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7일 월요일

“오 마이 페트라” 2천년 숨 죽인 고대도시의 두 얼굴


페트라의 보물 알 카즈네 앞에 낙타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입구 좌우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기마상이 새겨져 있다.
페트라를 여행한다는 것은 2천년 전 고대 도시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사막 한복판에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계곡이 있고 그 틈새에 고대 도시가 숨어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바위산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이 도시는 1812년 서양에 소개된 이후 경외의 대상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페트라를 배경으로 ‘죽음과의 약속’을 썼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의 해리슨 포드는 성배를 찾기 위해 페트라의 알 카즈네(Al Khazneh)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에게 페트라는 작년 종영한 드라마 ‘미생’ 마지막회의 배경으로 더 친숙한 곳이다. 오상식과 장그래는 페트라에서 만나 꿈과 길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꿈을 잊었다고 꿈이 아닌 것은 아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많은 ‘미생’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이 대사를 기억하는 팬들은 분명 페트라를 그들의 버킷리스트에 추가했을 것이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페트라

밤의 페트라 협곡 입구. 촛불이 밝히는 길을 걷다보면 비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힌다.
페트라를 찾았고 두 번 놀랐다. 처음엔 거대한 규모에 놀랐고 그 뒤엔 낮과 밤이 전혀 달라서 놀랐다. 낮의 페트라가 깎아지른 협곡을 따라 고대 도시를 탐험하는 미로라면, 밤의 페트라는 고요한 우주에서 다른 행성을 찾아가는 길이다. 페트라의 입구인 좁은 협곡 시크(Siq)는 무려 1.2km에 달하는데 바닥에 깔아 놓은 1800개의 촛불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세상엔 하늘에 뜬 수많은 별과 나 혼자만 존재하는 기분이 든다.

한참을 걷다 보니 불현듯 눈앞에 수백 개의 촛불의 향연이 나타난다. 아랍 유목민 베두인이 부는 피리 소리가 고즈넉하게 협곡에 울려퍼지고 그 뒤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바로 페트라의 보물, 알 카즈네다!

너비 30m, 높이 43m의 거대한 문인 알 카즈네는 사암을 음각으로 깎아 만들었는데 6개의 코린트식 원형 기둥이 2층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 이 보물이 놀라운 것은 접근조차 힘든 산 속에서 바위를 깎아 세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드 데이르 수도원 앞 노점상에 형형색색의 스카프가 걸린 모습이 이국적이다.
가장 아름다워서 많이 알려졌지만 페트라에서 알 카즈네는 시작일 뿐이다. 이 고대 도시엔 상수도, 목욕탕, 극장 등 없는 게 없다. 페트라는 중국과 인도 상인들이 비단과 향신료를 들고 이집트, 그리스, 로마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무역로로 나바테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나바테 왕국은 한때 로마 제국에 대항할 정도로 막강했지만 이내 로마의 속국이 됐기에 로마의 유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페트라는 지진으로 묻힌 뒤 14세기 이후 300년 간 잊혀졌다가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됐다. 그러나 규모가 워낙 방대해 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아직 페트라의 일부분만 보고 있는 셈이다.

◆페트라의 속살 아드 데이르

페트라 입구에서 5km 떨어진 곳에 있는 수도원 아드 데이르 전경. 나바테 왕국이 1세기에 건설한 이 기념물은 너비 50m, 높이 45m에 이른다. 비잔틴 시대 기독교 수도자들이 수행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제 페트라의 더 깊은 곳을 탐험할 차례다. 다음날 아침 다시 알 카즈네를 찾은 기자는 이번엔 페트라 북서쪽 끝의 수도원 아드 데이르(Ad Deir)로 가기로 한다. 당나귀로 1시간쯤 걸리는 먼 길이다. 물론 하이킹을 즐긴다면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당나귀를 타볼 것인가. 페트라에는 700마리의 등록된 낙타, 말, 당나귀, 노새가 있다.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인데 보통 왕복에 40디나르(6만2000원) 정도다.

페트라 곳곳에 있는 동굴은 고대 나바테아인들이 숙식을 해결했던 곳이다.
당나귀는 페트라의 곳곳을 뚜벅뚜벅 걷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백 기의 무덤들, 나바테아인들이 거주했던 동굴 입구 등이 풍경처럼 지나간다. 당나귀가 말을 잘 듣냐고? 기자는 이 길이 처음이지만 당나귀는 전문가다. 곧 바위산이 나타나고 당나귀는 850개의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른다. 당나귀가 계단을 오를 땐 함께 몸을 앞으로 숙여주는 게 좋다. 호흡이 맞는 당나귀는 신이 나서 걸을 것이다. 마침내 도착한 종착점에서 지친 당나귀를 쉬게 하고 나머지 절벽 위는 걸어서 올라간다. 그러자 장엄하게 펼쳐진 아드 데이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알 카즈네 앞에 관광객들을 위한 낙타가 앉아 있다.
이곳에 오니 수백년 간 페트라가 잊혀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알 카즈네처럼 아드 데이르 역시 겸손하다. 거대한 바위산 속에서 아드 데이르의 세밀한 음각은 히잡을 두른 아랍 여성처럼 조용히 빛난다. 가만히 앉아 누군가 찾아와주길 기다리고 있다. 결국 당신이 직접 길을 만들어 찾아가야 한다. 페트라가 잊혀진 꿈이라면 당신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언제까지라도 이곳에 숨어 있을 테니까.

◆페트라 여행 팁

개의 바위 계단을 올라온 당나귀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페트라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이틀 이상 머물 것을 추천한다. 입장료는 1일권 50디나르(7만7000원), 2일권 55디나르(8만5000원), 3일권 60디나르(9만3000원). 하지만 요르단을 당일치기로 방문해 페트라만 보고 가는 관광객은 90디나르(14만원)를 내야 한다.

밤의 페트라는 저녁 8시 30분부터 10시까지 알 카즈네까지만 개방하는데 입장료는 17디나르(2만6000원)다.

페트라는 요르단의 최대 관광지이니만큼 주변에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과 식당이 있다. 페트라의 전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페트라의 관문인 와디 무사에 위치한 호텔에 묶는 것도 좋다.

◆요르단 페트라 가는 길

페트라 수도원 아드 데이르 위로 요르단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한국에서 요르단으로 가는 직항은 아직 없다. 요르단 관광청에 따르면 로열요르단항공이 내년 인천 취항을 목표로 준비중이다. 현재는 아부다비, 두바이, 이스탄불 등을 경유해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갈 수 있다. 비자는 주한 요르단 대사관에서 받거나 혹은 공항 입국 때 40디나르(6만2000원)를 내면 도착 비자를 발급해준다. 페트라는 암만 공항에서 버스로 3시간에 갈 수 있다. 
<기사 출처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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