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일 월요일

국어야, 수학이야?…전문가도 헷갈리는 ‘이야기 수학’

맞춤법도 버거운 초등생들에게…
수학 고통 줄이자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의 한 대형 서점에 31일 오전 다양한 종류의 초등학교 수학 참고서들이 진열되어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김아무개(40)씨는 지난해 딸의 ‘스토리텔링(이야기) 수학’ 교과서를 처음 보고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딸과 함께 1학년 <수학익힘책>을 풀고 채점하는 숙제를 하던 중이었다. 예시된 숫자 7과 무지개 그림을 이용해 이야기를 만들어 쓰는 문제였는데, 딸이 쓴 답은 “하늘을처 다보니 일곱 빛갈 무지개(하늘을 쳐다보니 일곱 빛깔 무지개)”였다. ‘7’을 보고 ‘일곱’을 적었으니 맞은 것 같은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이었다. 동그라미와 빗금(엑스) 사이에서 고민하던 김씨는 결국 ‘빛갈’에다 ㄱ을 덧붙여 ‘빛깔’로 만든 뒤 동그라미를 쳤다. 

<한겨레>가 수학·과학 교육 과정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더니 똑떨어진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초등 수학 담당자인 이아무개 연구원은 31일 “국가적으로 정해진 원칙은 없다. 국어 과목이 아니니까 학생이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표기가 좀 틀려도 정답 처리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연구원은 “우리 아이도 맞춤법 때문에 수학 문제를 틀려 엄청 속상했다. 선생님한테 ‘제가 수학 전공자인데 이 정도는 맞게 해주셔야 한다’고 전화하려다, 애가 밉보일까봐 그만둔 적이 있다”는 일화를 전했다.





‘재밌게 수학하자’ 도입했지만…‘긴 문제’ 이해조차 어렵다

‘스토리텔링 수학’은 이야기로 수학 개념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교재 구성의 한 방법으로 추진됐다. 이어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초등 1~2학년을 시작으로 2014년 3~4학년, 2015년 5~6학년에 도입됐다. 어려운 수학에 재미와 흥미를 불어넣자는 취지와 달리 학생과 학부모들은 ‘부담’으로 받아들였다. 국외에서도 아직 실험 단계인 교육방법을 서둘러 전면 도입하면서 빚어진 부작용이다. 교과서 개발 과정에 참여했던 한 교사마저 31일 “연구진의 의중과 학생들의 반응이 완전히 괴리돼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숫자’를 몰라서가 아니라 ‘국어’를 몰라서 수학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불만이 대표적이다. 문제에 제시되는 어휘가 너무 어려운데다 문제마저 길다 보니 독해 자체가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답을 낸 이유까지 서술형으로 풀어쓰라고 요구하면서 되레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한다. 초등학교 4학년과 1학년 두 자녀를 둔 학부모 오아무개(38)씨는 “큰애는 수학 문제를 풀 때 일단 지문이 길거나 서술형으로 쓰는 문제가 나오면 ‘별표부터 치고(건너뛰고)’ 시작한다. 수학이 아니라 국어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스토리텔링이 수학을 다 망쳐놨고, 애들 골탕 먹이기 같다”고 말했다.

긴 지문 읽고 서술형 답하시오?
어른도 힘든 ‘종합적 사고’를
초등 1~2년생에 요구하니
‘국어 몰라서 수학 못 푼다’ 불만

모든 단원에 이야기 접목시켜
연산 등 개념이해 되레 방해도
연구진 “이제 시작…꾸준히 개발”



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수학 교과 개발·연구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 넘기면서 수학 전문가들이 아동 전문가의 의견도 구하지 않은 채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생긴 일”이라고 짚었다. 국어와의 연계성에 대한 고려나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범 부원장은 또 “다른 나라에서는 스토리텔링 수학을 하더라도 수학 활동으로 끝내는 데 반해, 한국에선 문자언어로 문제를 만들어 답을 풀게 한다”고 비판했다. 스토리텔링은 가르칠 때 쓰는 방법이고, 학생을 평가할 때는 간략하게 수학적 개념만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학 교과서의 모든 단원을 억지로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해 끼워맞추면서 오히려 개념 이해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처음 스토리텔링 수학을 연구할 때는 기본 연산 연습, 게임 등 단원 성격에 맞는 다양한 수업 방법이 제안됐다. 하지만 깔때기처럼 모든 단원을 스토리텔링으로만 구성하도록 하면서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교과서가 탄생했다. 이정 서울 대광초등학교 교사는 “길이 재기 등 측정 영역은 스토리텔링 활동을 접목하면 분명히 개념 이해가 쉬워진다. 문제는 나눗셈 등 수학적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연산 연습이 중요한 단원까지 스토리텔링을 적용해 아이들이 더 헷갈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리텔링 수학은 어른들도 하기 어려운 ‘종합적 사고’를 어린아이들한테 요구한다. 강태석 서울 은정초 교사는 “예전에는 정답만 요구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답만 내면 됐다. 요즘은 정답과 함께 그걸 어떻게 추론하고 표현할 것인지도 묻는다. 방향이 틀렸다곤 할 수 없으나, 지식에 더해 지혜까지 요구하면서 수학이 더 어려워진 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쪽은 “스토리텔링 수학은 이제 시작 단계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이 뒤따라야 한다. 창의재단이 교사들을 상대로 스토리 개발, 적용 사례 대회를 여는 등 수학에 적합한 이야기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 출처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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