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형제섬 앞바다는 노을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파도에 의해 형성된 고랑이 인상적인 해변은 산책하기에 좋다.
ㆍ남도 끝자락 ‘지붕 없는 미술관’
“혹시 이쪽이 고향인 유명 인사가….” “김일요.” “박치기왕 김일?” 마을이 배출한 인물을 물으면 대개 정치인, 장관 등 높은 관직에 올랐거나 권력 중심권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댄다. 한데 문화유산해설사 이은주씨(52)는 레슬러 김일 선수 얘기를 대뜸 꺼냈다. “김일 선수 생가에 가면 진돗개 동상이 있어요. 김 선수가 어렸을 때 일본 사람들이 개가죽을 얻기 위해 진돗개를 잡아갔대요. 탈출한 진돗개가 또다시 잡혀가자 김 선수가 일본으로 밀항해 레슬링을 배웠다네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조정훈 부군수는 “(권투선수) 유제두·백인철도 여기 출신”이라고 했다. 돈으로 성공한 사람, 권력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몸 하나로 세상을 일군 사람들을 기억하는 땅? 게다가 이들 모두 한 세대 전쯤의 ‘전설’들인데…. 그때 “이 동네 뭔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바로 전남 고흥이다. 고흥이 스포츠맨들만 배출한 곳은 아니다. 고흥 출신 정치인·문화인이 왜 없으랴. 화가 천경자도 고흥 출신이다. 그런데도 고흥에 대해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아닌, 타지 사람들에게 고흥에 대해 물으면 대개 3가지 답이 돌아온다. ①거기가 어디야? 심지어 경남 고성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②소록도 있는 데? 소록도에 대해 듣긴 들었는데 고흥에 소록도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③우주발사기지. 나로호 위성을 발사하면서 고흥이 그나마 많이 알려졌다. 고흥군은 길 이름도 바꿨다. 우주로도 있고, 우주항공로도 있다. 심지어 우주장례식장이란 간판도 보였다.
부군수에게 물었다. 특산물은? “매생이도 전국에서 여기가 가장 많이 나와요.” “완도김이 유명한데 여기서 생산되는 것을 많이 가져가요. 진도 미역도 우리 미역 가져가고….” 얘기를 종합해보니 고흥은 먹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데 한마디로 안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맞다. 심지어 고흥군 홍보대행사 사장도 “처음 와봤다. 이렇게 바다가 아름다운 곳은 처음 봤다”고 했다.
고흥사람들만 하는 얘기는 아니다. 나로도 형제섬 농원의 우창현 사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우 사장은 울산 출신의 경상도 사내다. 지금은 전라도 고흥에서 산다. 여행하는 게 취미라는 우 사장은 “4년 전에 이 땅을 처음 보고 반했다”고 했다. 그는 형제섬을 아예 사버렸다.
“어렵게 땅을 샀어요. 2년6개월 전부터는 농원을 만들고 개발하고 있습니다. 여기 노을이 환상적입니다.”
김일 선수 생가 앞 진돗개상. | 고흥군 제공
울산 바다도 아름답지 않나 물었더니 “거기는 좀 남성적이고 여기는 여성적이다. 뭐랄까. 여백이 좀 있다”고 했다. 사유지라면 관광객들은 형제섬을 구경할 수 없나?
“이 아름다운 곳을 어떻게 혼자만 봅니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봐야죠. 우리 농원에 숙박 안 해도 누구나 와서 볼 수 있습니다. 커피라도 한잔 하고 가세요.”
형제섬은 꽃지 해수욕장의 할매섬을 닮았다. 크기는 좀 작다. 그런데 뒤로 섬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풍광은 더 입체적이다. 해변의 모래는 곱고 단단했다. 썰물 때 모래톱에 물무늬가 새겨졌는데, 꽤 고왔다.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도 있다. 우 사장은 “벌써 여름 예약이 들어온다”며 “한 번 와 본 사람은 누구든 좋아한다”고 했다.
형제섬뿐 아니라 풍광 좋은 곳은 많다. 우주발사기지 뒤 봉래산 나로도 편백나무·삼나무 숲도 아름답다. 산행길 중에 거치게 되는 편백나무 숲은 21㏊(6만3500평)로 크지 않다. 하지만 나무는 굵다. 일본인들이 1920년대에 조림했으니 거의 100년 가까이 됐다. 그래서 문화유산해설사들은 아름드리 편백나무를 한 번 안아보라고 권한다. 숲에는 현호색, 개별꽃 등 야생화가 많이 보였다.
고흥 나로도 편백나무 숲.
고흥 우주발사전망대는 나로우주센터와 해상 직선거리로 17㎞ 거리에 있다. 여기서 올망졸망한 다도해가 한눈에 보인다.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해변이 남열 해수욕장이다. 고흥에 딸려 있는 섬만 230개. 이중 23개가 유인도, 207개가 무인도다. 전망대 아래 몽돌 해변 앞에는 유채밭 등 꽃길을 조성해놨다.
