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3일 수요일

중-고-대학생 성공비결, “부모재산” 60%… “내 능력” 12%


《 우리 국민 10명 중 5명 이상(56.5%)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부모의 경제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한양대 대입전형 연구개발(R&D) 센터, 오픈서베이(모바일 여론조사기관)와 함께 중·고·대학생(500명)과 자녀를 둔 일반인(500명)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격차’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와 함께 과거 한국 사회에서 신분 상승 통로로 이용됐던 대학입시 등 교육제도에 대한 불신도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이번 설문조사 결과 우리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은 본인의 능력이나 교육 또는 사법시험이나 대학입시제도 같은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 부모가 경제적으로 풍족해져야 사회·경제적 격차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특히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야 할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역시 큰 것으로 나타났고, 교육 격차는 물론이고 지역과 세대 갈등 역시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국가대혁신’이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으로 분석된다.


○ “우린 서울 아파트 살 수 없을 것”


학생들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본인 능력(26.4%)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러나 학벌을 포함한 질 높은 교육(18.6%)과 결혼(16.8%)이라고 답한 비율도 적지 않았다. 저축 등 본인의 성실성(12.0%)이나 사법시험 등 제도적 장치(14.0%)라고 답한 비율보다 오히려 수치가 높게 나온 것.

정부가 계층 간 ‘사다리’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시험제도 등도 본래 목적과 달리 격차 해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성실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없다고 여기는 학생이 많은 셈이다.

학생들의 이 같은 생각은 본인의 경제적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으로 이어졌다. 결혼 후 자력으로 서울의 30평형대 집을 살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33.2%에 불과했다. 그 이유로는 ‘높은 집값’이 80.2%로 가장 많았고, 본인의 ‘능력 부족’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15.6%로 뒤를 이었다. 15세 이하 중학생들조차도 전체의 48.1%가 결혼 후 자력으로 30평형대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들이 밀집한 20대로 한정하면 자력으로 집을 살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떨어져 24.3%에 머물렀다. 특히 설문조사에 참여한 학생 10명 중 9명(91.6%)은 ‘중산층이 서울에서 30평형대 집을 사는 것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격차가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층의 비관적인 인식을 점점 더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유의 ‘낙관’이 무기인 젊은층이 ‘비관’에 사로잡힌 사회는 성장 동력 자체가 침체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김동호 오픈서베이 대표는 “최근 들어 나이가 적을수록 신분 격차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게 특징”이라며 “젊은층에 만연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 때문에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젊음 특유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다양한 ‘신분 사다리’를 복원해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하지만 기초연금 확대 등의 정부 정책 역시 격차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학생들의 경우 전체의 절반 이상(51.8%)이 ‘정부 정책이 긍정적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고, 특히 20대는 이 비율이 61.2%로 높아졌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복지정책은 필수”라면서도 “너무 (정책을) 많이 도입해서 성장잠재력을 갉아먹으면 전체 경제가 침체되고 청년층들이 너무 많은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만큼 선별적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지역, 세대 격차도 심각


학생들은 ‘경제력과 조건이 충분하다면 거주하고 싶은 지역이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41.4%가 ‘서울’이라고 답했고, 강남3구 등 서울의 부촌(富村)이라고 답한 비율도 16.6%에 달했다. 반면 지방의 중소도시(고향 포함)에서 살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12.4%에 불과했다.

청년층들이 떠안아야 할 노령층 복지비용과 청년실업 문제 등으로 야기되고 있는 ‘세대 갈등’ 역시 이번 조사에서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절반 이상의 학생(52.0%)이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고, 청년들의 삶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기존 세대들이 일자리를 독점하고 노령층 복지비용을 청년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때문에 ‘나는 부모보다 높은 복지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 43.8%였고 그 이유는 정부정책 실패(47.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런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임을 짐작하게 한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경제적 격차를 줄여 나간다고 하더라도, 지역 세대 등 비경제적 격차까지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끊임없이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두승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외환위기 이후 고용 안정성이 무너지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크게 줄면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크게 줄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해 나가는 것이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관건”이라고 말했다.

▼ ‘신분 사다리’ 역할 못하는 한국교육… “대학 잘가도 신분상승 못해” 53% ▼

이번 설문조사에서 대학입시 등 교육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이 많았던 것은 교육이 ‘신분 사다리’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이는 일관성 없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정책, 또 해마다 바뀌는 대학입시전형으로 인한 사교육비 증가 등 학생 본인의 순수한 능력보다는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사교육이 좋은 대학 입학을 좌우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 분석된다.

배영찬 한양대 입학처장은 “특히 젊은층이 신분 상승의 요건으로 부모의 경제력을 가장 많이 꼽은 것은 교육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대학입시 등 구체적인 제도와 관련된 질문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5명 이상(53.1%)은 “대학입시가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현재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10대 응답자의 절반 이상(58.4%)이 ‘아니요’라고 답한 것이 특징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특수목적고(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오히려 교육격차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배 입학처장은 “일반고와 자사고, 특목고의 교육격차 확대가 문제로 지적된 것은 일반고의 상향평준화가 요구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교육이 신분 사다리로서의 기능을 다하려면 대학입시 위주의 현 교육시스템이 적성과 직업을 연계한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은 소위 선호하는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높고, 특정 종류의 직업만이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학생들이 적성과 관계없이 일류 대학만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대학까지 졸업한 뒤에도 질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경제적 자립도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는 “직업관이 다양해지고, 진로지도와 직업교육이 내실화된 교육이 이뤄져야 교육의 사다리 기능이 활발해질 수 있다”며 “고소득층 부모들은 질 높은 교육에 대한 비용을 스스로 지불하게 하고, 그로 인해 절감되는 세금을 빈곤 계층에 더 많이 투입하는 방식으로 교육자원을 재분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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