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8일 수요일

'관계'할 때 나오는 성호르몬, 신앙심 높인다(연구)


-- 잠자리할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이 신앙심을 강하게 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shutterstock.com)
부부나 연인과의 잠자리 때 분비되는 성호르몬 옥시토신이 영적인 힘(영성)과 신앙심을 강하게 해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지가 최근 보도했다.

미국 듀크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옥시토신은 사회적 유대감 강화, 여성 출산 촉진 외에 종교적 영성을 강화해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듀크대 연구팀이 중년 남성의 옥시토신 수치를 높여준 결과 대상자들의 영적인 힘이 강해졌으며 이 같은 효과는 이후 1주일 동안 상당분 유지됐다. 플라세보(가짜 약)를 처방받은 통제그룹은 영성 수준이 높아지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옥시토신을 처방받은 실험그룹은 명상 중 긍정적인 감정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보고서의 주요저자인 사회심리학자 패티 반 캐펄런 박사는 대학신문 '듀크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연구에서는 영적인 힘과 명상이 각각 건강ㆍ웰빙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리는 영적인 경험의 품격을 높여주는 생물학적 요인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반 캐펄런 박사는 그러나 이번 조사결과에 대한 지나친 일반화를 경계했다. 또 “영적인 힘은 복잡하고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옥시토신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과 믿음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그녀는 “옥시토신은 인체가 영적 믿음을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옥시토신은 시상하부에서 생산되며, 이 호르몬이 공감ㆍ신뢰ㆍ사회적 유대감ㆍ이타심 등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 몇몇 연구결과도 있다. 옥시토신을 처방받은 그룹은 자신들의 삶에서 영적인 힘이 중요하며, 인생에는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라고 답변했다. 이런 결과는 조사 대상자들의 종교와 무관하게 나타났다.

옥시토신을 처방받은 그룹은 “모든 삶이 상호 연결돼 있다”거나 “모든 사람을 묶는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나 영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표현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또 경외감ㆍ감사ㆍ영감ㆍ사랑ㆍ희망ㆍ관심ㆍ평온 등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이번 연구결과는 영적인 힘이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며 '사회적 인지 및 감정 신경과학' 저널에 실렸으며 성 전문 인터넷신문 속삭닷컴이 보도했다.
<기사 출처 : 코메디닷컴>

혼자의 시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혼밥! 혼술! 혼영!

올해 트렌드가 ‘혼밥’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묘한 이야기다. 혼밥은 혼자 밥먹는 일을 뜻하는 신조어가 아니던가. 우리가 이 행위에 이름 붙이기 한참 전부터 사람들은 혼자 밥을 먹어왔다. 그런데 이제와 새삼스럽게 ‘혼밥족’이니, ‘혼술’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홀로 먹고, 홀로 마시며, 홀로 즐기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혼밥의 시대가 왔음을 실감하기 위해 잠시 숫자들을 살펴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한국 1인 가구의 수는 약 520만 명이다. 전체 가구의 약 27.2%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오는 2020년에는 1인 가구의 비율이 30%까지 치솟을 전망이라고 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소비행태를 일컫어 ‘솔로 이코노미’라 부른다. 이 정도 규모를 갖췄으니 모든 문화와 소비가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재편성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1인용 가구와 가전의 매출이 상승하고, 1인 가구를 겨냥한 소포장 식품의 매출도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모두가 혼자’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나와 내가 마주앉는 혼자의 시대를. 

<혼밥>




▶밥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자먹는 밥은 외로움과 궁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촌스러운 발상이다. 유행처럼 번진 혼밥 열풍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우스개소리 삼아 ‘혼밥 레벨 테스트’라는 것이 떠돌 정도다. 내용인즉슨,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난이도 별 미션을 주는 것이다. 쉬운 순서대로 편의점에서 밥 먹기, 학생식당에서 밥 먹기, 패스트푸드점에서 밥 먹기, 분식집에서 밥 먹기 등이다. 식사 메뉴에 따른 차이라기보다는 혼자 온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어도 덜 눈치가 보이는 식당 순서라고 보는 게 맞겠다. 혼밥 테스트의 난이도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고깃집에서 절정을 찍는다. 고깃집의 경우 2인분 이상 주문해야 식사 가능한 경우가 많고, 왁자지껄하게 여러 사람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장소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 고깃집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혼자 찾아 식사하기에 큰 무리가 없다. 특히 회사 밀집 지역에서 점심 장사를 주로 하는 식당의 경우, 혼자 온 직장인들이 일렬로 앉을 수 있는 좌석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선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하거나 마주볼 필요 없이 편안하게 혼밥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다. 

우리보다 일찍 1인 가구 시대를 맞이한 옆나라 일본의 경우에는 혼밥 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도 작은 식당에 들어가보면 주방을 마주보고 일렬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이 대부분이다. 혼자 오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진 1인 식당이 따로 있을 정도다. 식당 곳곳에 앉은 혼밥족들은 아무 말 없이 신문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혼자 식사를 한다. 5년 전만 해도 일본의 ‘혼밥 행렬’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왜 직장 동료나 친구와 함께 밥을 먹지 않고 혼자 오는 손님이 대부분인지 의문이 들었다. 