군은 고흥을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자랑한다. 미술작품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실제로 해안 드라이브를 하면 차 세우고 싶은 데가 많다. 자부심이 있을 만하다.
그런데 왜 고흥이 안 알려져 있을까. 멀었다. KTX 개통으로 기차 시간이 조금 단축돼 순천까지 2시간30분, 순천에서 고흥까지 다시 1시간 걸린다. 단지 멀어서? 비슷한 거리의 통영이나 거제도 고흥만큼 멀지만 고흥보다 더 많이 알려졌다. 한때 군세가 대단해서 고흥군은 열심히 마케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지 모른다. 조 부군수는 1960년대에 고흥군 인구는 23만명이었는데, 지난해엔 6만8700명이라고 했다. “다른 군에서 체육시설이 부족해서 체전을 못할 때 저흰 체전을 치렀어요.” 이를테면 먹고살 만해서 굳이 여행지로서의 고흥을 자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한데 세상은 바뀌었다. 요즘 여행지로 뜨면 하다못해 특산품이라도 잘 팔린다. 곳곳에 걷기 길 만든다고 난리다.
재밌는 것은 이런 고장일수록 주민들이 끈끈하게 뭉친다는 것이다. 조직력 강한 모임을 얘기할 때 흔히 해병대 전우회, 호남향우회, 고려대 동문회를 든다.
고흥 우주과학관
“호남향우회에서도 가장 끈끈하게 단결력이 좋은 사람들이 고흥 출신들입니다.” 무슨 설문조사를 한 것도 아니어서 부군수가 대는 이유가 과학적이진 않지만 일단 들어보자. 과거에 고흥 출신들이 중·고교 때 타 지역으로 유학을 많이 갔고 타지에서 고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뭉쳤다는 것이다. 여수에 고흥 출신이 7만명, 순천엔 5만명, 광양엔 2만명 정도가 된단다. 경상도에도 이런 동네가 있다. 경남 남해가 향토애가 끈끈한데 남해에서도 창선도가 가장 단결심이 강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열 전라도 한 남해 못 당하고, 열 남해 한 창선 못당한다’고 말한다. 전라도 폄훼하는 말 아니냐고? 크게 의미 두지 말자. 지역 사람들이 “우리 동네 사람들 끈끈해”라고 강조하고 싶어 하는 말이니까.
어쨌든 남해안의 끝자락 고흥은 여러모로 재밌는 땅이다. 좀 멀다고? 발품 팔 만하다!
▲ “쫌뱅이 한 마리 꿔쳐 먹을랍니까”
■ 쫌뱅이 매운탕
굵직한 생선 토막이 들어간 매운탕.
주소는 봉래면인데, 사람들은 축항이라고 부르는 동네에 갔다. 일제 때 해산물을 많이 모아 일본으로 보낸 포구가 있던 곳이란다. 이날 점심은 삼치회와 매운탕. 여수나 거문도에서도 삼치회를 판다. ‘삼치는 싱싱해야 회로 먹을 수 있는데 여기 아니면 못 먹는다’는 일종의 자부심이다. 겨울이 제철이고 지금이 끝물이다. 횟집 벽에 계절별 나오는 해산물을 적은 ‘녹색의 땅 전남, 먹을거리 4계’란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다. 1월 매생이 참고막, 2월 미역, 3월 바지락·주꾸미·다시마, 4월 백합·서대, 5월 꽃게·농어…. “누가 자연산 못 먹어서 안 먹나. 비싸서 그렇지” 속으로 이렇게 되뇌고 있을 때 문화유산해설사가 “나로도는 메뉴판에 자연산, 양식 안 쓰여 있어도 회는 다 자연산”이라며 “양식을 팔다가 걸리면 후다(입찰)를 못한다”고 했다. 실은 삼치회보다 매운탕이 더 좋았다. 생선뼈와 머리만 달랑 들어간 서울과 달리 생선 토막이 가득했다. “이게 쫌뱅이(열기)예요. 쫌뱅이를 잡아오면 고양이가 주인에게 ‘탕으로 드실랍니까. 꿔쳐(구워) 먹을랍니까’ 묻는다는 소리가 있어요. 구워 먹으면 뼈째 먹을 수 있어요.” 엄지를 치켜올릴 만했다. 삼치회 4만~5만원. 매운탕 3만5000원, 4만원. 다도해 회관(061-834-5111)
고흥 읍내에는 아침부터 북적거리는 식당이 있었다. 백반을 시켰는데 바지락이 듬뿍 담긴 국에 밑반찬으로 서대구이, 꽃게 무침, 부추, 떡갈비, 김치, 콩나물, 두릅, 감자조림, 김, 파래가 나왔다. 바지락국을 떴는데 공깃돌만 한 돌덩이가 하나 따라 올라왔다. 화가 나지 않고 웃음이 터졌다.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다 보면 고만한 크기의 돌덩어리가 들어갈 때도 있다. 국에 바지락 양이 적었다면 화를 냈겠지만 국그릇에 바지락이 빼곡할 정도로 담아놓았으니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돌이 든 바지락국을 다 비우고 한 그릇 더했다. 식당 명함을 달랬더니 없단다. 영수증에 전화번호가 있다며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볼펜으로 표시를 해줬다. 대흥식당(061-834-4477) 이외에 군청이 추천한 집은 참장어집 아리랑산장어숯불구이(061-842-7797), 진미횟집(061-842-3111), 붕장어집은 감미횟집(061-833-4317)
▲ 아하! 나로호… 24일부터 우주항공축제 열린다
■ 우주항공축제
한정식을 연상케 하는 삼치회 상차림.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박지성 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모형로켓 발사체험, 에어로켓 만들기 체험, 미니로봇 체험 등 행사가 많다. 나로우주과학관(061-830-8700)도 볼만하다. 우주과학관 홈페이지에 사전예약하면 축제 기간에 발사기지를 방문할 수 있다. 단 방문 2일 전까지 예약 필수. 월요일 휴무. 어른 3000원, 어린이 1500원. 축제 문의(061-830-5305)
<기사 출처 : 경향신문>
■ 쫌뱅이 매운탕
굵직한 생선 토막이 들어간 매운탕.
