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8일 토요일

법사위 1명만 반대해도 法 못 만들어… 여의도 ‘甲중의 甲’

국회 법사위 월권방지 법안 왜 나왔나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2항, 3항, 4항, 5항, 6항, 7항은….(가결하려고 하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잠깐만, 다른 것도 하려고요.

▽이=다른 것?

▽김=7항.(편집자 주: 7항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이=7항이요? 7항도 2소위로 넘겨요?”(주: 2소위는 법사위 법안2소위원회)

▽김=예. 7항도 넘겨야 되겠는데요. 

▽이=그럼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 7항과 8항은 심도 있는 심사를 위해 법안심사 제2소위에 회부하고자 합니다. 이의 없으십니까?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7항은 지금 이유가 말이 안 나왔는데?

▽김=그거 그냥 편의상 얘기 안 했는데요. 시간 관계상. 

▽전=7항은 2소위 가자는 게 이유가….

▽김=(이유는) 제가 2소위 가서 얘기하면 되니까요.

▽이=특별히 이것을 빨리 해야 될 상황이 아니면 그렇게 하시지요.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3월 3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속기록 중 한 대목이다. 단 몇 분 만에 2소위원회로 회부된 ‘7항’은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도록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금연 정책의 일환으로 여야가 합의해 처리된 법안이 본회의로 가기 전 ‘마지막 관문’으로 여겨지는 법사위에서 가로막힌 것이다.

김진태 의원은 법사위 회의 다음 날인 4일 자료를 내고 “담배를 피울 때마다 흉측한 그림을 봐야 하는 것은 행복추구권 침해로 과도한 규제라고 생각해 반대했다”고 밝혔다.

한 복지위원은 “도·소매상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감수하고 여야 의원들이 소신껏 겨우 합의한 법안인데 몇 분 만에 보류되니 허무하다”고 털어놨다. 국회 상임위에서 ‘갑 중의 갑’으로 불리는 법사위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월권행위 또는 갑질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일 수 있다. 

사실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관련 법안은 2002년 16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후 11번이나 관련 법안이 재발의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3월 3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통과했다고 가정한다면 내년 9월부터는 건강의 유해성을 부각한 그림이 그려진 담배를 사게 되는 것이었다. ‘법사위 월권 논란’이 초래하는 결과는 국민의 실생활과 멀리 있지 않다.

‘체계와 자구 심사’ 국회법 86조의 모호성

법을 만들고 심사하는 것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국회의원 또는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면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의결한다. 그리고 최종 관문이자 국회의원 300명 전원의 뜻을 묻는 본회의를 거치기 전 모든 법안은 법사위를 거쳐야 한다.

법사위는 언제 어떻게 16개의 다른 상임위와 달리 법안의 통과를 결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갖게 됐을까. 2대 국회 때인 1951년 엄상섭 의원의 제안으로 신설된 국회법 86조 1항 때문이다. 

해당 조항을 보면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한 때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모든 법안은 반드시 법사위를 거쳐야만 본회의로 올라갈 수 있다. 

규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당시 법률안의 위헌성과 다른 법률과의 충돌 여부 등을 심사함으로써 법률의 합헌성, 체계 정당성, 조화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더 완벽한 법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86조 1항이 규정한 ‘체계와 자구 심사’의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통일된 견해가 없다. 단순히 잘못된 법안 문구를 고치는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다수.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법률안의 주요한 내용까지 손보는 것이 관행이 돼 버렸다.

“법사위 2소위는 법안의 무덤”

다시 3월 3일로 돌아가 보자. ‘뚜렷한 이유 없이 법안이 계류된 것은 법사위의 월권이 아니냐’는 질문에 국회 법사위 새누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은 “제동이 아니라 추가 논의를 위한 것”이라면서 “관례상 한 명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2소위원회로 회부된다”고 답했다. 사실상 법사위원 개개인에게 거부권이 주어진 셈이다. 

