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4일 토요일

당뇨와 실명, 정말로 달콤함에 눈이 먼다

눈을 보다
당뇨와 실명


당뇨로 인해 망막 혈관에 이상이 생긴 환자의 눈을 형광안저촬영한 모습. 고혈당에 망막 혈관은 특히나 취약하다. <한겨레> 자료사진아이가 며칠째 열감기로 보채는 통에 잠을 설쳤더니 몸이 말이 아니다. 이런 때 원고 마감까지! 아이가 잠시 잠든 틈을 타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들여다보지만 눈이 시리고 뻑뻑해서 머리까지 아파온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까 하며 고개를 들자 문득 거울에 추레한 얼굴이 비친다. 십리는 들어간 듯한 퀭한 눈, 붉게 핏발 선 흰자위, 턱까지 내려올 듯한 다크서클까지. 며칠 새 급격하게 나이 먹은 듯한 낯선 느낌에 거울에 바짝 다가가니, 이번엔 총기(聰氣) 빠진 멍한 눈동자와 벌겋게 짓무른 눈꼬리, 힘없이 늘어져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에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까지 추가적으로 시야를 비집고 들어온다. 이건 누가 봐도 수면 부족과 피로 누적 7종 세트를 완벽하게 갖춘 지친 눈의 표본이라 아니할 수 없다. 

퀭한 눈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워낙 잘 알려져 있어서인지 우리는 눈으로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다. 마음은 시선의 미묘한 교차와 눈동자의 움직임, 눈꺼풀의 움직임을 통해 호감, 경멸, 놀람, 노여움, 호기심, 지루함 등을 어렵지 않게 표출해 낸다. 타고난 세심함에 적절한 훈련이 더해지면 상대의 눈에서 이러한 감정들을 읽어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눈이 전달하는 것이 꼭 마음의 소리만은 아니다. 눈은 때로 몸의 상태를 일차적으로 드러내주는 몸의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눈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질병들이 눈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가끔씩 어지러움을 느껴 양호실을 찾아가면 양호선생님이 한번씩 눈 밑을 잡아당겨 안쪽 점막을 들여다보곤 했다. 지금이야 세 아이의 엄마다운 전형적인 외모를 갖추고 있지만, 한때 피골이 상접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래서였는지 어지러움을 느끼면 빈혈이 최초의 용의자로 지목되곤 했다. 빈혈(貧血)이란 단어는 ‘혈액이 부족하다’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혈액 내 적혈구, 그중에서도 혈색소인 헤모글로빈이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적혈구가 붉은 이유는 헤모글로빈 속에 든 철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산화되어 붉은색을 띠기 때문이다. 눈 주위의 점막은 유난히 얇고 실핏줄이 풍부해 평소에는 선명한 붉은색을 띤다. 그런데 빈혈 증상으로 헤모글로빈의 양이 적어지면 적혈구의 붉은빛이 줄어들기 때문에 눈 점막도 붉은 기운이 빠지고 창백하게 변한다. 물론 사람마다 점막의 붉은 정도는 다르긴 하지만, 눈 점막이 지나치게 창백해서 옅은 분홍색이나 흰색에 가깝다면 빈혈일 가능성이 높다.

때로 눈은 자세를 바꾸어 몸 상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몸이 불편한 날, 유독 자세를 자주 고쳐 앉거나 뒤척이는 것처럼 말이다. 사지가 없고, 안와 내부 공간에 들어 있기에 움직인다는 것이 여의치는 않지만, 그래도 눈은 자신의 능력껏 자세를 고쳐 잡아 몸 상태를 드러내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갑상선 기능 이상이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의 경우, 종종 눈을 둘러싼 외안근이 부어오르곤 한다. 외안근이 부어오르면 안와 내부의 자리가 비좁아져 안구를 밀어내게 되고, 외견상으로는 마치 눈이 커지고 돌출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반대로 피로가 누적된 경우, 특히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눈을 많이 이용하는 일을 장시간 하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잔 경우에는 눈이 움푹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느낌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실제로 약간 눈이 안쪽으로 후퇴한다. 물론 그 차이는 매우 미미하지만 말이다. 눈은 뇌와 직접 연결된 장기답게 신체 기관 중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편에 속한다. 따라서 눈을 장시간 사용하게 되면, 눈을 둘러싼 지방 조직이 소모되면서 눈에 걸리는 압력이 줄어든다. 또한 밤새 깨어 있게 되면 특히나 얇은 눈 주위의 피부조직이 수분이 부족해져 푸석푸석 주름이 지는 것도 눈을 둘러싼 압력이 헐거워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 결과 우리의 눈은 비록 ‘십리는 들어간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움푹 패어 퀭한 형상을 띠는 것이다.

