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0일 금요일

노숙인 차림의 여인이 소개한 집, 이럴 줄이야

괴물의 심장을 가지게 된 슬픈 자화상

베를린에서 기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비텐베르크(LutherstadtWittenberg)를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름이 다 되어가는 계절임에도, 역의 풍경은 아직도 겨울인 듯 황량하고 스산했다. 게다가 안내센터까지 문을 닫아 영문으로 된 안내서 한 장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고 도움을 청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았다. 한참을 지나 버스 시간에 맞춰 나온 아주머니 한 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기차 밖의 풍경  여행 당시 기차 밖의 풍경.
ⓒ 배수경

"저, 실례지만 루터가 반박문을 붙인 교회를 찾아가려고 하는데요, 어디 방향으로 걸어가면 되나요?" 라고 묻자, 그녀는 앞니가 심하게 벌어진 잇속을 환하게 드러내며 "여기서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멀어요. 여기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들어가야 해. 어디서 왔어요? 그 교회보려고? 이 지역은 말이에요..."라며 이야기를 길게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을에 가면 동독시절의 일상 생활을 전시해 놓은 전시관이 있어요. 집을 개조해서 만든 거라 찾기 쉽지 않을 거야. 내 생각에는 그곳이 차라리 그 교회보다는 더 볼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 광장에서 유스호스텔 가는 방향으로 쭉 직진하면... "

쿰쿰한 냄새, 정돈되지 않은 머리... 노숙자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허름한 차림의 50대 여인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영어의 유창함을 넘어 다방면에 걸쳐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 듯했다. 동독시절 이야기와 정말 봐야 할 것들을 놓치고 돌아가는 여행객들을 비판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학은 가지 않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영어는 평소에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대답해주었다. 

▲ Lutherstadt -Wittenberg 광장의 모습  2011 년. 여행당시 마을 광장.
ⓒ 배수경

만약 이 여인의 외모만을 보고 이야기를 건넬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가? 여행 책자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 그녀가 너무나 고마웠지만, 그저 길이나 물어야겠다고 다가갔던 이에게서 마주하게 된 내 안의 편견 앞에서 다시 한 번 짧은 반성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Lutherstadt -Wittenberg 마을의 거리  2011 년 여행당시 마을의 모습
ⓒ 배수경

"내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소설에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그토록 예민한 사람이, 학대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던 사람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거의 미친듯이 설파하던 사람이, 잎새 하나와 풀잎 하나에 환희에 찬 송가를 바치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수천년간 쫓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옹호도 변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레오니드 치프킨의  소설 '바덴 바덴에서의 여름'. 중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반(反) 유대주의에 대한 레오니드 치프킨의 비판처럼, 나 또한 살아오면서 대의에 대한 비판이나 정의에 대한 옹호에 눈돌리지 않는 척 해왔다. 하지만 정작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는 일상의 편견들에 대해서는 그 만큼 날선 비판의 잣대로 진지하게 묻거나 되돌아보지 않아 왔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스스로는 망각한 채, 생활 구석 구석에서 나 아닌 타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해왔다. 소소하게 때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잘못들로. 

▲ 거리의 한 상점외부의 풍경 2011년. Lutherstadt Wittenberg.
ⓒ 배수경

오후가 되어도 구름은 하늘에서 쉽사리 물러가지 않았다. 작은 광장 한 쪽의 정류장에 내리자 동독시절의 콘크리트 벽들에 남아 있는 낙서, 마을 여기 저기의 폐허들을 둘러싼 철조망들, 그러나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은 보수 공사, 광장과 거리에서 띄엄띄엄 마주치는 소수의 사람들로 여행객의 마음도 다시금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알려준 집, 눈 앞에 나타나다

▲ Lutherstadt -Wuttenberg 에 있는 동독시절을 보여주는 박물관 동독시절을 전시한 방의 한 벽에는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 배수경

다행히 얼마 걷지 않아서 그녀가 알려준 역사의 집 (Haus Der Geshichte)이 2층 건물로 눈 앞에 드러났다.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은 영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안내원이라며 마른 체형의 할아버지를 소개해주었다. 

그를 따라 시대순으로 정리된 각 방들에 들어섰다. 많은 사진들과 모형들이 이념 투쟁이 휩쓸고 지나갔던 당시의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평등과 정의를 주장했으나, 저쪽 어딘가에 서 있는 사람들 역시 소중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던 우리 안의 괴물들이 만들어낸 처참했던 시간의 기억. 그리하여 희생시켜야 했던 너와 나의 무지로 인한 피의 역사들을. 

▲ 역사의 집 (Haus Der Geshichte )의 한 전시물  전장의 틈에서 평온한 잠을 이루는 한 고양이 인형.
ⓒ 배수경

하지만 역사의 '나'들은 여전히 할 말이 있었고 때로는 너무나 많았다. 우리의 유일 사상, 혹은 유일신, 모든 올바른 믿음을 향한 길에 방해가 되어 적으로 규정되는 너/ 당신들은 반드시 억압받거나 제거되어야 했다. 그렇게 '너'가 순수와 정의를 향한 제물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인 '나'는 백만 개도 넘게 읊어낼 수 있었다. 

▲ 어린 소년 군인의 모습  이념 전쟁의 시기,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의 사진들.
ⓒ 배수경

하지만 그 길위에서 파괴되고 희생당했던 이들은 결국 '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결국 괴물의 심장을 가져야 했던 슬픈 자화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는 진실을.  

▲ Lutherstadt -Wuttenberg 의 Castle Church . 루터가 반박문을 붙혔던 교회의 문; 원래의 문은 소실되고 다시 재건되었다.
ⓒ 배수경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랜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 본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  -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 중에서 

면죄부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했던 가톨릭 교회의 부정을 고발하면서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였던 루터는 유대인을 비난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의 이 주장은 훗날 히틀러가 유대인을 억압하고 학살할 당시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 인간군상 여행 중 어느 한 풍경
ⓒ 배수경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갈구하는 진리란 무엇일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실천하지 않는 믿음, 모든것을 균질화 시키겠다는 욕망, 적으로 규정된 모든 이들을 몰살시켜버리겠다는 의지, 그리고 나만이 살아 남아야 한다는 투쟁이 하나가 된 얼굴이 지니는 심장은 결국 단 한발자국도 타인을 향하고 있지 않다.   

모든 좌파와 우파에서, 인류의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에서, 나는 찰리입니다(je suis charlie) 라는 구호에서,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서, 일상에서, 소소한 약속과 만남들에서, 우리 안의 그 '나'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부끄러워진다. 

들에 핀 들 꽃 한 송이에도 온 우주가 담겨있음을 기억했다면, 나는 그 어떤 지식과 믿음을 지닌 것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아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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