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3일 일요일

사우디 집단처형으로 1천400년 수니-시아 갈등 재조명


이란 시위대, 사우디 대사관 방화 (테헤란 AP=연합뉴스) 3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 시위대가 불을 질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우디가 시아파 지도자가 포함된 테러 혐의자 47명을 집단 처형한 데 이란의 시아파가 반발한 것이다. 사우디는 수니파의 종주국이다. ciy@yna.co.kr (끝)
모하마드 후계자 문제에서 시작돼 주요 이슬람 국가간 대립관계 '근원'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유력인사 4명을 한꺼번에 처형한 것을 계기로 시아파 본산인 이란과의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뿌리깊은 갈등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이슬람권 주요 국가 간 대립 관계의 근원인 수니-시아 갈등은 약 1천400년 전인 632년 이슬람교 창시자인 모하마드가 사망한 뒤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이냐를 둘러싸고 시작됐다. 

한편에서는 모하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등 직계 혈통을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도자 회의에서 적합한 인물을 후계자인 칼리프로 선출하자고 맞섰다. 

전자는 '알리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인 '시아트 알리', 또는 줄여서 '시아'라고 불렸으며 이들이 현재 시아파의 뿌리다. 후자는 무슬림 공동체(움마)의 순나(관행)를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수니'를 자처해 현재 수니파의 근원이 됐다.

일단 초기에는 회의에서 뽑힌 칼리프가 모하마드의 뒤를 이었다. 아부 바크르-오마르-오스만-알리 등 선출된 4명의 칼리프가 다스린 시대를 '정통 칼리프 시대'(632~661년)라고 부른다. 

하지만 모하마드가 남긴 유일한 혈육으로 4대 칼리프에 올랐던 알리가 661년 암살되면서 양쪽의 본격적인 분열이 시작됐다.

알리 사망 이후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서고 그 후계를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알리의 장남 하산과 차남 후세인이 무참히 살해당하면서 수니-시아 사이의 갈등을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 원한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수니파와 시아파는 똑같이 쿠란을 경전으로 삼으면서도 구체적인 교리와 종교의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이슬람교 지도자 '이맘'의 지위도 수니파에서는 예배를 인도하는 일반적인 종교지도자에 가깝지만 시아파에서는 모하마드의 승계자이자 종교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고 성직자로 추앙된다. 

전체 이슬람교도 가운데 수니파(85%)가 다수이고 시아파(15%)는 수적으로 열세지만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수니파는 사우디와 시리아·이집트·예멘·레바논·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 대부분 이슬람국가에서 다수 종파지만 이란·이라크·바레인 등에서는 시아파가 주류인 국가로 분류된다. 

양측의 알력과 경쟁관계는 그 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폭력적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다수인 종파가 소수를 탄압하고 소수 종파는 과격하게 저항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지만, 이라크처럼 시아파가 다수 종파임에도 소수 수니파가 줄곧 정권을 잡으면서 시아파가 박해받은 사례도 있다. 

이슬람권의 주요 분쟁이나 긴장관계도 연원을 따지면 이러한 수니-시아 간의 종파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수다.

최근에는 이란 핵협상 과정에서 사우디가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극단주의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퇴치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에서도 이런 종파갈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기사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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