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8일 목요일

믿었던 자동차 블랙박스… ‘블랙아웃’에 발등



불량제품 피해 급증

지난해 7월 김모(34) 씨는 운전하다가 차 사고를 겪었다. 자신의 잘못보다는 상대방 운전자의 과실이 컸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믿었던 차량용 블랙박스에 ‘배신’을 당했다. 사고 당시 영상이 녹화되어 있지 않아 결백을 증명할 수 없게 된 것. 그는 앞서 2014년 4월에 A사의 블랙박스를 50만 원에 사들여 쓰고 있던 터였다. 

어쩔 수 없이 상대방 운전자에게 배상 책임을 떠안게 된 그는 A사를 상대로 운전자에게 준 배상금 전액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A사는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고 당시 영상이 녹화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블랙박스가 2013년 11월에 제조된 제품으로, 주기적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며 김 씨가 평소에 블랙박스를 어떻게 관리했는지도 증명할 수 없어 무조건 제품 불량으로 확신할 수 없다고 배상을 거부했다. 김 씨는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

차량 운행정보 및 실시간 동영상 정보를 담고 있는 블랙박스를 둘러싼 소비자 피해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블랙박스 시장은 300만 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10년 25만 대, 2012년 150만 대를 고려하면 사고 발생에 대비해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억울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인해 장착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블랙박스가 사고 영상만 제대로 확보하면 사고 원인, 당사자 간의 분쟁해결, 범인 검거, 사건·사고 예방에까지 톡톡히 한몫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블랙박스의 품질과 애프터서비스(AS), 계약, 부당행위를 둘러싼 피해 호소도 잇따르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가격이나 품질 역시 천차만별로, 소비자들로서는 여간해서 질 좋은 제품을 선별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블랙박스 동영상이 떠돌아다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블랙박스 등록제 도입 방안마저 검토되고 있다.

18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블랙박스 피해 상담은 2013~2015년 기간에만 1만1033건으로, 연평균 3677건에 달했다. 올해 1월 들어서도 211건이 들어왔다. 피해구제를 해달라는 민원도 같은 기간에 656건, 올 들어 1월에 23건으로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2010~2013년 1~9월의 피해구제 건수는 219건이어서 시장 규모의 팽창과 함께 피해가 덩달아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AS와 품질 불만 상담이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며 “제품에 하자가 있어 AS를 요청하면 처리를 늦게 하거나 AS를 해도 같은 하자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소비자 불만을 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모(39) 씨의 경우도 블랙박스 때문에 낭패를 본 사례다. 그는 2014년 3월에 주차해 뒀던 차량의 오른쪽 뒤범퍼 부위가 부서지는 뺑소니 사고를 당했고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기록돼 있지 않았다. 여러 차례 25만 원을 주고 장착했던 B사의 서비스센터를 찾아 이의를 제기하고 본사에도 정밀검사를 의뢰했지만 “비정상적으로 전원이 차단됐고, 제품에 대한AS만 가능하다”는 말만 들었다. 실랑이 끝에 나 씨는 한국소비자원의 중재로 블랙박스 구매 원가를 돌려받는 것에 합의했다. B사는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배상책임이 있다는 소비자원의 권고가 있고 나서야 환급 의사를 보였다.

블랙박스는 제품이나 가격이 천차만별인 데서 알 수 있듯 업체 수도 많고 중국산 제품도 반입되고 있다. 소비자원의 조사결과를 보면 31개 제품 가운데 21개 제품의 번호판 식별성이나 시야각 확보 능력 등 주요 성능과 한국산업규격(KS) 기준이 미흡한 것으로 확인돼 품질개선 지적을 받았다. 

또 전파법 제58조의 2(방송통신기자재 등의 적합성 평가)에 따라 전자파 적합성 평가 대상제품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이를 제조해 수입하려면 적합등록을 받아 국가통합인증(KC) 마크를 붙여야 함에도 불구, 전파법을 위반한 제품도 있었다.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정작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작동하지 않거나 업체에 보상을 요구하면 이런저런 핑계로 회피해 소비자만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고 있다. 블랙박스를 설치하고도 활용을 못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다. 영상의 위·변조 가능성도 있어 사고 발생 때 될 수 있는 대로 현장에서 영상을 확보해 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울러 노상, 주차장 등에서 무상으로 장착해 준다거나 휴대전화 요금으로 결제하면 무료라고 속이는가 하면,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를 가장해 판매하는 등 사기성 판매행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움직이는 CCTV’로 불릴 만큼 블랙박스의 기동성이 드러나면서 영상 및 음성정보 유포에 따른 사생활 침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블랙박스는 지금은 설치, 운영이 자율이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사실이 드러나도 제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김현윤 소비자원 경기지원 자동차팀장은 “블랙박스는 막연히 해상도가 높은 고가의 제품보다 번호판 식별성 등 영상품질과 동영상 저장성능이 좋은 제품을 고르는 게 바람직하다”며 “설치 후에는 녹화 화면을 살펴보고 시야가 확보됐는지, 설치 위치와 각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매 전에는 계약서 작성과 함께 공인 기관의 품질보증, 지속적인 AS 여부를 확인할 것을 권고했다.
<기사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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