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5일 일요일

싱가포르 글로벌 기업 열전

사업 초기부터 해외진출 염두, 꼼꼼한 품질·공정 관리, 수직 계열화, 해외 경쟁업체와의 파트너십 체결로 비용 절감 등 배울 점 많아

‘도시 국가’ 싱가포르에는 이렇다 할 기업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금융, 물류, 관광처럼 서비스 산업으로 먹고살고 ‘국가’만 강할 뿐 ‘기업’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싱가포르에는 우리가 알 만한 글로벌 기업이 꽤 있다. 아니 많다고 하는 게 옳다.

□ 찰스 앤 키스=1996년 설립된, 신발, 가방, 액세서리 메이커다.

찰스 웡과 키스 웡 형제는 10대 시절 어머니 가게의 신발 섹션을 운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96년 자신들의 이름을 딴 첫 매장을 열 때부터 비용 절감을 위해 중간 유통단계를 줄이고자 노력했다. 1998년부터 신발을 대만에 공급하기 시작했으며 첫 해외 매장을 인도네시아에 오픈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았지만 탄탄한 운영관리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금융위기의 타격이 가장 컸던 인도네시아의 많은 공장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웡 형제는 현지에 날아가 공장들과 직접 업무를 조율했다. 위기를 넘긴 이후 2001년 필리핀, 2004년 두바이에 각각 진출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현재 말레이시아와 중국의 30여 개 공장이 찰스 앤 키스만을 위해 신발을 만들고 있다. 웡 형제는 공장이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같이 생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공장을 인수해 직영체제로 만들었다. 위탁판매 방식도 가급적 피하며 소매, 공급, 디자인까지 모든 분야를 직접 관리하기를 원한다. 좋은 브랜드를 만들려면 일관성이 필요하며 일관성이 유지되려면 정확한 관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찰스 앤 키스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업이 한순간에 틀어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고 있다.

2011년에는 찰스 앤 키스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LVMH그룹이 자회사인 엘 캐피털 아시아를 통해 이 회사의 지분 20%를 3000만 싱가포르달러에 취득하기도 했다.

□ HTL 인터내셔널 홀딩스=가구 제조 및 판매업체로 1976년 설립됐다. 지난해 매출은 5억833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독일, 호주, 일본, 중국 등 50개국, 5000여 개 매장에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HTL 인터내셔널 홀딩스는 원래 PVC 소파를 만들던 작은 가구 회사였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독일·이탈리아산 가구를 많이 수입하는 것을 보고 좋은 디자인, 좋은 재질의 가죽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싱가포르만이 아닌 동남아 전체를 시장으로 고려했고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HTL은 1981년 독일 가구업체로부터 제품 디자인과 생산라인, 자동화 등 기술 노하우를 습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1985년 싱가포르에 불황이 닥쳤을 때 홍콩, 호주에 진출했다. 1990년부터는 유럽 진출도 시도했으나 물리적인 거리와 시차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공급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따라 1993년에는 네덜란드에 판매 영업소를 설치해 직접 마케팅과 영업에 나섰으며 같은 해 독일 가구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HTL은 유럽 지역에서 빠른 배송을 위해 가죽 무두질 공장을 건설, 그때까지 이탈리아에서 수입하던 가죽 원제품을 대체하고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통합된 사업구조를 만들었다. 2005년에는 독일의 고급 가구업체를 인수해 럭셔리 가구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올해 말 뮌헨과 뒤셀도르프에 콘셉트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며 이를 활용해 독일과 중국 내 영업을 더욱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 윌마 인터내셔널=팜오일, 설탕, 쌀, 밀 등의 원자재 무역에 치중하는 회사로 생산도 한다. 1991년 이래 사업규모를 키워 작년에만 45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일본, 브라질 등 13개국에 진출해 있다.

윌마는 1991년 가격경쟁력이 높고 비누, 샴푸, 화장품뿐만 아니라 타이어, 페인트 등 활용이 다양한 팜오일을 무역하는 소규모 회사로 출발했으나 199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팜오일 수요가 급증하며 호기를 맞았다. 수요 증가에 맞추어 팜오일 생산도 급증할 것을 예상했고 무역, 정제관련 사업 및 연관 상품 제조에서도 사업기회가 많아질 것에 대비했다. 팜오일 무역을 통해 얻은 수익을 농장 및 제조시설에 투자해 생산부터 연관 제품에 이르는 수직 계열화를 확립하는 한편 급증하는 물류를 관리하기 위해 해상운송도 직접 진행하고 있다.

