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여비 좀 주세요” 해외공관 순례하는 얌체 여행객

“여행하다 돈이 떨어져서 호텔비도 못 내요. 좀 도와주세요.”

최근 한 재외공관에 20대 남성 A씨가 찾아왔다. 형편이 어려운 그는 지인들에게 돈을 얻어 구입한 편도 항공권으로 해외여행을 하다가 여비가 다 떨어지자 이곳에 온 것이다. 공관 직원은 A씨 가족에게 연락해 즉시 돈을 송금 받으라고 안내했지만 마땅히 연락이 닿는 가족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A씨의 사정을 감안해 ‘긴급구난 제도’로 귀국 항공권 비용을 지불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나라의 공관에 A씨가 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여비가 없다며 또 돈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얻은 돈으로 저가 편도 항공권과 소액 경비를 마련해 해외로 떠난 뒤 여행을 즐기다 돈이 떨어져 공관을 찾았다. 해외 체류 중 자연재해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국민들의 혈세를 ‘노잣돈’으로 삼으려 한 셈이다.

A씨 외에도 상습적으로 해외공관을 찾아 돈을 타내려는 사람들이 더 있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칼을 뽑았다. 정부는 전 세계 공관에 이런 사람들에 대한 ‘주의보’를 내리고 긴급구난비 지급 심사를 엄격히 하도록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긴급구난제도는 해외에서 극단적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며 “자기 여행 경비를 아끼려고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는 반드시 근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했을 때 ‘급전’을 송금 받을 수 있는 ‘신속 해외송금’ 제도도 얌체 여행객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신속 해외송금이란 신용카드와 현금을 모두 잃어버려 돈을 받을 방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로, 가족 등 국내 연고자가 돈을 외교부 계좌에 입금하면 재외공관이 이를 확인하고 그만큼의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1회에 한해 최대 3000달러(약 348만원)를 은행 수수료만 내고 이체할 수 있다. 연중무휴로 하루 24시간 운영되며 은행이 문을 닫는 밤이나 주말에도 이용 가능하다.

제도가 처음 도입됐던 2007년 213건이었던 송금 건수가 2008년 329건, 2009년 362건, 2010년 405건, 2011년 526건, 2012년 630건, 2013년 739건, 지난해 680건 등으로 증가추세다. 송금 금액도 2007년 2억2000만원었다가 지난해엔 6억4400만원이나 됐다.

그런데 도박으로 돈을 탕진했거나 고가 물품을 사려고 긴급 해외송금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건·사고 등 다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한해 이 제도를 이용토록 하고 구체적인 신청 사유를 밝히도록 돼 있지만, 해외공관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일일이 적발하려고 행정력을 낭비할 수 없는 노릇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긴급구난과 신속 해외송금은 외국에서 모든 짐을 잃어버리거나 감옥에 갇혀 보석금이 필요한 경우, 사고를 당해 병원비가 필요한 경우 등 극단적 상황을 위한 것”이라며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면 신청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사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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