때로 눈은 다양한 색을 표지로 이용해서 몸의 상태를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황달에 걸리면 흰자위가 노랗게 변하고 윌슨병 환자에게서는 눈동자와 흰자의 경계면에 푸른색 고리가 드러난다. 시스틴증을 앓는 유아의 각막에는 번쩍거리는 시스틴 결정이 자라나고, 요산이나 칼슘이 몸에 지나치게 많으면 각막에 이들이 만든 띠가 생겨난다. 하지만 눈에 가장 흔하게 덧칠되는 색은 역시나 피의 색, 빨강이다. 신체 조직은 모두 혈액을 통해 영양분과 산소를 노폐물과 이산화탄소와 교환하고 면역세포들도 공급받는다. 눈은 몸 밖으로 드러나 있다는 이점을 십분 살려 필요한 산소 중 일부는 공기 중에서 직접 얻기도 하지만, 역시나 나머지는 혈액을 통해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결막염과 같은 감염성 질환, 이물질 유입, 콘택트렌즈로 인한 산소 투과율 저하, 다양한 방식의 눈의 혹사 등등- 눈에 산소와 영양분, 면역세포 등의 공급이 부족해지거나 추가로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눈으로 가는 혈류량이 늘어나고 이는 모세혈관의 확장을 가져와 벌겋게 핏발 선 눈을 만들어낸다. 때로 과다한 혈류량이나 높아진 혈압은 혈관을 터뜨리기도 하는데, 눈은 투명하다는 특성상 혈관이 남긴 붉은 자국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곳이다. 문득 몇년 전 산후조리원에서 친구를 만났던 경험이 떠오른다. 나보다 며칠 전 아이를 낳은 친구는 핏빛 눈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도무지 흰색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만큼 핏물이 가득한 눈. 그건 18시간 동안 이어진 진통과 난산을 겪어낸 징표이자, 엄마가 되기 위한 혹독한 신고식의 증거였다. 

혈관 좁고 산화스트레스 많은 망막
고혈당 상태 지속되면 부어오르다
여기저기 혈관 새고 터져버려
당뇨환자 대부분 시력 감퇴되고
2%는 실명으로 이어지는 이유

게임과 독서로 눈 많이 사용하면
눈이 움푹 들어간 느낌 받는데
실제 눈이 약간 안쪽으로 후퇴
갑상선 기능 이상 땐 외안근이
부어올라 눈 돌출된 듯 보여
 

