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부모가 곧 스펙” 공공기관 직원 자녀들, 참 쉬운 취업

공공기관의 고용세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은퇴 직원 자녀에 대한 취업 특혜를 넘어 현직 임직원 자녀를 산하기관 혹은 지역 조합에 꽂아 넣는 일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번에 수협의 고용 세습 실태가 드러나면서 이런 사실은 다시 한번 증명됐다. 청년 실업자가 35만명을 넘는 상황에서 공공기관 일자리 대물림 관행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공기관 ‘현대판 음서제’=농협중앙회는 2010년부터 올 6월까지 농협중앙회나 회원조합 전·현직 간부의 자녀 221명을 채용했다. 이 중 중앙회 현직 2급 상당의 간부 자녀도 14명이나 됐다. 산림조합중앙회에는 현재 중앙회와 상급기관인 산림청 전·현직 임직원의 자녀·친척·지인 21명이 근무하고 있다. 여기엔 장일환 중앙회 회장의 자녀도 포함됐다. 이들은 전·현직 직원의 가족이 기관에 지원할 경우 가산점을 주거나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 같은 사실은 새정치민주연합 박민수 의원이 농협중앙회와 산림조합중앙회로부터 받은 ‘임원자녀 채용 상세 현황’ 자료에서 드러났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과학기술 분야 공공기관마저도 단협에 고용세습 조항을 두고 있었다. 새누리당 김기현 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0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를 분석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과학기술분야 30개 공공기관 중 18곳에서 가족 우선채용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국감에선 이런 고용세습 조항을 통해 공공기관 5곳에서 22명의 직원 가족이 채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중 코레일은 13명이나 됐고, 한국농어촌공사(5명), 한국환경공단(2명), 강원랜드(1명), 부산항보안공사(1명)도 고용세습이 있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고용세습은 채용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승진이나 보직 발령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귀띔했다.

일반기업 중에도 자동차와 중공업 분야에서 비슷한 자녀 우선채용 조항을 두고 있다. 현대차 단협에는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직계 자녀 1인에 한해 채용 규정상 적합한 경우 인사원칙에 따른 동일 조건에서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울산지법은 지난해 “단체 협약에 이런 조항이 들어 있는 것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사회 정의와 통념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한국GM, 현대중공업 등 단협에도 비슷한 채용 조항이 있다.

◇정부 칼 빼들어도 공공기관은 ‘나 몰라라’=이 같은 고용세습을 근절하기 위해 국회나 정부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공공기관 방만경영 개선책을 발표하며 노사 단협에 고용세습 등의 내용을 담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줘 임직원 성과급을 대폭 삭감하고 기관장 해임 등도 건의키로 했다. 실제 강원랜드, 토지주택공사, 수자원공사 등은 직원 가족을 우선 채용하던 제도를 올해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도 지난 6월 공공기관의 장은 직원 채용 시 전·현직 직원의 가족을 특별채용하거나 우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아직 국회 소위에 회부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일자리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정작 공공기관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8일 새누리당 양창영 의원에게 제출한 ‘공공기관 단체협약 관리·지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여전히 공공기관 35곳의 단협에서 전·현직 임직원 직계가족의 채용을 우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학교병원 등 중앙공공기관 26곳, 서울메트로 등 지방공기업 10곳, 지방의료원 9곳 등이다.

양 의원은 16일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과도한 복지 혜택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며 “고용세습 조항이 다른 국민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까지 청년들의 균등한 기회보장을 박탈하고 있다”며 “고용 세습 명문화 조항은 삭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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