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아무나 못파는 로또… 판매권이 거래된다



서울 강북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A씨(50)는 계산대 옆에 놓인 로또 단말기를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고 했다. 지난 3월 설치했는데 매상에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로또를 사러 가게에 들른 손님들은 다른 상품도 꽤 많이 장바구니에 담는다. A씨는 “장사하는 입장에선 담배하고 로또만 있으면 본전은 뽑는다”고 말했다.

A씨는 진즉부터 로또를 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2003년 이후 신규 로또 판매인 모집이 없었다. 지난해 11년 만에 처음 판매인을 뽑았는데 신청 자격이 취약계층으로 제한됐다. 그러던 차에 동네 부동산 소개로 B씨(42)를 알게 됐다.

B씨는 장애인이다. 로또 판매인이 될 취약계층 ‘자격’을 갖췄지만 로또 판매점을 낼 형편이 안됐다. 두 사람은 A씨 가게에 로또 단말기를 설치하고 수익을 반씩 나누기로 했다. B씨가 A씨 가게에 들어와 장사하는 ‘숍 인 숍(Shop in Shop)’ 형태로 사업자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A씨가 로또를 판매했다. B씨는 단말기 명의만 빌려줄 뿐 가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서민이 기댈 건 ‘한방’뿐?

계속되는 불황에 서민이 기댈 것은 ‘로또 한방’뿐이어서일까. 로또 판매액은 최근 몇 년째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액은 3조489억원으로 2010년 2조4316억원에 비해 6000억원이나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1조6111억원어치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0억원 늘었다.

손쉽게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로또를 팔겠다고 나서지만 아무나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복권 수탁사업자인 나눔로또는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따라 판매인 자격을 국가유공자·기초생활수급자·장애인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1월 신규 판매인 610명을 뽑는데 6만9689명이 지원해 114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로또 판매인 자격을 얻는다고 끝이 아니다. 추첨을 통해 자격을 얻으면 6개월 이내에 로또 판매를 위한 사업장을 소유하거나 임차해야 한다. 그런데 로또가 생업을 팽개치고 매장을 차릴 만큼 돈벌이가 되는 것은 또 아니다. 지난해 판매점 평균 수입(판매수수료)은 연간 2795만원으로 추산됐다. ‘대박’ ‘명당’ ‘성지’라고 불리는 일부 판매점을 제외하면 세간의 인식만큼 높은 수익을 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권리금에 임대료도 빼야 한다. 목 좋은 자리에 매장을 차릴만한 형편이 되는 ‘취약계층’도 그리 많지 않다.

사고 팔리는 ‘로또 판매권’

이렇다보니 로또를 둘러싼 꼼수가 판친다. 편의점 또는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거나 좋은 상권에 로또 판매점을 내려고 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로또 단말기를 들여놓으려 한다. 로또 매장을 차릴 형편이 안 되거나 생업을 접고 로또 판매에 나서기엔 망설여지는 쪽에선 단말기를 임대해 수익을 올리고자 한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 자연스레 실체 없는 ‘로또 판매권’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편의점주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로또 판매권을 사거나 빌리겠다는 게시물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중고거래 사이트에도 ‘로또 판매권 구합니다’라는 글이 버젓이 게재된다.

편법이 성행하지만 사실상 단속은 이뤄지지 않는다. A씨와 B씨 경우처럼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나눔로또 측에서 전수 점검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올해에는 단 2명만 위장영업으로 적발됐다.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로또 단말기를 편법으로 임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도 “설사 임대한다 하더라도 어쨌든 취약계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눔로또는 지난 18일부터 신규 판매인 650명을 다시 모집하고 있다. 올해는 더 많은 인원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청서를 접수한 장애인 최모(55)씨는 “로또 부럽지 않은 게 로또 판매권인데 당첨되기도 로또만큼 힘들다”면서 “매장 차릴 형편은 못 된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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