일본과 한국은 문화가 다르다.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일본인들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서로 선호하는 메뉴나 식사 패턴이 다른데 굳이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우리는 함께 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본인이 썩 배고프지 않더라도 직장 동료가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 배려하는 차원에서 같이 식사하는 게 한국의 문화다. 그런데 혼밥 문화가 횡행하며 직장에서의 점심시간 풍경도 바뀌고 있다. 다들 이미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예를 들어보자. 직장생활을 할 때 식단 관리 차원에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식사하러 나가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혼자 밥 먹어도 괜찮겠냐는 의미였다. 나는 텅빈 사무실에서 조용히 도시락을 먹었다. 쓸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반대였다. 혼자 먹는 점심은 느긋한 휴식시간으로 다가왔다. 사무실이 종로 인근이라 12시 즈음이 되면 그 인근의 식당은 허기진 직장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1시간의 점심시간은 밥만 먹고 복귀하기에도 빠듯했다. 그런데 혼자 도시락을 먹고 나니 여유가 넘쳤다. 남는 시간에 낮잠을 자거나 청계천 산책을 했다. 여러 사람의 입맛을 맞추느라 싫어하는 메뉴를 억지로 먹어야 하는 일도 없었다. 잠시라도 업무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물론 곤란할 때도 있었다. 사장님이 점심 시간에 다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하면 혼자 도시락을 싸온 내 존재는 눈엣가시 같았다. 단체 행동에서 비껴나간다는 이유로 눈치를 받았다. 그럴 때면 혼밥의 자유를 박탈 당하고 전 직원이 모이는 식사자리에 참석해야했다. 그 자리는 실로 불편했다. 점심시간부터 술을 마시거나, 불편한 화제가 등장하기 일쑤였다. 혼자 밥을 먹을 땐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거북함이었다.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건 아니다. 실제로 직장인들 사이에서 점심시간 혼밥족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직장 상사가 일 년 내내 돼지국밥만 먹자고 하는 통에, 점심시간마다 약속이 있다고 핑계를 대고 홀로 식당을 찾는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현대인의 혼밥에는 ‘외로움’이 아니라 ‘자유’가 깔려있다. 사회생활에서 관계에 치이고 지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혼자가 되길 자처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이라도 편하게 먹자는 의미에서다. 

혹자는 이런 혼밥 열풍을 염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공감과 소통을 통해 살아가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고립되고 사회성을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일부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힘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벗어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다시금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누군가에게 나를 맞출 필요 없이 오로지 내 취향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혼밥은 처량맞지 않다. 햇반에 참치캔을 뜯는 처량맞은 모습을 상상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나는 주변에서 ‘혼밥의 달인’을 여럿 목격했다. 잡지사에 다니는 K씨는 맛집에 통달한 타입이다.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말자는 주의인 그는 허름한 국밥집부터 프렌치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까지 혼자 즐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소엔 혼자가 더 편하다고 한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할 경우엔 식사 메뉴나 가격대를 어느 정도 합의해야 하는데, 본인이 가고 싶은 레스토랑이 부담스러운 가격일 땐 상대에게 권유하기 꺼려지는 탓이다. 게다가 상대와 약속 시간을 맞추다보면 원하는 맛집에 예약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식사를 천천히 하는 편이라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 혼밥을 선호하기도 하고 말이다. 요즘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라는 말을 덧붙였다. K씨는 서울 시내의 온갖 맛집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SNS에 공개한다. 굳이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맛집을 소개하며 소통하는 일이 훨씬 즐겁다면서. K씨의 경우를 봤을 때 혼밥은 어쩔 수 없이 혼자 먹는 밥이 아니라 취미에 가깝다.

이번엔 자취 13년차인 D씨의 경우를 보자. 취직해 서울에 혼자 살기 시작한 뒤로 D씨의 식습관은 롤러코스터 같은 변곡선을 탔다. 처음 몇 년은 라면과 햇반으로 연명했다. 잦은 회식과 외식으로 집에서 밥을 먹을 일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요리에 눈을 떴다. 그 뒤로 D씨의 저녁 일과는 ‘먹는 재미’로 가득 찼다. 하루는 고기를 비린내 나지 않게 잘 삶

아 수육으로 먹고, 또 하루는 마파두부를 볶아 밥에 얹어 먹는다. 중화풍 요리부터 칼칼한 찌개까지 본인이 좋아하는 요리는 대부분 뚝딱 해낼 수 있다고 한다. 퇴근 후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고르는 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자취 생활 초반에는 식재료를 사면 못 먹고 버리는 게 대부분이라 요리를 포기했지만, 요즘은 1인 가구에 맞게 작게 포장된 식료품이 많다고 한다. 간단한 조리 과정을 거치면 요리가 완성되는 1인분 반조리 식품이나 특정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와 식재료를 판매하는 ‘레시피 딜리버리’ 서비스도 인기다. 남는 식재료가 없어 깔끔하고 편리하다. 덕분에 요리에 서툰 사람도 좋아하는 메뉴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K씨와 D씨의 이야기로 이 시대의 혼밥이 어떤 의미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혼자 먹어도, 다 같이 먹어도 맛있는 건 똑같이 맛있다. 함께 먹을 사람이 없다고 해서 미각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 밥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혼밥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다.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며, 앞으로도 홀로 밥먹는 사람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의도치 않게 외로운 혼밥족이 되었든, 스스로 원해서 혼밥족이 되었든 홀로 차린 밥상도 밥상이다. 모두가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혼밥을 위한 꿀팁

-1. 고기도 혼자 먹을 수 있다

최근엔 1인 화로구이집이 늘어나고 있다. 일반 고깃집보다 단가가 높긴 하지만, 개인용 화로에 1인분만 주문해 먹을 수 있다. 홍대 ‘뱃장’이나 이태원의 ‘우시야’ 같은 곳을 추천한다. 

