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6일 토요일

도서 - 스쿨 카스트(敎室內(スク-ル)カ-スト)

이지메 발생의 메카니즘을 규명

일본의 ‘이지메’(집단적 따돌림) 연구 권위자 나이토 아사오의 <이지메의 구조-왜 인간은 괴물이 되는가>가 최근 한얼미디어에서 출판됐다. 이지메의 발생요인과 구조, 그것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중간집단 전체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이론적으로 파헤친 학술서 <이지메의 사회이론>(2001)의 대중보급판(2009)을 번역한 것이다. 

나이토는 이지메의 원인과 배경에는 ‘학교 공동체주의’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해결 방법도 명료하다. 이지메를 신체적인 공격을 가하는 ‘폭력계’와 무시, 모욕, 악의적 소문 유포를 통해 인간관계를 제한하는 ‘ 커뮤니케이션조작계’로 나누고, 전자에 대해서는 학교의 치외법권주의에서 벗어나 변호사나 경찰이 개입할 것을 장려한다. 또 후자는 학급제도의 폐지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학급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기에는 막대한 비용과 부담이 요구된다. 특히 최근에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 조작’에 의한 이지메가 주류이며, 그것도 이지메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벌어지곤 한다. 따라서 이지메든 이지메적인 것이든, 이러한 행위의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것이 교실 내에서 ‘지위의 차이’가 생겨나는 학생들 간의 관계성, 즉 ‘스쿨 카스트’에 있다고 파악한 도쿄대 대학원생 스즈키 쇼(鈴木翔)는 교육·노동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혼다 유키 교수의 지도를 받아 석사논문을 썼고, 이것이 <스쿨 카스트(敎室內(スク-ル)カ-スト)>(고분샤)로 출판돼 반향을 일으켰다. ‘스쿨 카스트’는 학급 안에서 인기도에 따라 발생하는 서열을 나타내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본뜬 조어로 최근 학교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정착됐다. 

언뜻 보면 교실 안에서의 학생들의 ‘지위’를 규정하는 관계성은 성적이나 성격 혹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따라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저자도 언급하듯 스쿨 카스트가 바로 이지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지메의 문맥에서 벗어나 스쿨 카스트를 검증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하지만 이지메를 당하지 않더라도 ‘왠지 하대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지내야 하는 스쿨 카스트는 학교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뿐만 아니라 ‘지위’의 상하관계는 어떤 조건 하에서는 악의가 뒤섞여 표적이 되는 학생이 가혹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스쿨 카스트는 이지메와 연속돼 있으며, 이지메의 온상이 되는 것이다. 

학급 내 서열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해 학생들 간의 ‘지위’가 학교 생활에서 어떻게 표출되는지 상세하게 묘사했다.


‘스쿨 카스트’를 모티브로 최근 방영된 학원드라마 <35살의 고교생>에서 학급 학생은 1군, 2군, 3군으로 나뉜다. 상위그룹은 하위그룹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거나 아이돌 그룹의 악수회 티켓 구입을 강요하는 등 악행을 일삼고, 학급도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한다. 이는 드라마상의 극단적 상황 연출이지만 1군, 2군, 3군 혹은 ‘잘난 애들’과 ‘보통 애들’, ‘못난 애들’로 각각 역할이 주어지는 스쿨 카스트의 생생한 모습이 드러난다. 

실제로는 드라마와 달리 이들 ‘지위’는 고정적이어서 그룹 간 이동은 드물다. 하지만 교사들이 스쿨 카스트를 ‘권력’이 아니라 ‘능력’에 의한 것으로 보고 학급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그것을 묵인하거나 활용하는 것은 현실과 드라마를 관통한다. 이 책은 이지메를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한국의 척박한 이지메 연구 현황을 고려하면 음미해 볼 만 하다.

<기사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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