윌마는 중국과 인도에서는 오일시드의 분쇄·정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기존 팜오일 사업과 시장정보, 프로세싱, 연관 상품 제조시설까지 많은 부분을 공유, 비용절감은 물론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윌마는 동남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우크라이나까지 영업력을 확장 중인데 가능성 있는 시장에 먼저 진출해 선점 효과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 브레드토크 그룹=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제빵·제과 업체이자 레스토랑도 운영 중인 업체다. 2000년 설립됐으며 작년 매출은 4억4730만 싱가포르달러였다.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대만 등 15개국에 진출했다.

브레드토크는 이동식 과자트럭, 아이스크림 가게 등을 운영하면서 대만, 홍콩, 중국, 일본에서 식음료 사업 경험을 쌓은 큐에크 회장이 2000년 싱가포르에 문을 연 회사다. 큐에크 회장은 2003년에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첫 매장을 열었는데 이때 해외사업은 경험이 많은 자신이 직접 맡을 것을 계획했다.

특히 중국에서의 사업은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매니저를 파견하는 방식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봤다. 중국 매니저의 경우 싱가포르보다 훨씬 많은 인력을 관리하다 보니 급박한 사안을 현장에서 즉시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큐에크 회장은 이에 따라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매니저를 중국에 파견하면 반드시 실패하며 적절한 사람이 없으면 직접 진행해야 한다고 느꼈다. 또 리서치보다 현장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철학은 중동에서 기존 제품 10개 중 6개를 현지인이 좋아하는 초콜릿과 치즈를 사용해 만드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브레드토크는 해외에서 사세를 확장하려면 기업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가 필수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는 유명 헤어숍 체인을 운영하던 인물을 로컬 매니저로 채용했는데 현재 인도네시아 매장은 100여 개로 늘었다.

매장 확장에서는 프랜차이즈와 직영체제가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60대 40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프랜차이즈 매장은 종종 본사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보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브랜드 유지에 힘쓰고 있다.

□ 암스트롱 인더스트리얼 코퍼레이션=1974년 설립된 자동차 및 각종 전자기기의 소음, 진동을 관리하는 고무부품 메이커다. 지난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중국, 독일, 캐나다, 인도 등지에서 2억 싱가포르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암스트롱은 같은 업종에 있는 해외 경쟁사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실제 암스트롱의 대부분의 파트너는 경쟁 업체이기도 하다. 이들은 해외 진출 시 발생하는 재무적 위험과 문화 차이, 인력고용 문제를 쉽게 해결해준다. 지역과 시장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다.

1994년 암스트롱은 타이어 회사인 브릿지스톤과의 첫 파트너십을 맺어 브릿지스톤의 공장이 있던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 자동차 고무부품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당시 아시아 파트너를 찾던 독일의 오덴발트 사와 접촉해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암스트롱은 중국에 있는 오덴발트의 유럽 고객을 얻었고 오덴발트는 대신 중국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암스트롱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과거 중국의 한 파트너가 현지 공장 렌트 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등 신뢰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 고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암스트롱은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관계를 뛰어넘는 접촉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고 파트너 회사 담당자의 생일을 알고 축하해주거나 가족사진을 공유하는 등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관계 유지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파트너십에 힘입어 1998년 20% 수준이었던 해외매출 비중은 현재 75%까지 늘어났으며 전 세계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고무 부분품의 38~42%를 공급하고 있다.

□ 티옹 셍 홀딩스=1959년에 생긴 건설, 건축 엔지니어링 업체다. 중국, 인도, 중동 지역에서 5억 싱가포르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 중이다.