-2. 편의점 혼밥도 고급스럽다

혼자 먹는 밥은 간편식의 비중이 높다. 요즘 편의점은 혼밥족을 위한 고급 도시락이 많다. GS25는 호텔 셰프들이 제품 개발에 참여한 ‘셰프의 도시락’을 출시했다. 스페인 빠에야나 프랑스 코코뱅 등 이국적인 요리를 맛볼 수 있다.

-3. ‘배달 음식’이 아니라 ‘배달 레시피’

1인 가구를 위한 레시피 딜리버리 서비스도 추천한다. 집에서 그럴싸한 요리를 하고 싶은데 식재료 쇼핑이 번거롭고 부담스럽다면, 한끼 먹을 양만 파는 레시피 딜리버리 서비스를 이용해보자. 밀푀유 나베나 스테이크, 파스타 같은 요리를 쉽게 해먹을 수 있다.

<혼술>




▶내 술친구는 나예요

혼밥에 대한 이해가 끝났다면, 다음으로 심화 단계 ‘혼술’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혼밥과 혼술은 간혹 결을 같이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끼니는 한국인의 습관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세 번 챙겨먹어야 하는 필수적인 것이다. 혼자이든 혼자가 아니든 밥을 거를 수는 없다. 하지만 술은 다르다. 꼭 마셔야 할 이유도 없고, 모두가 마시는 것도 아니다. 혼밥이 필수라면, 혼술은 선택의 영역에 있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술자리’가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혼술은 그야말로 돌연변이 같은 문화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면 새내기들은 술부터 배우게 된다. 회사에 입사해도 술을 마시고, 거래처를 접대할 때도 술을 마시며, 누군가 죽거나 결혼을 했을 때도 술을 마신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관계를 시작할 때 술을 마시곤 한다. 마치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소주잔으로 징검다리를 세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타인과의 관계라는 목적이 쏙 빠진 상태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혼술족과 혼술 문화는 날이 다르게 부흥하고 있다. 나 역시 혼술을 즐긴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 술을 마시는 시간은 혼자 즐길 수 있는 가장 진한 유흥이다. 얼마 전엔 <혼술남녀>라는 드라마가 방영을 시작했다. 제목 그대로 남녀주인공들이 각자의 이유로 혼술을 즐기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등장인물들은 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일과가 끝나고 밤이 되면 혼자 술을 마신다. 맥주 캔을 따서 시원하게 들이키는 장면이 나오면 시청자들도 침을 꼴깍 삼키게 된다. 여자 주인공은 혼술을 마시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힘든 날 진심으로 위로해줄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씁쓸한 이야기지만 드라마 속 눈물 어린 혼술 에피소드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바쁘고, 각자의 이유로 지쳐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땐 일주일이 술자리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내 주량보다 더 많이 마셔야 했고, 술맛도 못 느끼고 분위기를 맞추느라 떠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친구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 좌절된 꿈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모두 지쳐 있었고 각자의 사정을 늘어놓기 바빴다. 서로를 아꼈지만, 서로를 보듬어주기엔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혼술은 다르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 후에 마시는 맥주는 누구의 위로도 필요없는 보상 같은 것이다. 나는 애써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말에 억지로 장단을 맞출 필요도 없다. 연거푸 소주를 권하는 직장 상사를 향해 빈 잔을 내밀 필요도 없고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나 와인을 사와 조용히, 천천히, 내 주량에 맞춰 마시는 시간은 달콤하고 평온하다. 혼자 마시기 적당한 술집이 있다면 퇴근길에 잠시 들러 맛있는 안주와 술을 곁들여도 좋다. 지치고 짜증스러운 일상 속에서 “이 일만 끝내고 이따가 시원하게 한 잔 해야지”하고 위로 받는 게 나만의 일은 아니겠지. 마음 맞는 이들과 마시는 술도 즐겁지만, 혼술은 또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혼자 마시는 술이라고 슬픈 하루를 씻어내는 위로의 술자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나만을 위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좋은 위스키를 사두고 한 잔씩 마셔도 좋고, 집에서 간단한 칵테일을 만들어 마실 수도 있다. 요즘은 한국에도 훌륭한 바가 많다.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가진 향과 맛을 음미하며 취미로 즐길 수 있다. 맥주를 탐구해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일반 마트 진열대만 훑어봐도 수십 종의 수입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펍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이나 한국의 소규모 양조장에서 개발한 독특한 풍미의 맥주를 맛보는 것은 맛집 탐방 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취향에 맞는 술을 천천히 마셔보자. 혼자 마실 때만 느낄 수 있는 술 본연의 향과 맛이 혀끝에 와닿을 것이다. 술을 마시는 건 일상을 벗어난 일탈의 행위다. 얼굴은 조금 빨개지고, 마음은 들뜨게 된다. 이 시간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건 외로움이 아니라 특혜다. 소박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삶의 행복이 아닌가. 

혼술의 규칙

-1.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내 주량을 잘 아는 건 나다. 절대 다음날 무리가 갈 정도로 마시지 말아야 한다. 혼술은 자제도 쉽고 과음도 쉽다. 가장 기분 좋을 만큼 마신 주량을 기억해 두었다가 스스로 한계를 정하자. 

