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2일 월요일

"개천에서 난 龍, 다시 개천으로 돌아가는 세상"

◆ 청년에게 희망을 ◆


지난 7월 서울 유명 사립대를 졸업한 정 모씨(27)는 얼마 전 중소기업 공장에 취업해 용접일을 하고 있다. 졸업을 미뤄가며 3년간 고시에 도전했다가 낙방한 정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졸로 생산직에 지원한 것이다.

정씨는 "수년간 취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집안도 어렵고 생계 문제 해결이 시급했다"며 "높은 꿈을 머금었던 대학생활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좌절스럽다"고 했다.

서울시내 명문대 경제학과 출신인 문 모씨(28) 역시 정씨처럼 3년째 백수생활을 하다 2년제 전문대로 진로를 바꿨다. 명문대 학위만으로는 생산·기술직에 진입할 수 있는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한 배경에는 올해 초 고향에 거주하는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 영향도 컸다. 문씨는 "더 이상 물질적인 지원을 해줄 형편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에 화이트칼라 직종만 고수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지방 출신인 이들은 한 때 '개천에서 난 용'이었다가 다시 '개천으로 돌아간 용'이 된 셈이다. 명문대생이 블루칼라 직종으로 전향하는 사례는 아직까지 보편화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취업 실패가 장기화하고 부모가 더는 경제적 지원을 하기 힘든 상황마저 맞물리게 되면 전향 사례는 보다 증가할 것이라는 게 대학 취업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일부 명문대생 사이에선 이미 "개천에서 난 용이 개천으로 회귀하는 시대"라는 자조마저 나온다. 

실제로 4년제 학위를 가진 청년들의 전문대 유턴 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이 같은 사례는 △2012년 1102명 △2013년 1253명 △2014년 1283명 △2015년 1379명으로 늘면서 불과 3년 새 25%나 증가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 대략 3857억원으로 추산된다.

명문대 청년들의 절박한 상황은 국내 유수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취업이 안 되는 마당에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냐"는 푸념부터 "일찌감치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한 고졸 친구들이 부럽다"는 한탄성 글과 댓글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려대 재학생인 고 모씨(28)는 "취업 게시판을 보면 대기업 생산직이 일반 사무직보다 연봉이 낫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며 " '귀족 노조'로 일컬어지는 현대자동차 계열 생산직을 특히 부러워한다"고 전했다.

밥벌이가 시급해진 명문대 청년들에게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 '명문대생 9급 공무원 응시'가 언론 매체에 오르내리며 세간에 충격을 줬지만 이제는 새롭지 않은 현상이 됐듯, '명문대생 생산직 지원' 현상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정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명문대생의 생산·기술직 취업이 전반적인 추세가 될지는 회의적이지만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대기업 중심의 고용구조를 개선해 노동시장의 다양성을 하루빨리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기사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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