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썼던 총포 복원 실험해보니
알려져 있는 거북선 모형들서 오류 확인
널리 알려져 있는 거북선. 2층 구조에 용두의 목이 길고 철갑으로 돼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현존 거북선 모형들에는 오류가 많고 영화 <명량>에서처럼 배의 측면에서 함포를 사격하면 거북선이라도 뒤집힐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교대학원(UST) 교수는 15일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썼던 총포를 복원해 실험한 결과와 옛 문헌 자료 등을 종합해보니, 거북선에는 천자총통 등 19개 총포가 배치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거북선의 실제 모습을 복원해본 결과 현재 통영이나 여수 등지의 거북선 모형들에 오류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을 지낸 채 교수는 조선시대 신기전을 복원하는 등 우리나라의 전통 화약무기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채 교수는 기존 거북선들 모형들이 철판에 칼이나 송곳 등을 꽂은 철갑을 배 전체에 뒤집어 씌운 것처럼 복원돼 있지만, 거북선은 애초 판옥선이라는 대형 함선에 지붕을 씌운 것이어서 무게 등을 고려해 철갑은 전면에 배치된 함포를 씌울 정도로 최소한에 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 모형들은 노와 총포가 같은 층에 배치된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포를 장전하고 발사하는 공간과 90명이 노를 젓는 공간이 함께 배치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쓰던 천자총통이나 지자총통 등 대형포들은 위력이 커서 영화 <명량>에서처럼 측면에서 쏘면 배가 뒤집혔을 것”이라고도 했다.
영화 명량에서 활약한 판옥선. 유튜브 공식 트레일러 캡처
영화 을 비롯해 지금까지 거북선의 대포는 대부분 측면에서 쏘는 것으로 묘사됐지만, 적선을 격침시키는 대포인 천자총통의 무게가 300㎏가량이나 돼 영화처럼 측면에서 대함용 화포를 쏠 경우 배가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은 영화 의 거북선과 대장선의 모습으로, 화포를 쏘는 구멍이 정면에는 없고 측면에만 있다. 영화 누리집
이순신 장군이 1952년 6월14일 선조에게 올린 장계와 그의 조카인 이분이 기록한 이순신 장군 행록,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이순신 종가가 소장하고 있는 ‘귀선도’ 등 옛 문헌과 실제 복원한 총통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기로, 거북선은 3층으로 돼 있었으며 모두 19기의 총통(대포)이 설치돼 있었다.
무게가 296㎏에 이르고 길이가 130㎝, 구경이 12㎝에 이르는 대형포인 천자총통 2개는 2층 전면에, 무게 73㎏의 지자총통은 3층 전면에 2개가 설치됐다. 이들 포는 사격 때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배의 길이 방향으로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포는 각각 대장군전과 장군전이라는 대형 화살(전)을 장착해 발사함으로써 적군의 배를 부수는 용도로 쓰였다. 이에 비해 철환을 쏘는 용도의 작은 총포인 현자총통은 용두(용머리)에 1대가 배치되고, 황자총통은 양측면에 6대씩과 배 뒷부분에 2대 등 모두 14대가 배치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용두는 임진왜란 당시에는 실제 현자총통을 쏘는 용도였지만 이후에는 연기만을 발생시키는 용도로 바뀌었따. 채 교수는 “현자총통을 쏘아보니 몇번 발사하고 나면 용두가 망가져버렸을 것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후대의 거북선에선 용두가 적을 위협하기 위한 연기를 뿜는 연통 모양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북선 지붕에는 애초 적의 동태를 살피려는 목적의 열십자(+) 모양 길을 냈지만 실전투에서 적에게 노출돼 사상자가 발생하자 이후 거북선은 일자 형태의 길만 두고 3층에 창문을 내는 쪽으로 개량됐다. 채 교수는 “옛 거북선 그림에 2층 좌우 양쪽에 10개씩의 총포 구멍이 배치돼 있지만 실제로 총포를 쏘는 용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적에게 총포가 많이 설치돼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위장술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 전투에서 노꾼들은 30명이 사망한 데 비해 총포병은 1명밖에 전사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뤄, 가짜 총포 구멍이 역효과가 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채연석 교수가 공개한 거북선 설계도. 사진 채연석 교수 제공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채 교수는 앞으로 19개 총포와 노를 배치한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항해를 하면서 포 사격을 해보면 좀더 실제 거북선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거북선은 현재 시속 11㎞의 속도로 운행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채 교수는 “다만 당시 성인의 평균 신장이 150㎝ 정도였던 점을 고려해 원형 복원과 실제 운행을 실험할 모형은 별도로 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 교수는 “지자총통은 세종 때 이미 개발돼 있었으며 천자총통도 임진왜란 이전에 개발돼 있었다. 이런 대형포를 적절하게 배치해 실전투에 쓸 수 있도록 거북선과 판옥선을 설계·건설했기에 이순신 장군이 3년 동안 23전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사 출처 : 한겨레>
알려져 있는 거북선 모형들서 오류 확인