-2. 기분이 나쁠때 혼술하지 말 것

지극히 우울하거나 슬픈 날엔 혼술을 추천하지 않는다.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오래된 지인과 함께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자.

-3. 적당한 안주를 곁들일 것 

빈속에 술은 금물. 오늘 마시고 싶은 술과 어울리는 맛있는 안주를 곁들이자. 혼술의 기쁨을 더해주는 미각의 축제가 될 것이다. 

<혼영>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혼자 보자

먹고 마시는 것만이 일상의 전부는 아니다.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사람들은 의외로 혼자 보내는 시간 앞에 무기력해진다. 사람들과 만나면 대화를 주도하고, 스포츠나 술자리를 즐기던 사람들이 혼자 남으면 무얼 해야할지 몰라 스마트폰 게임만 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혼밥이나 혼술 트렌드를 오롯이 스스로와 마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사회 생활 속에서 경쟁과 눈치 싸움에 지쳐 관계에 물린 사람들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머리 속을 꽉 채운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비일상의 영역에서 말이다.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건 ‘혼영’, 혼자 보는 영화다. 

혼자 영화관에 가본 적이 있는지. 아마 영화관에 혼자가는걸 머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화관은 특별한 날 데이트 삼아 찾는 장소라는 편견 때문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영화관은 완벽히 독립된 개별의 장르에서 아무말 없이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혼자 즐기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는 사실. 실제로 CGV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나홀로 관객이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했을 정도다. 이 기세를 몰아 1인 전용 좌석까지 생겼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혼자서 보자는 주의다. 혼자 보는 영화는 꽤 즐겁다.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지 않고 언제든 시간이 날 때 불쑥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으며, 영화 취향이 마이너한 사람도 남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원하는 작품을 고를 수 있다. 함께 감상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건 아쉽지만, 작품에 조용히 몰입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예전에 봤던 영화도 조용히 혼자 감상하면 다른 의미로 와닿는다. 그래도 영화관이 번거롭다면 집에서라도 조용히 나만의 영화관을 꾸려보자. 요즘엔 콘텐츠 서비스가 많아서 집에서도 쉽게 여러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씻어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가장 접근성이 좋은 방법으로 혼영을 추천하긴 했지만, 홀로 하는 일 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여행이다. 여행을 혼자 가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러는 위험하다며 말리기도 한다. 끝없는 접촉과 관계에 지친 우리들은 때때로 ‘외로움’을 갈망하고 ‘혼자가 될 자유’를 욕망한다. 낯선 곳에 혼자 당도하는 여행이야말로 스스로를 마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끊임없이 소통을 강요받았던 시간에 대한 적절한 보상임은 물론이다. 대화와 관계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외로운 시대다. 타인의 취향을 모색하며 살지만 정작 나 스스로를 모르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끌려다니지 않고 본인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와 대화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혼자 영화도 좋고 책 읽기도 좋고, 여행도 좋다. 본인에게 맞는 방식으로 셀프 힐링과 소통의 시간을 만들어보자.

앞으로의 시대는 조금 더 고독해질 것이다. 대가족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며 살아가던 시대가 저물고, 주거 규모가 점점 파편화 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 우리는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스스로를 몰라서 외롭다. 나 자신을 위해 근사하게 혼자지내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혼영의 규칙

-1. 혼자 가기 좋은 영화관을 찾아라

광화문 시네큐브 같은 곳은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도 자주 상영해준다. 음식물 반입 금지인데다 번잡한 광고조차 상영하지 않아서 혼자 조용히 영화 감상하고 싶을 때 딱이다.

-2. 나만의 영화관 만들기

집에서도 프로젝터를 통해 영화관 분위기를 낼 수 있다. 1인 가구의 협소한 주거 공간에서도 충분한 스크린을 만들어 주는 작은 사이즈의 제품이 많으니 영화 마니아에게 추천한다. 여기에 혼술을 곁들이면 최고다.

-3. 혼자를 위한 자리는 있다

영화 티켓을 구하기 힘든 시간이라고 해도 1인을 위한 자리는 남아있는 법이다. 주말 밤의 티켓도 어렵지 않게 사수할 수 있는 건 혼영만의 작은 특혜랄까.
<기사 출처 : 매일경제>

하루키가 반해 3년 머문 미코노스 섬, 그럴 만했다

미코노스의 어느 멋진 날

▲  멀리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새하얀 집과 파란 지붕은 그리스 섬들의 상징이다.
ⓒ 한성은

아주 오래전에 우린 마주쳤지
서로 알아봤어
운명이란 말도 필요 없어 우리는
어렴풋한 얘기지 지나버린
믿기 힘든 말투지 하지만

넌 나에게 100퍼센트
더 말할 게 없는
나를 봐 뒤돌아봐
날 알아줘

- 보드카레인, '100퍼센트' 노랫말 중에서

100퍼센트 완벽한 여행지. 눈부시게 맑은 하늘과 끝없는 푸른 바다 사이에 새하얀 집들이 새파란 지붕을 머리에 얹고 바다를 향해 앉아 있다. 모아이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것처럼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풍경은 단지 자연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마을을 단장한다. 섬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거대한 풍경화를 그리듯 벽과 지붕을 칠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되었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은 그 하얀 벽을 배경으로 파란 창문 곁에 서서 인생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곳으로 모여든다. 일생에 한 번뿐인 허니문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그곳은 바로 미코노스(Mykonos) 섬과 산토리니(Santorini) 섬이다.

