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열린 해외 유학·어학연수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지어 입장하고 있다. © News1 오대일 기자
현지 정착 어려워…"학위 취득위한 유학 신중하게 결정해야"
(서울=뉴스1) 황라현 기자 = 미국의 한 명문 주립대에서 경제학부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모(29)씨는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을 한다. 국내 대기업 입사에 필요한 인·적성평가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지씨는 한국의 여느 취업준비생과 다를 바 없이 온라인 취업사이트에서 만난 대학생들과 주 2회 만나 문제집을 풀고 면접 연습을 한다.
지씨는 "유학생들은 대학 저학년 때부터 체계적으로 취업준비를 해온 한국 대학생들에 비해 오히려 취업에 불리하다는 생각도 든다"며 "한국에서 취업을 할 생각이라면 유학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신모(25)씨는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귀국해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신씨는 교육 과정이 만족스러워서라기보다 한국에 학연을 만들어 두기 위해 한국의 대학원을 택했다.
장차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지만 한국에서 강사나 교수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인맥이 필수적이라는 주변의 조언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신씨는 "미국의 토론식 수업에 익숙해져 있다가 고등학교처럼 교수가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한국식 대학원에 온 후 재밌었던 전공 공부가 하기 싫어졌다"며 "학위가 필요하니 대학원을 계속 다니겠지만 유학 시절이 그립다"고 말했다.
대다수 우리나라 청년들처럼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은 불과 몇 년 전 입시 위주의 중·고등학교 교육과 취업 중심의 대학교육에서 벗어나겠다며 유학을 결심했던 이들이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 해방'을 찾아 유학을 떠난 이들도 입시와 취업이라는 관문 앞에서는 결국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15살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던 신씨는 어린 나이에 자발적으로 유학을 선택한 경우다.
교육열이 높은 학군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신씨는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미국에서 몇 달간 수업을 받고 난 뒤 곧장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에서 시달리던 시간에 비해 훨씬 유익하고 행복했다"고 회상했지만 "결국 한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한 유리한 조건이 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들을 혼자 미국으로 유학 보낸 박모(47)씨도 비슷한 이유로 조기유학을 결심했다.
대치동의 한 중학교에 전교 2등으로 입학해 교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는 박씨의 아들은 자신에 대한 기대가 부담감으로 다가오자 박씨에게 "학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며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박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잠깐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실험 위주의 과학 수업이 재밌었다며 눈을 반짝였다"며 "그 눈빛이 생각나서 유학을 허락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중학교 이후 박씨의 아들이 거친 교육 방식은 한국에서와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대학입학시험인 SAT 준비를 위해 입시 공부에 매달렸다.
15살 때 미국으로 유학을 온 박모(24)씨는 "한 학년이 10명 정도인 소규모 사립 중학교에 다녔을 때는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토론 수업과 집중 지도를 받을 수 있었지만 대학 입시를 위해 좋은 학군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주변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원에 다녔다"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도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신씨도 "대입을 위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SAT학원에 다녔다"며 "오전에 SAT 모의고사를 풀고 오후에 해설을 하는 완벽한 '한국식 교육'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친구들이 다 다니니까 불안한 마음에 다녔던 것 같다"며 "한국에서 피하려고 했던 주입식 교육을 미국에 와서 다시 받게 돼 모순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짜증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조기 유학생들의 '스펙'을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관리형 유학'을 전문으로 하는 한 유학원은 대학 지원서에 필요한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서울 강남의 한 유학원 관계자는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외교관이나 미국 국무성 직원 등 주요인사를 초청해서 '문화의 밤' 같은 행사를 열면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요즘 '문화의 밤' 행사에서 유행하는 순서가 궁중복식 디자이너의 패션쇼인데 전문 모델을 쓰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종종 유학생들을 모델로 세운다"고 말했다.
이어 "대사관이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면 특히 외교관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유용한 일화가 된다"고 덧붙였다.
대학 입학에 성공했다고 해서 유학생들이 '한국식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취업을 결정한 유학생들은 이번에는 미국식 교육이 한국 취업에 실질적으로 유용하지 않다는 점에서 절망감을 겪는다.
미국 4년제 대학를 졸업한 후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했던 이모(27)씨는 "유학생이 국내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보다 유리한 건 영어뿐인데 그마저도 요즘에는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큰 변별력으로 작용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다시 한국에 돌아와 취업에 매달리는 이유는 애초 유학의 목적이 한국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였거나 현지 취업과 정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강남구 대치동에서 유학원을 운영해온 강모 원장은 "학위 취득을 위한 유학의 경우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원장은 "6개월~1년짜리 단기 어학연수가 아닌 몇 년씩 장기간을 투자하는 학부 유학의 경우 현실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며 "이제 영어만으로 사회에서 대우를 받는 시기는 끝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미국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회사에서 덮어놓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기업 인사팀에서 미국 대학 순위를 꿰고 있다"며 "미국대학 랭킹 상위 50위 이상은 돼야 현실적으로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바라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현실은 취업을 한국에서 하든 미국에서 하든 이공계 출신 학생들이 인문·상경계 전공자보다 훨씬 취업에서 유리하다"며 "전공도 고려해서 학부 유학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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