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8일 화요일

곡예운전 버스기사, '암행어사'에 딱 걸렸다

[서울시 '점검원' 동행해보니]
신호위반·급정거·급출발, 운전중 스마트폰까지 잡아내… 위반 많으면 지원금 깎일수도
기사들 "감시당해 불쾌"

점검원 "신호 잘지키면 융통성 없다고 화내는 승객들도 안전위해 노력해야"

지난 23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 버스정류장. 검은 외투를 입은 한 남성이 은평구 방향으로 가는 한 시내버스에 올랐다. 버스회사명, 차량번호, 기사 이름을 슬쩍 확인한 그는 뒤쪽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메시지를 하듯 뭔가를 계속 입력했다. 버스 기사가 교통 신호를 무시하거나 급정거·급출발 할 때마다 그의 손은 바빠졌다.




이 버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그는 서울시의 '버스운행실태 점검원'인 정주성 주무관이다. 정 주무관과 같은 운행실태점검원은 매장 친절도 등을 점검하는 '미스터리 쇼퍼'처럼 신분을 숨기고 버스에 올라타 운행 상황을 점검하는 일종의 '암행어사'다. 운영실태점검원은 서울시에 16명 있다.




기자는 이날 정 주무관의 암행 감찰에 동행했다. 이 버스에 탄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70대로 보이는 남성이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었다. 이 남성이 제대로 오르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했고, 남성은 균형을 잃을 뻔했다. 다른 여성 승객은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는 버스 때문에 기둥·의자·손잡이를 번갈아 잡아가며 뒷문 쪽으로 걸어갔다. 정 주무관은 기자에게 "이 기사분은 좀 심하시네요"라고 했다.




기자는 이 버스에서 두 번의 신호위반을 확인했다. 하지만 정 주무관은 네 번의 신호위반을 잡아냈다고 했다. 맨 뒷좌석을 고정하는 볼트가 하나 빠져 있는 것도 그의 눈에는 보였다고 한다. 정 주무관은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나중에 점검 보고서를 회사로 보낸다"며 "가끔 눈치 빠른 기사님들이 점검원인 걸 알아채고 갑자기 '모범 운전'을 하실 때도 있어 늘 조심한다"고 했다.




23일 서울 은평구~신촌 구간을 운행하는 시내버스에서 서울시 시내버스 운행실태점검원 정주성(오른쪽) 주무관이 버스 기사의 운행 습관을 살피고 있다. 원래는 한 버스에 한 명의 점검원이 탑승하지만 이날은 집중 점검 차원에서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왼쪽)가 동행했다. 정 주무관은 버스 기사가 알아차릴까 봐 몰래 보고서에 체크하거나 스마트폰에 메모했다. /홍준기 기자

정 주무관과 두 번째로 오른 버스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스마트폰을 흘깃흘깃 보던 기사는 조금 지나자 아예 한손으로 운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정 주무관은 "버스 같은 대형 차량 운전자가 통화나 문자전송 때문에 정신이 분산되면 버스에 탄 승객뿐 아니라 주변 차량, 도로를 건너는 보행자까지 크게 위험해진다"며 "서울시는 핸즈프리 장비를 이용한 통화도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2009년부터 이 같은 운행 실태 점검을 시작했다. 점검원 1명이 하루 중 출퇴근 시간대나 낮 시간 등을 정해 5~6대 정도의 버스를 탄다. 어느 버스를 얼마나 점검할지는 서울에 있는 66개 버스 회사가 보유한 차량 수를 고려해 정한다. 실태 점검 결과는 서울시의 버스 회사 평가에 반영된다. 총 2000점 중 안전실태 점검과 관련된 점수는 250점이다. 평가 등수에 따라 서울시 지원금 액수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차이 나기 때문에 업체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 버스 기사는 불만을 보인다. "감시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2009년엔 버스 기사들이 "서울시 직원들이 우리를 감시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를 기각하고 서울시 손을 들어줬다.




운행실태 점검 업무를 4년째 맡고 있는 정 주무관은 버스 기사만큼이나 승객들도 안전을 위해 노력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가끔 자신이 내려야 할 정거장을 늦게 알아채고 급히 뛰어내리는 분들이 있다"며 "이 경우 옷이나 가방 등이 버스 문틈에 끼여 사고가 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도로 안으로 들어와 버스 쪽으로 뛰어오거나 이미 승객으로 가득 찬 버스에 억지로 타려 하는 것도 사고를 부를 수 있는 행동이다. 정 주무관은 "가끔 차량이 없는 새벽에 버스 기사가 속도와 신호를 잘 지키면 '융통성이 없다' '이상하게 운전한다'며 화를 내는 승객도 있다"며 "버스를 타는 시민들도 개인 사정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탑승한 버스 2대 점검 결과는 서울시 내부 결재를 거쳐 27일 운수회사에 통보됐다. 이어 블랙박스와 차량 내부 CCTV 화면 등으로 위반 여부를 최종 확인해 운수회사 평가에 반영하게 된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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