임신중독 증상 때도 종종 시야 잃어

때로 이러한 질병들은 단순히 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눈의 기능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보이는 모든 것을 차단함으로써 질병의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설인 것이다. 임신중독 증상을 보이는 산모는 종종 시야를 잃는다. 혈압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망막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망막동맥이 좁아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임신중독으로 인한 시력 상실은 예후가 좋은 편이어서 대부분의 산모들은 출산 이후, 즉 임신중독 증상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빛을 되찾곤 한다. 당뇨의 경우는 다르다. 당뇨 환자의 대부분이 시력 감퇴를 경험하며 전체 당뇨 환자의 2%는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단순히 혈액 속에 당이 많아지는 것이 왜 실명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인체의 세포의 유일한 에너지원은 포도당이며, 포도당을 공급받지 못하는 세포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혈액은 각각의 세포에 포도당을 공급하기 위해 혈관을 타고 끊임없이 순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포도당은 혈액 속에 포함된 다른 단백질이나 혹은 혈관벽을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과 접하면서 의도치 않은 부산물을 만들어내게 된다. 마치 카레를 계속 젓다 보면 당근과 감자가 부딪쳐 뭉그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몸은 꽤 효율적인 폐기물 제거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부산물은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뭐든지 한계치는 있는 법, 포도당과 단백질이 반응해 만들어진 찌꺼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들은 채 씻겨 내려가지 못하고 혈관 내벽에 달라붙어 쌓이게 된다. 이는 혈관 내부에 이물질이 붙어 이로 인해 혈관 내벽이 점점 좁아지는 증상, 즉 죽상경화의 원인이 된다. 부산물의 양은 그들의 애초에 혈액 속에 들어 있던 포도당과 단백질의 양에 비례하므로 혈당이 높은 당뇨 환자들의 혈관 속에서는 이 과정에 가속이 붙기 마련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전신의 모든 혈관에서 나타나지만, 가장 먼저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아무래도 혈관 직경이 좁은 모세혈관이다. 그중에서도 망막혈관은 특히나 취약하다. 망막혈관은 혈관 막힘에 연관된 모든 악조건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안구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망막혈관은 가능하면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서 매우 가늘지만, 눈은 물리적 크기에 비해서는 사용하는 에너지가 많아 좁은 혈관에 비해 흐르는 혈류량이 많다. 한마디로 수도관은 작은데 흐르는 물의 양은 많다는 것이니 당연히 혈관이 받는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망막은 신체 내부 기관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빛과 직접적으로 맞대면하는 곳이기에 빛 자체의 에너지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에 의한 산화스트레스가 큰 곳이기도 하다. 시중에 출시된 눈 건강 영양제의 상당수가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물질이 들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듯 원래부터 여러가지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망막혈관에 고혈당은 또다른 부담이 된다. 고혈당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부산물이 더 큰 문제다. 초반에야 자체 복구 시스템이 가동되어 큰 문제가 없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망막혈관은 부어오르거나 터지기 마련이다. 이렇듯 망막혈관에 문제가 생겨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면 망막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고, 이 문제에 대비해 눈은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망막에 새로운 혈관, 즉 신생혈관을 만들어내는 응급처치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하지만 응급처치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대책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망막에 만들어진 신생 혈관은 조직이 견고하지 못하기에 시간이 지나면 결국 추가적 혈관 파열을 가속화하는 악수(惡手)로 작용하고 만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혈액은 자꾸 새고 여기저기 터지고 혈관계가 엉망진창으로 비틀리고 만다. 망막이란 원래 구형(球形)인 안구 안쪽에 혈관과 신경들이 얇은 필름처럼 팽팽하게 찰싹 밀착되어 있는 구조인데, 혈관계가 망가지면 망막이 우그러들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망막이 안구에서 왕창 떨어져 버리는 망막박리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적어도 이 경우에 있어서는 ‘달콤함에 눈이 먼다’는 말이 더 이상은 관용어구가 아닌 셈이다. 

반짝이지 않는 눈은 어떤 구조 신호

설핏 잠이 들었을까. 어느새 아이가 다가와 흔든다. 간밤에 열이 내렸는지 아이의 눈엔 모처럼 만에 생기가 돈다. 물기를 머금은 초롱초롱한 눈이 이제 몸에서 감기 바이러스를 몰아내었음을 증명하듯 반짝였다. 지난 며칠, 고열에 들떠 초점 없이 벌어진 마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졸아들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모든 질병과 이상이 눈을 통해 특징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눈이 심리적인 상태와 함께 몸의 상태를 드러내는 1차적 창구의 역할을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몸의 이상은 눈으로 드러난다. 그렇기에 가끔씩은 거울 속의 내 눈을 자세히 바라볼 필요도 있다. 눈은 세상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지만 단 하나, 스스로는 보지 못하기에 눈이 보내는 신호는 그 신호를 만들어내는 내가 가장 늦게 알아차리기 쉽다.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내 눈이 생기를 잃고 반짝이지 않거나 평소와는 다른 그늘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건 내 몸과 마음 어딘가가 보내는 구조 신호일 수도 있으니. 

<기사 출처 : 한겨레>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