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2일 월요일

“꼴사나운 선배들이 술 강권…안 마시면 왕따 걱정”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현장에 등장한 학과나 대학 이름을 붙인 술병(위, 가운데)과 집단 음주 뒤 모아놓은 빈 병들. [사진 인스타그램]
“선배와 새내기가 조를 짜서 술 먹이기를 하는데 꼴사나운 선배들을 많이 보게 되고 술도 억지로 많이 마시게 된다.” 트위터 이용자 ‘@vanill****’가 이달 초에 올린 글이다. 한 대학 신입생이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의 줄임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대한 궁금증을 보이자 답으로 썼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의 ‘선배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터=술’ 또는 ‘새터=군기’라는 인식이 고착화되면서 해마다 2월 말께 반복되는 현상이다.

23일 새터에 참석해야 하는 서울의 한 신학대 신입생 이모(19)씨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은데 안 마시면 선배들이나 동기들이 왕따를 시킬까 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건국대 신입생 김모(19)씨도 “소주 3잔도 못 마시는데 괜히 술을 많이 마셔 실수할까 봐 걱정된다”고 호소했다.

 이미 호되게 당한 학생도 많다. 최근 새터를 다녀온 서울의 한 국립대 신입생 김모(19·여)씨는 “강요하진 않았지만 말리는 사람이 없다 보니 과음을 해 응급실에 간 친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큰 사고도 심심찮게 생긴다. 지난해 2월에는 광주교대 신입생 이모(19·여)씨가 술을 과도하게 마신 뒤 심정지를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2013년 2월에는 서울 지역 대학생 김모(20)씨가 술을 마신 뒤 콘도에서 추락해 숨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오리엔테이션 음주 사망자는 매년 1~3명씩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선배 갑질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이 수북하다.

지난 1월 서울의 한 사립대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우리 과에는 페트병 윗부분을 자른 뒤 입구를 신입생의 입에 물리고 소주와 물을 섞어 붓는 전통이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익명의 글쓴이는 ‘나도 처음 할 때 말도 못할 압박감에 벌벌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겁나 무섭다’ ‘XX대에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강압적인 ‘군기 문화’나 고액의 참가비도 논란거리다. 최근 경희대 체육대학교 학생회가 새터 비용으로 38만원을 책정하고 참석을 강제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학생회 측은 “참석을 강제한 적이 없고 금액도 학생회비(11만원)와 단체복 구입비(15만원)가 포함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구교대에선 일부 학과 학생회가 ‘불참비’를 거둬 말썽이 됐다. 지난해 2월 전남대 음악학과에서는 선배들이 새터 날 신입생들의 동아리와 아르바이트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 같은 대학 문화에 대해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초·중·고 내내 입시 위주 교육을 받던 학생들이 민주 시민의 덕목을 키우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의료·법조계에서도 ‘기수 문화’와 같은 서열주의가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성인으로서 첫발을 딛는 학생들도 ‘서열주의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인식하게 돼 선배가 후배 위에 군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22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새터 현장 안전점검을 실시한다. 한양대·수원대 등 참여 학생 500명 이상인 13개 교가 점검 대상이다.

점검단이 교육부가 2014년 배포한 ‘대학생 집단연수 운영 안전 확보 매뉴얼’ 내용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매뉴얼에 따르면 각 대학은 음주·폭행에 관한 사전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의 줄임말. 대학교 학생회가 학교 생활을 안내한다는 취지로 신입생을 한자리에 모으는 행사를 일컫는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으로 오랫동안 불렸으나 최근에는 ‘새터’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인다.
<기사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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