우아하게 차려입고 예쁜 캐리어를 끌며 신혼여행으로 왔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누가 봐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색으로 그리스 에게 해 투어 첫 번째 목적지인 미코노스 섬으로 왔다. 누군가에게는 신혼여행지, 누군가에게는 누드 해변과 비치 클럽 파티로 기억될 미코노스 섬이지만, 나에게 미코노스는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 숲)의 고향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상실의 시대>를 집필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미코노스 섬은 성지(聖地)였다. 

20대를 보내는 동안 해마다 여름이면 하루키 소설을 읽었었다. 주인공들이 25m 풀장을 가득 채울 만큼의 맥주를 마시면, 나도 덩달아 자취방 구석에 맥주병을 산처럼 쌓았다. 그들이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음악을 들으면 나도 들었고, 그들이 야나체크(Janacek)의 신포니에타(Sinfonietta)를 들으면 클래식 음악이 뭔지도 모르면서 귀에 꽂고 있었다.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읽었던 작품이 <상실의 시대>였다. 몇 번이나 읽었던 그 작품을 그리고 그 두꺼운 책을 밤새 읽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겉멋이 가득 차기 마련인 20대였으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날의 기분이나 그때의 감상은 떠오르지 않지만, 13년 전 이맘때쯤 입대를 앞두고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는 기억은 뚜렷하다. 그래서 꼭 미코노스 섬에 왔어야 했다. 

미코노스에서 하루키를 찾고 싶었다.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3년을 지냈을까. 미코노스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에게도 하루키 같은 영감이 찾아올까. 어쩌면 미코노스에서 와타나베와 키즈키, 미도리와 레이코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 놀이 공원에서 외치는 것처럼 미코노스는 나에게 '꿈과 환상의 나라'였다.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 집필한 미코노스 섬

▲  파라다이스 비치는 누드가 허용되는 해변이다.
ⓒ 한성은

▲  비치 클럽에서는 뜨거운 한낮에도 파티가 열린다.
ⓒ 한성은

미코노스 섬 전체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인 파라다이스 비치 리조트의 캠핑장에 도착해서 침대보다 먼저 도마뱀과 인사를 했다. 삐걱거리는 선풍기는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콘센트에 꽂아놓은 여행용 전기 쿠커는 언제나처럼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물을 팔팔 끓여주었다. 라면 스프를 풀고 파스타 면을 끓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먹었지만, 해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신나는 클럽 음악은 마음을 들뜨게 해주었다. 저녁노을을 받은 바다는 붉게 물들었고, 젊은이들은 시간이 살짝 비켜 서 있는 비치 클럽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거점 마을인 타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차를 타고 한참을 와야 하는 파라다이스 비치는 그야말로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천국이었다. 물론 비싼 술값을 감당할 수도 없고, 밤새 춤을 추고 놀 만큼 체력이 넘치지도 않는 나는 그저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지켜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말이다.

미코노스 섬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기 때문에 대중교통 사정이 좋지 않았다. 섬에서 운영하는 로컬버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주요 해변을 중심으로 운행했는데 배차 시간도 길고 요금도 비쌌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스쿠터를 빌리기 위해 타운으로 갔다. 타운의 정식 명칭은 '호라(Hora)'인데 모두들 그냥 타운이라고 불렀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미코노스에 머물면서 타운은 매일 한 번씩은 들러야 하는 곳이다. 물론 숙소가 타운에 있으면 좋겠지만, 한여름 성수기에 타운의 숙소들은 호기심으로 한 번 물어보기도 민망할 만큼 가격이 비쌌다. 미코노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두 타운에서 찾을 수 있다. 

'리틀 베니스'라 불리는 호라의 해변은 정말 사진으로 보던 베네치아와 닮아 있었다. 실제로 미코노스가 과거에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베네치아 사람들에 의해서 지어진 건물들이란다. 바다를 향해 나 있는 창문과 발코니들이 그림 같았다. 그릭도어(Greek door)라 불리는 파란 대문과 창문들이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과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냈을 텐데 이제는 그것이 관광 자원이 되어 지금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니 참 아이러니다.

미코노스의 상징과도 같은 풍차도 호라에 있다. 바다를 향해 줄지어 선 다섯 개의 풍차는 미코노스에 도착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힘차게 돌며 곡식을 빻았지만, 지금은 그 기능을 잃고 그저 관광용으로만 서 있다. 이미 사진으로 책으로 참 많이 보던 장면이었다. 그래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괜히 두근거리고 설?다. 미코노스를 검색하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피사체를 똑같은 각도에서 찍었는지 직접 보니까 이해가 쉬웠다. 나 역시 미코노스 타운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5개의 풍차니까. 