널리 알려져 있는 거북선. 2층 구조에 용두의 목이 길고 철갑으로 돼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현존 거북선 모형들에는 오류가 많고 영화 <명량>에서처럼 배의 측면에서 함포를 사격하면 거북선이라도 뒤집힐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교대학원(UST) 교수는 15일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썼던 총포를 복원해 실험한 결과와 옛 문헌 자료 등을 종합해보니, 거북선에는 천자총통 등 19개 총포가 배치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거북선의 실제 모습을 복원해본 결과 현재 통영이나 여수 등지의 거북선 모형들에 오류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을 지낸 채 교수는 조선시대 신기전을 복원하는 등 우리나라의 전통 화약무기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채 교수는 기존 거북선들 모형들이 철판에 칼이나 송곳 등을 꽂은 철갑을 배 전체에 뒤집어 씌운 것처럼 복원돼 있지만, 거북선은 애초 판옥선이라는 대형 함선에 지붕을 씌운 것이어서 무게 등을 고려해 철갑은 전면에 배치된 함포를 씌울 정도로 최소한에 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 모형들은 노와 총포가 같은 층에 배치된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포를 장전하고 발사하는 공간과 90명이 노를 젓는 공간이 함께 배치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쓰던 천자총통이나 지자총통 등 대형포들은 위력이 커서 영화 <명량>에서처럼 측면에서 쏘면 배가 뒤집혔을 것”이라고도 했다.
영화 명량에서 활약한 판옥선. 유튜브 공식 트레일러 캡처
영화 을 비롯해 지금까지 거북선의 대포는 대부분 측면에서 쏘는 것으로 묘사됐지만, 적선을 격침시키는 대포인 천자총통의 무게가 300㎏가량이나 돼 영화처럼 측면에서 대함용 화포를 쏠 경우 배가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은 영화 의 거북선과 대장선의 모습으로, 화포를 쏘는 구멍이 정면에는 없고 측면에만 있다. 영화 누리집
이순신 장군이 1952년 6월14일 선조에게 올린 장계와 그의 조카인 이분이 기록한 이순신 장군 행록,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 이순신 종가가 소장하고 있는 ‘귀선도’ 등 옛 문헌과 실제 복원한 총통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기로, 거북선은 3층으로 돼 있었으며 모두 19기의 총통(대포)이 설치돼 있었다.
무게가 296㎏에 이르고 길이가 130㎝, 구경이 12㎝에 이르는 대형포인 천자총통 2개는 2층 전면에, 무게 73㎏의 지자총통은 3층 전면에 2개가 설치됐다. 이들 포는 사격 때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배의 길이 방향으로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포는 각각 대장군전과 장군전이라는 대형 화살(전)을 장착해 발사함으로써 적군의 배를 부수는 용도로 쓰였다. 이에 비해 철환을 쏘는 용도의 작은 총포인 현자총통은 용두(용머리)에 1대가 배치되고, 황자총통은 양측면에 6대씩과 배 뒷부분에 2대 등 모두 14대가 배치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용두는 임진왜란 당시에는 실제 현자총통을 쏘는 용도였지만 이후에는 연기만을 발생시키는 용도로 바뀌었따. 채 교수는 “현자총통을 쏘아보니 몇번 발사하고 나면 용두가 망가져버렸을 것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후대의 거북선에선 용두가 적을 위협하기 위한 연기를 뿜는 연통 모양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북선 지붕에는 애초 적의 동태를 살피려는 목적의 열십자(+) 모양 길을 냈지만 실전투에서 적에게 노출돼 사상자가 발생하자 이후 거북선은 일자 형태의 길만 두고 3층에 창문을 내는 쪽으로 개량됐다. 채 교수는 “옛 거북선 그림에 2층 좌우 양쪽에 10개씩의 총포 구멍이 배치돼 있지만 실제로 총포를 쏘는 용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적에게 총포가 많이 설치돼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위장술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 전투에서 노꾼들은 30명이 사망한 데 비해 총포병은 1명밖에 전사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뤄, 가짜 총포 구멍이 역효과가 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채연석 교수가 공개한 거북선 설계도. 사진 채연석 교수 제공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채 교수는 앞으로 19개 총포와 노를 배치한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 항해를 하면서 포 사격을 해보면 좀더 실제 거북선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거북선은 현재 시속 11㎞의 속도로 운행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채 교수는 “다만 당시 성인의 평균 신장이 150㎝ 정도였던 점을 고려해 원형 복원과 실제 운행을 실험할 모형은 별도로 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 교수는 “지자총통은 세종 때 이미 개발돼 있었으며 천자총통도 임진왜란 이전에 개발돼 있었다. 이런 대형포를 적절하게 배치해 실전투에 쓸 수 있도록 거북선과 판옥선을 설계·건설했기에 이순신 장군이 3년 동안 23전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사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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