홀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는 소수만이 승자가 될 뿐이다. 
<기사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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