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9일 화요일

아내의 "한 장만 더~"가 제일 무서운 남편들

- '인스타그램 허즈번드' 아시나요
SNS에 사진 올리는 아내 위해 '찍사'가 된 남편을 희화화한 말
외식하러 가면 음식 앞에 두고 "OK" 할 때까지 찍고 또 찍어
열중하는 모습, 길 걷는 모습 등 카메라 없는 듯 '자연스러움' 대세
"여성은 자신이 찍은 사진 보며 당시의 행복감 느끼고 싶어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내에게 셀카봉을 사줬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더 이상 내 사진 찍어주기 싫은 거야?' 하고 화내더군요. 사실 이제 아내 사진 좀 그만 찍고 싶어요."
이달 초 유튜브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업로드된 지 2주 만에 400만 뷰를 훌쩍 뛰어넘은 영상의 제목은 '인스타그램 허즈번드(husband·남편)'.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쉴 새 없이 찍어줘야만 하는 남편을 희화화한 단어다. 영상엔 '아내 전담 사진기사'라는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전 세계 남편들이 보낸 사연이 모였다.
여보, 한 번만 더 찍어줘~
'페이스북은 본인 자랑, 카카오스토리는 자식 자랑, 인스타그램은 음식 자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 음식 사진이다. 맛깔스러운 음식 사진은 물론, 음식 앞에서 활짝 웃는 여성들의 사진도 많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그러나 결혼 1년 차 남편 김진원(31)씨는 "인스타그램 때문에 아내와 함께 외식하러 식당을 가는 게 두렵다"고 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아내가 스마트폰을 건넨다. 음식 먹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신호다. "제일 무서운 소리가 '오빠 한 번만 더 찍어줘'예요. '잘 나왔네' 소리 듣기까지 몇 번을 찍는지 몰라요. 앞에 음식 두고도 먹질 못하니 고통스럽죠."
반대로 아내가 촬영할 때는 모델이 돼줘야 한다. 박찬(35)씨는 "고기 굽고 있는데도 아내가 '여기 보고 웃어봐'라고 하면 웃어야 한다"고 했다.
OK할 때까지 찍고 또 찍고
'찍사' 남편에게 요구하는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간다. 카메라를 보며 웃는 모습만 찍어서는 안 된다. 카메라가 없는 듯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 길거리를 걷는 모습과 같은 '자연스러움'이 대세다. 결혼한 지 3년을 갓 넘긴 이재현(33)씨는 처음엔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서도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는 아내 때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이젠 아내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는 "위, 아래에서 본 각도와 정면 촬영을 골고루 해준다"며 "사진을 조금 찍어 혼나는 것보다 못 찍어도 많이 찍는 게 낫다. 많이 찍어놓으면 그중에서 한두 장은 건질 수 있다"고 했다.
사진으로 행복 증명하는 여자
아내가 끊임없이 사진 촬영을 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권정혜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자들은 관계보다 성취감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부부간의 세세한 일을 사진으로 촬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관계로, '우린 이런 걸 먹고 즐겨'식으로 일상을 기록해 사람들에게 둘의 관계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은 심리학적으로 자신이 찍은 사진을 계속 보며 당시의 분위기와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꾹 참고 셔터를 누르다 화가 다른 쪽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하지 마' '싫어' 같은 말을 신경질적으로 불쑥 내뱉으면 부부 싸움이 되기 쉽다"며 "사진을 다 찍고 나서, 좋은 분위기에서 서로의 귀가 열려 있을 때 '이런 거 안 하면 좋겠어'라고 부드럽게 돌려서 말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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