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동길 하수관 르포
지난 8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 길 아래 1.2m 높이 하수관의 천장이 부식돼 철근과 돌들이 드러나 있는 모습을 곽창렬 기자가 살펴보고 있다. 이 돌들 틈에 생긴 작은 구멍을 통해 하수관 바깥 흙이 안으로 흘러들어오면 하수관 밖에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콘크리트가 부식돼 드러난 돌과 철근 사이로 하수관 벽에 구멍이 나 있는 모습. 부식된 철근이 나무처럼 보인다. 구로구 관계자는 “낡은 하수관을 교체하고 있지만 예산이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제작된 지 40년도 더 된 듯, 시멘트·모래 사라진 자리에 박혀있던 돌 그대로 드러나
싱크홀 81% 낡은 하수관때문… 서울 하수관 절반, 30년 넘어
지난 8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 길에 있는 한 맨홀 뚜껑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 공간을 손전등으로 비추니 높이 1.2m, 폭 1.5m짜리 사각 하수관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웅크려 하수관으로 진입한 뒤 오리걸음으로 10m쯤 들어갔다. 그러자 머리 위에 있는 회색 콘크리트벽에 가로 10㎝, 세로 5㎝ 정도 크기의 타원형 돌 수십개가 박혀 있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검은색, 회색, 푸른색 등 돌 색깔도 천차만별이었다. 50m 정도 더 들어가는 동안 군데군데 이 같은 돌 무리가 계속 발견됐다.
도대체 하수관 벽에 왜 이런 돌이 박혀 있을까? 구로구 강평옥 하수팀장은 "수십년 전 시멘트·모래와 함께 이 돌들을 섞어 하수관을 만들었는데, 하수관 벽이 닳고 닳아 돌들이 드러난 것"이라 했다. 이 돌들은 콘크리트를 만들 때 쓰는 일반 자갈보다 컸다. 강 팀장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돌 크기와 생김새를 볼 때 30년도 훨씬 전에 있었던 강돌(강 주변에 있던 돌)로 봐야 한다"며 "작은 자갈이 부족해 큰 강돌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구로구는 이날 기자가 둘러본 오류동 하수관로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강돌이 쓰인 것으로 봤을 때 197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적어도 40년은 지났다는 얘기다.

하수관을 따라 150m가량 계속 진입해 보니 강돌이 박혀 있는 곳이 수십 군데 더 나타났다. 강돌 사이에는 콘크리트벽을 구성했던 시멘트나 모래가 작게 덩어리진 상태로 군데군데 목격됐다. 그 사이로 작지만 미세한 구멍도 눈에 띄었다. 손으로 강돌이 보이는 천장을 문지르니 흙이 바닥으로 조금씩 떨어졌다. 하수관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약간 겁이 났다. 현장을 지켜보던 한 전문가는 "당장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고 했다. 그는 "비가 내리면 강돌 사이의 이 작은 구멍으로 빗물이 스며들게 되고, 이 물과 함께 하수관 바깥쪽 흙도 하수관 속으로 쓸려 들어오게 된다"고 했다. 하수관 바깥의 흙이 하수관 속으로 쓸려 들어가면 흙이 있던 공간이 비게 되고, 이 공간이 점점 커지면서 지표면이 무너져 '싱크홀(sinkhole·지반 침하)'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시내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총 3300여개로 그 원인의 81.4%가 이 같은 '하수관 노후화'였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30년 이상 된 낡은 하수관은 시내 전체 하수관 1만여㎞ 가운데 절반(약 5000㎞) 정도다. 자치구별로 보면 성북구(296㎞), 송파구(295㎞), 영등포구(280㎞), 종로구(255㎞), 관악구(255㎞) 순으로 낡은 하수관이 많이 매설돼 있다. 반면 중구(119㎞)나 서대문구(180㎞), 강남구(169㎞), 서초구(190㎞) 등은 상대적으로 노후 하수관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낡은 하수관들은 시민 거주지나 보행로에 언제든 싱크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류동 길의 경우 하수관로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곳에 30여가구가 거주하는 빌라가 있었다. 다행히도 "하수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싱크홀의 규모는 하수관로 사이즈 정도이기 때문에 이 빌라까지 싱크홀의 공격이 미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반대로 판단해보면 낡은 하수관로의 1.5m 반경에 있는 빌라 입구와 각종 보도에는 비가 내리는 등 지반이 약해지는 상황이 되면 언제든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류동 길 인근에 사는 주민 김모(44)씨는 "내가 다니는 길에서도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4년간 '50년 이상 된 하수관'의 30% 정도인 932㎞ 구간만이라도 교체해 싱크홀 발생을 줄여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선 사업비가 매년 2300억원 이상 필요한데, 서울시 예산만으로 충당하기엔 매년 1000억원 정도가 부족하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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