법사위에는 법안 1소위원회와 2소위원회가 있다. 1소위에서는 법사위 소관 기관 관련 법안들이, 2소위에서는 타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들이 추가 논의된다. 타 상임위 위원들 사이에서는 법안 2소위가 ‘법안의 무덤’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법사위가 발표한 공식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13일 기준 법안 2소위에 계류돼 있는 법안은 모두 53개다. 가까이는 3월 3일 소위원회에 회부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부터 가장 오랜 시간 계류된 법은 2012년 11월 법사위 소위로 회부된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다. 2년 넘게 장기 계류 중인 법안들도 모두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 처리로 올라온 법안들이다.

19대 국회가 끝날 때 이 법안들도 자동 폐기된다. 

“법사위가 ‘슈퍼갑’인가” 월권 금지 결의안까지

‘법사위 월권 논란’은 하루 이틀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2월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 통과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법사위에서 논란이 됐다. 환노위가 특수고용자들에 대한 산재보험을 의무화하는 파격 법안을 처리했지만 법사위에서 “정부가 보험 가입을 강제해선 안 된다”는 주장으로 제동을 건 것. 당시 환노위는 이례적으로 ‘법사위의 월권적 심사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까지 반발했지만 지금까지 소위에 계류돼 있다. 

지난해 4월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발목 잡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아청법)도 그중 하나다. 아청법은 16세 미만 미성년자 성폭행범의 집행유예를 원천 차단하고 법정 최저형을 현행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권성동 간사와 김진태 의원이 법 개정을 반대했다. 일반 강력 범죄와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반한다는 것과 현행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채 안 됐다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법사위 전문성 부족·로비 의혹까지

최근 어린이집의 아동 폭력 문제가 대두된 후 이를 막기 위해 어린이집의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이 국회에서 논의됐다.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는 통과했지만 법사위 논의 과정에서 법안 중 ‘네트워크 카메라’ 조항이 삭제됐다. ‘네트워크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영상을 외부에 전송하는 장치로 학부모가 실시간으로 자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복지위 소속 김현숙 의원은 “인권침해 문제까지 이미 복지위에서 논의를 거듭하고 결론 내린 사항”이라면서 “네트워크 카메라를 이미 설치한 어린이집이 다수 있어 그 조항이 삭제되면 해당 어린이집은 CCTV를 또 설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사위 논의에서는 다뤄지지 못한 부분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수입 식품의 검역을 강화하는 제정법을 냈는데 법사위에서 이유 없이 계류됐다”면서 “법사위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니 내용을 잘 모르고 있더라”고 전했다. 이 의원은 “해당 법안의 취지와 내용을 설득하고 난 뒤에야 (법사위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법안이 법사위에서 무산되면 각종 로비 의혹도 뒤따른다. 부처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법안을 막기 위해 부처 관계자들이 소관 상임위가 아닌 법사위 앞에서 진을 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 의원은 “법안 처리를 반대하는 단체들도 상임위원회보다 법사위 위원들 설득에 더 공을 들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라면서 “법사위는 한 명만 이의를 제기해도 우선 법안 처리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회가 불량 법안 공장 될 수 없어, 법사위 더 강화해야”

법사위 내에서도 동료 의원들의 ‘월권’ 아우성에 자성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론은 엉뚱하게도 법사위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기도 한다.

2월 국회에서 정무위원회에서 넘어온 이른바 ‘김영란법’을 다수 손봐야 한다고 주장해 ‘월권’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단원제인 우리 국회에서 법사위는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여론몰이로 법안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표심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입법 지상주의, 법률 만능주의 ‘법안 통과만 돼라’라는 생각으로 법을 만들면 어떡하나. 문제가 있는 법안을 만드는 불량 공장이 돼선 안 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체계·자구 심사에서 체계는 헌법 체계를 의미하기도 한다”면서 “유병언법, 김영란법 모두 법률 만능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이런 법안을 걸러내는 것은 법사위가 아니라 누구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소속 한 법사위원은 “해당 상임위에서 반대했던 의원이 법사위원들에게 부탁하기도 한다”고 전하면서 “상임위 내에서 좀 더 숙성이 필요한 법안이나 부처 간 조율 등 생각지 못한 문제가 법사위에서 발견되면 바로잡게 돼서 더 좋은 것 아니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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