▲  타운이라 불리는 호라 마을의 전경.
ⓒ 한성은

▲  미코노스를 상징하는 5개의 풍차.
ⓒ 한성은

1년 내내 클럽 파티가 벌어지는 해변

호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건물들 사이로 미로처럼 뻗은 골목을 품고 있어서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한참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여유가 넘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답게 호라의 좁은 골목들에는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매장들이 즐비했다. 입이 쩍 벌어지는 가격표를 달고 있는 옷과 보석들이 전시된 고급 부티크들 사이로 걸으면 미코노스의 전통 가옥들이 만들어내는 소박한 풍경과 달라서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해외 명품 브랜드의 매장들도 자기 브랜드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미코노스의 풍경에 녹아들어 있어서 묘한 이질감은 그대로 호라의 독특함으로 기억되어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사동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은 세계 최초로 영어가 아닌 현지 언어로 간판을 달고, 전통 기와와 창호 디자인으로 외관을 꾸몄다.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 상권을 잠식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현지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는 것은 좋은 태도인 것 같다. 미코노스에서도 이들 브랜드가 미코노스의 풍경을 해치고서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명품 브랜드나 고급 부티크가 아니라 미코노스 현지인들의 삶이 녹아 있는 거리였다면 더욱 아름다웠을 것 같지만 말이다.

호라의 골목을 헤매고 다니다가 배도 고프고 인터넷을 사용할 일도 있어서 그 유명한 '그릭 요거트'를 먹어보기로 했다. 미코노스의 모든 가게가 그렇듯 작고 아담한 요거트 가게는 테이블 세 개가 전부였다. 

요거트를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팥빙수 그릇만 한 대접을 하나 갖다 준다. 가격이 저렴해서 조그만 젤라또 한 스쿱 정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푸짐하게 주어서 참 흐뭇했다. 그릭 요거트의 핵심은 그 특유의 찰진 식감인데, 한 스푼 가득 떠서 뒤집어도 요거트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릭 요거트에 유기농 꿀을 섞어서 떠먹으면 그야말로 '몸이 건강해지는 맛'이다. 우리나라 슈퍼마켓에서 파는 요거트와는 완전히 달랐다. 요거트를 먹는 게 아니라 밥을 퍼 먹는 것처럼 커다란 수저로 그릭 요거트를 푹푹 퍼먹었더니 그대로 한 끼 식사가 되어 주었다.

▲  한 끼 식사로도 손색 없었던 정통 그릭 요거트.
ⓒ 한성은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스쿠터를 빌리러 갔다. 호라의 버스 정거장 주변에는 미코노스의 교통 사정을 알려주듯 렌터카와 스쿠터를 빌려주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영업을 하는 데도 스쿠터 렌트비가 가게마다 달랐다. 가격 담합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또 한참 발품을 팔아야 했다.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낡은 스쿠터를 빌릴 수 있었다. 

스쿠터를 빌려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대형 할인마트였다. 미코노스에는 까르푸와 알파비따 마트가 여러 군데에 있었다. 숙소 근처의 미니 마켓은 모든 것이 비쌌기 때문에 3일간 먹을 식량을 비축해야 했다. 슈퍼마켓에서 사는 식자재 가격은 그리스 본토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나라보다도 저렴했다. 

여행용 전기 쿠커만 있으면 밥, 국, 파스타 등등을 모두 해 먹을 수 있어서 상하지 않는 것들을 잔뜩 사서 스쿠터 앞뒤에 실었다. 리조트의 음식이 너무 비싸서 물 한 병 마시는 것도 조마조마했는데, 스쿠터 가득 실려있는 음식들을 보니 쳐다만 봐도 마음이 든든했다. 이날 산 것들은 미코노스에 지내는 3일 동안 비싸고 맛없는 리조트 음식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생존을 위한 여러 가지 기술이 늘었지만, 그중에서 특히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중국인 슈퍼마켓에서 춘장을 사서 그럴싸한 자장면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스쿠터를 타고 미코노스 섬 투어를 시작했다. 미코노스는 해안가 곳곳에 크고 작은 해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지도에 표시된 해변만 21곳에 달했다. 미코노스 본 섬 외에 델로스 섬과 라니아 섬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났다. 그리고 해변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슈퍼 파라다이스 비치(Super Paradise Beach)와 파라다이스 비치(Paradise Beach)는 1년 내내 클럽 파티가 벌어져서 전 세계의 젊은이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또한 누드가 허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모두가 누드로 다니는 것은 아니었고 아주 가끔 용감한 사람들이 누드비치를 즐기고 있었다. 칼라파티스 비치(Kalafatis Beach)는 그리스 정부가 인정한 청정 해변이다. 현지 사람들은 에코 비치(Eco Beach)라고 부르기도 했다. 스쿠버 다이빙과 윈드서핑 같은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엘리아 비치(Elia Beach)는 미코노스 섬에서 손꼽히는 긴 해변과 잘 갖추어진 편의시설 때문에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지내기에 좋아 보였다. 그 외에도 간이매점 하나 없는 작은 해변들도 어떻게들 알고 찾아가는지 곳곳에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미코노스를 찾는 관광객들은 이들 해변 중 자신의 여행 목적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바다를 즐겼다.

▲  미코노스에는 특색있는 해변들이 많다.
ⓒ 한성은

▲  가족 단위 여행자들도 편하게 쉴 수 있는 해변.
ⓒ 한성은

스쿠터를 타고 해변이 아니라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마을을 보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이나 머물렀다는데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클럽 비치에서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어딘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코노스 섬의 또 다른 풍경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해변이 아닌 내륙으로 스쿠터를 몰았다. 

호라 마을에 이어 미코노스에서 두 번째로 큰 마을이라는 아노 메라(AnoMera)로 가는 길은 우리네 시골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염소와 소들이 논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다만, 멀리 갈 수 없도록 앞다리와 뒷다리를 줄로 묶어 놓아서 걷는 것이 불편해 보였다. 누군가가 내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줄로 묶어 놓는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묶여 있는 다리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팠다.