티옹 셍 홀딩스는 규모가 작은 건설업체는 해외무대에서 메이저 업체와 가격과 인력으로 경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조립식 건축기술에 대대대적으로 투자, 높은 기술·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티옹 셍은 공사현장 밖에서 조립식 건축파트를 만들고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방식을 통해 공사비용을 줄이고 있으며 특히 리조트월드센토사 공사에서는 기존 소요인력의 70~80%에서 작업을 마무리해 이름을 높였다. 최근에는 최신 조립파트 공장을 설립, 파트 제조에 소요되는 인력도 50~70%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2010년 티옹 셍은 콘크리트판 무게를 30%까지 줄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스위스 친환경 건축기술 업체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건물구조의 무게를 15%까지 줄여 콘크리트 사용량 절감에 따른 탄소배출 감소는 물론 더 넓고 깨끗한 건물 디자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해외 진출은 1990년대 초반 싱가포르가 중국과 함께 쑤저우 산업단지 개발을 시작하면서 기회로 다가왔으며 현재는 중국 2, 3선 도시의 상업, 주거시설 관련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티옹 셍은 중국에서도 인력난이 점차 심해지고 환경을 생각하는 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조립식 건축에 강점을 가진 자사에게 좋은 사업기회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독일의 조립기술을 활용, 싱가포르 최초로 조립식 건축파트 공장을 설립했는데 당시 싱가포르 부총리는 “티옹 셍의 조립파트 공장은 훌륭한 자동화 기술이 어떻게 제한적인 국토와 인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 도우 위 인터내셔널=금속, 플라스틱 사출성형, 정전기 방전소재 제조, 전자기기용 화학물질 제조에 강점을 가진 업체다. 1982년 설립됐으며 작년 매출은 3억 싱가포르달러였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프랑스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1982년 설립 당시 다우 위는 조그만 무역회사였다. 그때는 많은 미국 회사들이 전자기기를 만들면서 필요한 원료를 해외에서 구매하던 시기였다. 이때 창업자인 미스터 수는 자신이 전공한 물리학이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을 직감했고 곧바로 정전기 방전(ESD) 관리 소재를 생산하는 회사를 세웠다.

다우 위의 소재는 정밀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직물의 이온을 제거하는 용도는 물론 전자기기 제조분야에서 널리 사용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2년 새 매출이 100만 달러를 넘어서자 미국의 유명 업체가 제품의 독점 배급 계약을 제안해왔지만 자체 브랜드로 마케팅을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비용 전략을 추진, 경쟁사 대비 30~40% 저렴한 가격으로 소재를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늘려나갔다.

현재 다우 위는 정전기 관련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시게이트, 도시바 같은 글로벌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다우 위는 싱가포르 직원을 파견하기보다 정직하고 똑똑한 우수한 현지 직원을 찾아 훈련시키고 육성해 사업을 관리하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다스리는 것을 선호한다고 보고 이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알아서 도전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장려한 것이다.

현재는 각 계열사를 관리하는 사장이 있어서 오너가 없어도 그룹 운영에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마이크로 매니징도 하지 않고 있다. 창업자인 미스터 수는 그룹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고 더 좋은 기술에 투자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 굿팩 리미티드=각종 화물 포장과 운반 업무를 하는 회사로 1980년 설립됐다. 동남아와 유럽, 남미 등 68개국에 진출해 작년에만 1억772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오래 전부터 무역업자들은 천연고무를 운송할 때 나무상자를 사용했다. 하지만 운송과정에서 나무상자의 조각이나 가루가 천연고무에 섞이는 경우가 많고 이렇게 되면 고무의 품질 저하는 물론 고무 가공과정에서 기계에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1980년대 말 고무 무역에 종사하던 창업자인 미스터 람은 이런 패키징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나무상자보다 보관이 쉽고 친환경적이며 저렴하면서도 쌓기 쉬운 컨테이너를 생각해냈다. 이후 2년 간의 노력 끝에 재사용이 가능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접어서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철제 고무 운반용 컨테이너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새로운 컨테이너를 사용하도록 고객을 설득하는 데 약 2년이 걸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일부 고객은 컨테이너 제작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하겠다고 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굿이어, 브릿지스톤, 컨티넨탈 등 대형 바이어의 주문이 이어지면서 굿팩 리미티드의 사세도 번창하기 시작했다.

현재 굿팩은 연간 1억2000만 달러를 새로운 컨테이너 제작에 투입하며 300만 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제작하고 있다. 선두 기업의 이점을 온전히 누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합성고무 물량의 35%와 천연고무의 40%를 포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무보다 사업규모가 10배 정도 큰 차량용 부품 포장 쪽으로도 시장을 확대, 성장의 전환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기사 출처 : 주간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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