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들, 國語 맞춤법·띄어쓰기 스터디 모임 붐
기업 "단어·표기 틀리면 '기본' 안돼 있다는 느낌"
취업 준비생 박모(27)씨는 최근 한 대기업에 지원하면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회사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뒤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에서 국어 맞춤법이 두 군데 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것이다. 박씨는 '실패를 무릅쓰고'라는 표현을 '실패를 무릎쓰고'라고 썼고, '열심히'를 '열심이'로 쓰는 실수를 했다. 이미 제출한 터라 수정은 불가능했다. 박씨는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내내 찜찜했다"고 했다. 맞춤법 실수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800점대 후반의 토익(TOEIC) 점수, 금융 관련 자격증 3개를 보유한 박씨는 이 회사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구직 전선에 뛰어든 취업 준비생들이 '국어(國語)'와 씨름하고 있다. '900점 이상' 토익 점수와 각종 봉사활동 경력, 자격증 같은 '고(高)스펙'을 갖춘 이들이 난데없이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매달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에 교환학생과 어학연수를 다녀온 유모(25)씨는 지난달 친구가 가입한 공무원 시험공부 모임에 들어갔다.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는 유씨가 공무원 시험 스터디에 들어간 건 국어 맞춤법 때문. 이력서 작성 시 필요한 맞춤법 실력을 기르기 위해 국어 시험을 필수적으로 치르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과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유씨는 "몇 년 전 강의시간에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하다가 맞춤법이 틀려 크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며 "취업은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인데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지 않으냐"고 했다.
오류 없는 완벽한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한 '맞춤법' 스터디 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김모(27)씨는 최근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한글 맞춤법 스터디에 들어갔다. 4명의 스터디 멤버가 각자 틀리기 쉬운 맞춤법과 혼동하기 쉬운 어휘 등을 미리 준비해와 돌려보고, 각자 쓴 자기소개서를 돌려보며 맞춤법 검사를 한다. 김씨는 "맞춤법 공포가 있었는데 같은 취업 준비생끼리 맞춤법 공부를 하니 훨씬 낫다"고 말했다.
지난달 12일 한 취업 포털사이트가 구직자 31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4%의 응답자가 '자기소개서 작성 시 국어 문법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구직 사이트에선 자기소개서 작성 시 활용하라고 '맞춤법 자동 검사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구직자가 작성한 자기소개서 초고를 해당 검사기에 붙여 넣으면 자동으로 잘못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바로잡아 주는 식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20개 이상의 기업에 지원했다는 하모(25)씨는 "국어 공부를 따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수십 장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마다 맞춤법 검사기를 이용해 수정했다"며 "검사기가 100%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가 처음 작성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헷갈리는 한글 표현을 퀴즈로 푸는 애플리케이션도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 인기다. 해당 애플리케이션은 지금까지 10만명 이상이 내려받았다.
취업준비생들이 맞춤법 공부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실제 채용 과정에서 국어 실력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기업 인사담당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9%가 '서류 전형에서의 지원자 실수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고, 가장 치명적인 실수로 '잦은 오타, 문법 오류'를 꼽았다. 대기업 H사의 인사 담당자는 "아무리 스펙이 좋은 지원자라도 서류에서 어이없는 맞춤법 실수가 보이면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호감이 반감된다"고 말했다.
신현규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중·고등학교 때 입시 위주의 국어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도 외국어나 자격증 같은 취업 위주의 '스펙 쌓기'에 매달리다 보니 국어 맞춤법 훈련 등은 부족했던 탓"이라며 "글쓰기 훈련이나 독서가 부족한 이들이 우리말 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결과"라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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