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0일 금요일

안나와디의 아이들 / 캐서린 부 지음, 강수정 옮김 / 반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은 인도 뭄바이의 ‘안틸라’다. 그 가격이 1조 원을 웃돈다. 총 27층 높이로 면적은 3만7161㎡(약 1만1000평)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보다 넓다. 6000개의 방과 대형연회장은 물론, 가정병원·소형극장·수영장과 9개의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다. 옥상에는 3대의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헬기장이 있다. 이곳 높은 층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이 아름답다지만 바로 옆에는 세계 최대의 슬럼가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책에서 빈민가 꼬마들이 “장미 꽃밭 사이의 똥 같은 존재”라고 자조하는 거대한 빈민촌이다. 몇년 전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를 둘러봤을 때 한낮인데도 바깥에서 훤히 볼 수 있는 판잣집에서 성인 남자들이 별로 할일 없이 빈둥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해 집에서 노는 남성들이 측은해 보였다. 일견 평온해 보였던 이 빈민가에서 무시무시한 사건과 재난이 빈발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됐다.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는 도시의 빈곤과 불평등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뭄바이 빈민촌 가운데 한 마을인 안나와디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2007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약 4년간 안나와디의 현실을 집요하게 취재했다. 팩트를 핀셋으로 잡아올리듯 정교한 관찰을 하지만, 그것을 묘사할 때는 문장 마디 마디에서 아름다움이 물결친다. 대문호 찰스 디킨스나 싱클레어의 소설을 읽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인도공항공사 소유의 토지를 무단으로 점거한 이 마을은 화려한 호텔 다섯 채 사이에 애처롭게 끼어 있다. 이 마을에서 신분 승상을 위해 극우 정당의 하수인이 된 여성 아샤,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무슬림 소년 압둘, 변화하는 세상을 목격하면서도 고지식한 부모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야 하는 운명에 절망하는 소녀 미나,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가 되고자 영어 공부에 매진하는 대학생 만주 등 안나와디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앞에 놓인 삶을 버티기 위해 모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고철은 못으로 두드릴 때 나는 소리로 성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플라스틱은 씹어서 등급을 나누되 그 중 단단한 것은 쪼개서 냄새를 맡으라고 했다. 신선한 냄새가 나면 품질 좋은 폴리우레탄이라는 뜻이었다. 압둘은 그렇게 요령을 터득했다.”(19∼20쪽)

압둘은 쇠를 녹이고 플라스틱을 분쇄하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폐품 분류에 대한 천부적 재능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 책에 따르면 압둘은 이곳에서 한 소년이 플라스틱을 분쇄기에 넣다가 손이 잘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내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손목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밥벌이 능력도 그렇게 잘려나갔건만 소년은 공장 주인에게 빌기 시작한다. “사아브, 죄송합니다. 이걸 신고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때문에 곤란을 겪으실 일은 없을 겁니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빈민촌에서 탈출하려던 압둘 가족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어느 날 안나와디에 참혹한 사건이 발생한다. 외다리 여자 파티마가 옆집과 사소한 말다툼 끝에 분신자살한 것이다.

가해자로 옆집 소년 압둘과 누나, 아버지가 지목돼 감옥에 갇힌다. 어머니 제루니사는 가족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힘겨운 투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부패한 경찰과 의사는 뒷돈 챙기기에만 바쁘고 재판은 기약 없이 미뤄진다. 자수를 하러 간 압둘은 의식이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매를 맞았다. 

“물고기 입술을 한 경찰이 처음으로 매질을 했을 때 압둘은 그가 휘두른 가죽끈이 몸에 닿기도 전에 비명을 질렀다.(중략) 자수를 하러 공항을 가로질러 달리면서 압둘은 전날 저녁에 파티마와 있었던 일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길, 최소한 자기 몸뚱이를 내주고 아버지를 폭행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길 바랐다.”(170쪽)

저자는 파티마의 분신 직전과 직후 상황을 재구성하기 위해 무려 168명과 반복해 인터뷰할 정도로 치열하게 취재했다. 경찰, 공공 병원, 시체 안치소, 법원 자료 등 3000건이 넘는 공공 기록을 훑어내렸다.

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안나와디 빈민촌에는 비통한 삶을 이어갈 기력을 잃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난다. 부모와 오빠에게 매일 매를 맞으며 살던 열다섯 살 소녀 미나는 결국 쥐약을 삼키는 것으로 못다 핀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 목숨의 위협까지 감수하며 돈벌이를 하던 칼루도 결국 어느 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명확한 사실관계들을 모아 ‘슬럼가의 쓰레기 호수가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한 편의 잘 쓰인 문학 작품을 만들어내는 저자의 글쓰기가 돋보인다. 

20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메가 시티 뭄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빈민촌을 형성하고 있다. 책은 뭄바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통해 도시 빈곤의 구조와 불평등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 안에는 토착민과 이주민, 무슬림과 힌두교도 간의 갈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전통과 현대 사이에 낀 여성들이 느끼는 고통이 나날이 심각해진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 가난한 이들은 돈벌이의 기회, 인생 역전의 기회 혹은 최소한의 생존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책은 르포르타주로는 이례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했다. 인물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고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르포르타주에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은 좀처럼 활용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슬럼가에 사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루고 있지만,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실감있게 들린다. 책에서 아이들은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관찰자다. 저자는 오랜 취재에서 어린이들이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임을 발견했다고 한다.
<기사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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