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5일 금요일

'석유富國도 망할 수 있다' 최초로 보여준 리비아



[3년前 '아랍의 봄' 후 유망주로 거론되다 왜 기회 놓쳤나]

카다피 정권 붕괴된 이후 '과거사 청산' 집착하다 문제

혁명 세력이 군·경 해산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정부 구성

평범한 의사·기업인을 장관에… 20대 수학자, 카다피 재산 환수


지난달 29일 리비아 북서쪽 해안에 시신 40구가 몰려왔다. 리비아 정세가 불안해지자 유럽으로 밀항을 시도하던 아프리카·중동 출신 난민(難民)들이었다.

'아랍의 봄' 직전만 해도 리비아는 난민의 보금자리였다. 주변국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소득이 높았기 때문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차드·수단 등 주변국보다 수배 높은 1만여달러였다. 매장량 세계 9위를 자랑하는 원유 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만 5만여명이 리비아를 떠났다. '석유 강국'은 왜 난민마저 떠나는 땅으로 전락했을까.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되자, 투자자들은 리비아가 '엘도라도'가 되리라 예상했다.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150만배럴에 달했다. 외환보유액은 1000억달러(약 101조원), '리비아 투자청(LIA)'의 운용 자산은 700억달러(약 71조원)에 이르렀다. 카다피 은닉 재산도 최대 2000억달러(약 200조원)로 추정됐다. 600만 리비아 국민은 주변국보다 교육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장밋빛 기대는 '힘의 공백'에 빨려 들어갔다. 카다피와 단절하니, 정작 국정(國政)을 주도할 세력이 없었다. 혁명 이듬해(2012년) 105%였던 GDP 성장률은 2년 연속 -9%대를 기록했다. 7월부터는 무장세력 간 교전으로 수백명이 숨지는 등 내전 상태에 빠졌다. 세계은행 북아프리카 경제 연구원은 "리비아가 '석유 부국(富國)'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세계 최초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비즈니스위크는 "카다피 청산에만 매몰되다 보니 국가 기능이 마비됐다"고 했다. 혁명세력은 "독재자에게 협력했다"며 군인과 경찰을 해산시키고 감옥에 보냈다. 치안에 공백이 생겼다. 각지에서 무장세력 1700개가 군·경 행세를 하며, 정부에서 매달 '활동비' 수억달러를 받았다. 대도시와 항구, 원유 시설에서는 무장세력 간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40년 동안 이어진 독재정권과 무관한 인사를 찾다 보니 전문성 없는 '주먹구구식' 인사가 이뤄졌다. 혁명 직후 재무장관에는 석유산업위원장이, 석유장관에는 외국 에너지기업 전직 임원이 임명됐다. 보건장관은 해외에서 오래 활동한 의사였다. 재무 경험이 전무한 경영대학원 연구원은 수십억달러를 주무르는 투자청장이 됐다. 카다피 재산 환수 책임자는 투자회사 출신 20대 수학자였다. 환수액은 전체 추정액의 1%에도 못 미쳤다. 힘없는 '아마추어 정부'는 혁명 직후 9개월간 무장세력에게 200억달러(약 20조원)를 쥐여줬다. 민심을 사려고 외환보유액에서 매달 60억달러(약 6조원)씩 꺼내 주민들에게 지급했다.

알리 제이단 전(前) 리비아 총리는 "리비아의 민주주의 학습이 서방(西方)을 즐겁게 해줄진 몰라도, 현재 의회에는 국정 철학 없는 기업인, 실무진뿐"이라며 "국익(國益) 대신 사익(私益)에 탐닉하던 카다피 때와 다를 게 없다"고 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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