주소는 봉래면인데, 사람들은 축항이라고 부르는 동네에 갔다. 일제 때 해산물을 많이 모아 일본으로 보낸 포구가 있던 곳이란다. 이날 점심은 삼치회와 매운탕. 여수나 거문도에서도 삼치회를 판다. ‘삼치는 싱싱해야 회로 먹을 수 있는데 여기 아니면 못 먹는다’는 일종의 자부심이다. 겨울이 제철이고 지금이 끝물이다. 횟집 벽에 계절별 나오는 해산물을 적은 ‘녹색의 땅 전남, 먹을거리 4계’란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다. 1월 매생이 참고막, 2월 미역, 3월 바지락·주꾸미·다시마, 4월 백합·서대, 5월 꽃게·농어…. “누가 자연산 못 먹어서 안 먹나. 비싸서 그렇지” 속으로 이렇게 되뇌고 있을 때 문화유산해설사가 “나로도는 메뉴판에 자연산, 양식 안 쓰여 있어도 회는 다 자연산”이라며 “양식을 팔다가 걸리면 후다(입찰)를 못한다”고 했다. 실은 삼치회보다 매운탕이 더 좋았다. 생선뼈와 머리만 달랑 들어간 서울과 달리 생선 토막이 가득했다. “이게 쫌뱅이(열기)예요. 쫌뱅이를 잡아오면 고양이가 주인에게 ‘탕으로 드실랍니까. 꿔쳐(구워) 먹을랍니까’ 묻는다는 소리가 있어요. 구워 먹으면 뼈째 먹을 수 있어요.” 엄지를 치켜올릴 만했다. 삼치회 4만~5만원. 매운탕 3만5000원, 4만원. 다도해 회관(061-834-5111)
고흥 읍내에는 아침부터 북적거리는 식당이 있었다. 백반을 시켰는데 바지락이 듬뿍 담긴 국에 밑반찬으로 서대구이, 꽃게 무침, 부추, 떡갈비, 김치, 콩나물, 두릅, 감자조림, 김, 파래가 나왔다. 바지락국을 떴는데 공깃돌만 한 돌덩이가 하나 따라 올라왔다. 화가 나지 않고 웃음이 터졌다.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다 보면 고만한 크기의 돌덩어리가 들어갈 때도 있다. 국에 바지락 양이 적었다면 화를 냈겠지만 국그릇에 바지락이 빼곡할 정도로 담아놓았으니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돌이 든 바지락국을 다 비우고 한 그릇 더했다. 식당 명함을 달랬더니 없단다. 영수증에 전화번호가 있다며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볼펜으로 표시를 해줬다. 대흥식당(061-834-4477) 이외에 군청이 추천한 집은 참장어집 아리랑산장어숯불구이(061-842-7797), 진미횟집(061-842-3111), 붕장어집은 감미횟집(061-833-4317)
▲ 아하! 나로호… 24일부터 우주항공축제 열린다
■ 우주항공축제
한정식을 연상케 하는 삼치회 상차림.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박지성 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모형로켓 발사체험, 에어로켓 만들기 체험, 미니로봇 체험 등 행사가 많다. 나로우주과학관(061-830-8700)도 볼만하다. 우주과학관 홈페이지에 사전예약하면 축제 기간에 발사기지를 방문할 수 있다. 단 방문 2일 전까지 예약 필수. 월요일 휴무. 어른 3000원, 어린이 1500원. 축제 문의(061-830-5305)
<기사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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