염소를 만나면 또 길을 잠깐 멈추고, 동키를 만나면 또 길을 잠깐 멈추고, 멋진 해안선을 만나면 또 길을 멈추며 아노 메라로 갔다. 돌담을 쌓아 길을 내고, 돌담으로 논밭을 구별해 놓은 곳을 보니 제주도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물론 어디를 보더라도 제주도 보다 예쁘지는 않았다. 해변 마을의 풍경은 이곳 사람들의 노력과 에게 해의 물빛이 더해져 미코노스가 더 예뻤다. 하지만 미코노스 섬의 안쪽은 어린 나비가 바다로 착각했다는 청무우밭 사이로 난 돌담길을 돌아가는 제주 올레길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눈이 닿는 곳마다 넉넉하고 소담한 제주의 그 풍경과 달리 미코노스는 쓸쓸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푸른 바다는 가졌지만, 푸른 산은 없었다. 

그제야 해변 마을이 유달리 그림 같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산과 나무가 없어서 사람 손으로 지은 인공물들이 자연 속에 어우러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색깔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화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화려함은 금세 지루함으로 바뀌어 버려, 미코노스에서 사흘 밤과 나흘 낮을 보내고 나니 그 예쁜 풍경 앞에서도 나는 점점 무덤덤해져 갔다.

아노 메라는 중심 마을답게 마을 입구에 커다란 공영 주차장이 있었다. 마을 중심에는 작은 광장이 있고, 작고 아담한 식당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만나면 언제나 반가운 슈퍼마켓도 광장 한 편에 있었다. 중심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붉은 지붕으로 유명한 파나기아 투리안니 수도원(PanagiaTourliani Monastery)을 제외하면 딱히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수도원 안에 있는 성당은 내부 장식을 모두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했단다. 

규모도 크지 않은 곳이라 화려하게 꾸민 내부는 여유 공간 없이 가득 차 버려서 보는 이를 답답하게 했다. 오후의 붉은 해가 실내에 비치자 황금색을 칠한 액자와 장식들이 번쩍번쩍 일렁인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신들이 '황금'을 좋아할까? 황금 불상, 황금 성당을 만들면 신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신에게 더 잘 전달될까?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으면서 시답잖은 생각을 해본다. 석가모니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부와 명예를 다 버리고 해탈하여 부처님이 되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은 석가모니 불상에 금칠을 하고 있다. 부처가 된 석가모니가 이런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정말 궁금하다.

▲  파나기아 투리안니 수도원. 붉은 지붕은 밖으로 멀리 나가야 볼 수 있다.
ⓒ 한성은

▲  성당 내부는 모두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 한성은

섬을 그렇게 좋아했다던 하루키의 마음이 이해됐다

찜찜한 기분으로 성당을 나와 마을 광장에 앉아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 보니 바람이 무척 많이 불었다. 한 무리의 인도인들이 시끄럽게 몰려오더니 자기들끼리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인도 사람들은 사진을 참 좋아한다.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하고,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인도 여행할 때 어색한 순간을 없애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카메라를 꺼내는 것이다. 그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진을 중심으로 두터운 친구가 된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보급되어서 모두의 손에 카메라가 하나씩 있지만, 10년 전에 처음 인도를 갔을 때만 해도 카메라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자기들끼리 한참을 찍더니 이번에는 나에게 와서 사진을 찍어 달란다. 같은 장소에 서서 다른 포즈로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경쟁하는 대회가 있다면 단언컨대 인도 사람들이 1등일 것이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 주고 나니 이번에는 나보고 자기들이 찍었던 자리에 가서 서 보란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사진을 찍으니 그게 아니라며 다양한 포즈를 요청해 왔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근엄한 국어교사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좋다며 손뼉을 친다. 

아주 오랜만에 '나마스떼'와 '나마스까'를 주고받으며 인사하고 헤어지니 인도가 그리워졌다. 내년 봄에는 인도로 갈 텐데 여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다음 여행지를 생각하면 설렌다.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은 다 없어지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 있는 인도. 막상 여행을 시작하면 또 사기를 당하고, 악을 쓰고, 짜증을 내고, 웃고, 울고 하겠지.

다시 스쿠터 시동을 걸고 구석구석에 있는 해변들을 찾아 나섰다. 해변마다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잠깐씩 머물다 나오는 것만으로 시간이 금방 흘렀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비치파라솔이 해변을 뒤덮은 곳이 있는가 하면 쓸쓸함이 잔뜩 묻어나는 해변도 있었다. 해양 레포츠가 발달해 있다는 해변에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곳이 신기루처럼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미코노스 곳곳을 진득하게 즐기려면 한 달도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키는 3년을 미코노스에서 살았나 싶었다.

스쿠터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마을 풍경들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황량한 들판과 민둥산을 보며 달리니 이제야 미코노스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미코노스하면 떠오르는 그 하얀 집과 파란 지붕은 호라 마을을 중심으로 한 서쪽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동쪽 마을은 새롭게 관광지로 개발하는 곳만 듬성듬성 새하얀 집들이 있었다. 그곳은 쓸쓸하고 황량했다. 

