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4일 금요일

양복입고 텐트에서 노숙하는 이 남자는 ‘유엔 인턴‘입니다

네덜란드 청년 데이비드 하이드(22)는 2주 전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어렵게 인턴직을 구했지만 그의 ‘직장’은 일할 기회를 주는 대신 월급은 주지 않았다. 하이드는 무작정 짐을 쌌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제네바의 높은 물가는 가난한 외국인이 마음만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이드는 월급을 주지 않는 직장 근처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외국인 청년에게 노골적으로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이곳은 유엔이다. 

스위스 언론 <제네바 트리뷴>은 12일(현지시간) 난민처럼 살게 된 유엔 인턴 하이드의 이야기를 전했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유엔 신분증을 목에 건 하이드가 파란색 텐트 앞에 서 있는 사진은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됐다. 

12일 스위스 언론 <제네바 트리뷴> 트위터에 올라온 노숙하는 유엔 인턴 데이비드 하이드의 사진. 양복을 차려입은 하이드이 모습 뒤로 그의 집이자 전재산인 파란색 텐트와 요가매트, 배낭이 보인다. /제네바 트리뷴 트위터


하이드는 아침마다 이 텐트에서 나와 배낭 안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넣고 유엔 본부로 출근한다. 방수텐트가 아니라 비가 오면 늘 불안하다. 출근 전, 퇴근 후 생활은 난민수용소의 난민 보다 나을게 없지만, 그는 분명히 세계 여러나라의 사회·경제·문화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유엔 소속 직원이다. 유엔의 업무 중엔 물론 노숙자와 난민 문제 해결도 있다. 

■면접 때 “무급, 감당할 수 있겠나?” 
하이드는 인턴 면접을 볼 때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유엔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어렵고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른 면접에서 재정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가 떨어진 경험도 있었다. 

하이드는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 말고는 제네바의 높은 물가를 감당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며 “무급인 것을 알고도 스스로 내린 결정이지만 이런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이드의 어머니는 언론보도가 난 뒤에야 아들이 제네바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프랑스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케냐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하이드는 이번에도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감당해보려 했다. 언론보도 후 하이드는 “내 일보다 ‘무급 인턴’으로서의 삶이 너무 주목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더이상 제네바에서 견디는 것도 힘들다”며 인턴직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유엔 ‘열정페이’에 끝내 사직
유엔의 무급인턴 방침은 이미 수년전부터 비판을 받았다. 유엔은 인턴에게 월급이나 의료보장, 숙식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턴인권 활동가 타냐 드 그룬왈드는 가디언에 “하이드가 그만두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며 “유엔은 모든 직원에게 합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룬왈드는 “유엔이 면접에서 지원자의 경제상황을 물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유엔은 매년 162명의 인턴을 고용하고 있지만 2013년 기준으로 인턴 중 68.5%가 무급”이라고 밝혔다. 

국제기구가 모여있는 제네바에서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곳은 유엔뿐만이 아니다. 제네바인턴연합은 BBC에 “돈때문에 고통받는 국제기구 인턴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매트리스라도 구하려는 이들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전했다.
<기사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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