미코노스 동쪽 지역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준다면 누구도 이곳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미코노스 섬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나무 전봇대가 서 있고, 염소 무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는 이 풍경이 내게는 훨씬 정감있게 다가왔다. 호화 유람선과 쏟아지는 관광객과 밤낮없이 이어지는 클럽 파티로부터 한참이나 멀리 나와서야 에게 해에 둘러싸인 작은 섬의 그 소담한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스쿠터를 반납하기 위해 다시 호라 마을로 향했다. 다시금 미코노스는 저무는 붉은 햇볕으로 단아하게 단장을 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도 각자의 탈 것들을 길가에 세워두고 언덕 위로 모여들었다. 그 자리에서 탄성을 지르지 않은 것은 햇볕이 잘 드는 명당자리에 앉아 털을 고르며 하품을 하는 들고양이들뿐이었다. 마을의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 서서 해가 지는 속도로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호라 마을을 보고 있으니 이 섬을 그렇게 좋아했다던 하루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  타운이라 불리는 호라 마을의 중심부.
ⓒ 한성은

쏟아지는 별빛과 무서운 모기와 시끄러운 클럽 음악과 바다 냄새와 같은 밀도의 맥주 냄새에 취해 미코노스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목적지는 산토리니 섬이다. 사실 미코노스에서 에게 해의 섬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은 다 느껴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토리니를 제외하고 크레타 섬으로 바로 가려고 했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산토리니는 '미코노스보다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예쁜 곳' 정도라고 했다. 미코노스를 갔다면 굳이 산토리니는 갈 필요가 없고, 산토리니를 갔다면 미코노스는 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산토리니행 배편은 운항 거리도 짧은데 비용은 크레타로 가는 것보다도 비쌌다. 워낙 유명한 곳인 데다가 성수기가 겹쳐서 그런 것 같았다.

지나온 여행지를 떠올려보면 또 가고 싶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마음속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실 미코노스는 굳이 나누자면 후자에 속했다. 정말 예쁜데 그냥 예쁘기만 해서 정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냥 '오직 예쁘기만 한 곳'의 정점이 산토리니였다. 하지만 결론은 그러니까 가보자 싶었다.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곳이니까 왠지 숙제하는 마음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섬을 만들어 보자고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작정하고 꾸민 섬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수많은 화보와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했던 그 파란 지붕을 사진으로 찍어 보자는 숙제를 안고 페리 예약을 했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홍콩-주하이-마카오 잇는 55km 세계 최장 해상대교


바다 위에 놓인 다리로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로 기록되는 강주아오 대교의 까마득한 모습. (사진=중국청년망)

바다 위에 세워진 세계 최장(最長)의 다리인 ‘강주아오(港珠澳) 대교’가 27일 메인 공정작업을 마치고, 전 노선의 연결작업을 마무리했다.

영국 가디언지가 ‘세계 7대 기적 중 하나’로 부르는 강주아오 대교의 총길이는 55km로 총 1000억 위안(약 16조40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는 인천대교로 21.38km다.강주아오대교의 공사 평면도. (사진=중국청년망)

강주아오 대교는 홍콩-주하이-마카오를 Y자 형태로 연결해 홍콩에서 주하이, 마카오까지 30분만에 주파할 수 있다. 기존에는 홍콩에서 주하이까지 육로이동 3~4시간, 수상이동 1시간이 소요되었다.

지난 2009년 12월부터 시작된 강주아오 대교공사는 메인 해상교량 22.9km, 해저터널 6.7km 및 터널과 교량을 잇는 동,서 인공섬을 포함하고 있다.

강주아오 대교의 메인교량판에는 42만 톤의 강철이 쓰여 진도 8.0 규모의 지진에도 끄덕 없게 만들었다. 42만 톤의 강철량은 에펠탑 60개를 건설할 수 있는 양이다.

강주아오 대교의 동쪽은 홍콩특별행정구와 연결되고, 서쪽은 광동성 주하이시 및 마카오 특별행정구와 연결된다. 즉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의 두 가지 정치 제도)’의 기틀 아래 홍콩, 주하이, 마카오 세 지역이 공동 건설한 초대형 해상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다.

대교가 완성되면 세 지역간 이동시간이 크게 단축돼 단일 생활권의 기반 하에 활발한 경제교류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사진=중국청년망
<기사 출처 : 서울신문 나우뉴스>

75세 이상 고령운전자 면허갱신 5년에서 3년으로 단축

© News1
국민안전처, 관계부처 합동 노인안전종합대책 발표

앞으로 7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주기가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된다.

국민안전처는 경찰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노인안전종합대책을 28일 발표했다. 

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27% 감소했으나 노인교통사고 사망자는 4.8% 증가했다. 특히 최근 5년간 65세 이상 노인운전자 교통사고는 69.6% 증가했다.

이런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75세 이상 고령운전자에 대해 운전면허 갱신주기를 현재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도록 했다. 운전면허 갱신때마다 교통안전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또 노인보호구역을 2015년 859개소에서 2020년까지 1900여개소 이상으로 확대 지정하고 노인보행자 교통사고 다발지역에 대해서도 원인분석을 통해 맞춤형 정비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매년 노인 대상 범죄와 사고가 증가((2011년 7만6624건→2014년 13만6829건)함에 따라 농어촌 노인밀집지역 등에 대한 안전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CCTV, 비상벨 설치 등 주거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또 최근 5년간 노인요양병원에서 안전사고 증가(34건 발생·10명 사망)에 따라 이용시설별 화재대피 세부기준을 마련하고, 야간시간대에는 노인돌봄 인력배치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노인안전 종합대책은 어르신들이 안전한 사회 속에서 다음 세대들을 지혜롭게 이끌어 주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데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