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독주회 성공리에 마친 '21세 쇼팽' 조성진 인터뷰]
내년 연주만 60회… 3배 늘어… 하루에 잠 4~5시간 '강행군'
"피아노 앞에선 피곤 사라져… 연주 여행이 제겐 휴가예요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로 제 이름 올라있는 게 신기"
파리 독주회 다음 날인 8일 오후(현지 시각) 루브르박물관 옆 카페에서 만난 조성진. /파리=김경은 기자
피아노에서 손을 내려놓자 기립 박수가 시작됐다. 7일 밤 10시 30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콘서트장 살 가보. 조성진(21)이 앙코르를 위해 무대로 걸어나오자 우레와 같은 환호가 쏟아졌다. 9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브라보!'를 외쳤다. 파리 시민 엘렌 카디외(48)씨는 "오늘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은 연주는 드물었다"고 했다.
조성진에겐 이날이 파리에서의 첫 독주회였다. 티켓은 일찌감치 동났고 겨우 남아 있던 3층 시야장애석 세 자리는 한 시간 먼저 달려온 현지 관객들이 낚아챘다. 오후 8시 30분. 조성진은 쇼팽의 '녹턴 작품 48'로 문을 열었다. 쇼팽 콩쿠르 본선 무대를 압축한 프로그램이었다. '소나타 2번'은 느슨하게 풀어주다가 한꺼번에 잡아당기는 타건(打鍵) 으로 긴장감을 살렸고, '24개의 전주곡'으로 황홀과 비감의 깊이를 더했다. 앙코르는 콩쿠르에서 '최고 연주상'을 안겨준 '폴로네즈 작품 53' '녹턴', 그리고 "쇼팽 아닌 걸 치고 싶어 도전한"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로 장식했다.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로 돌아온 그를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의 스승 미셸 베로프가 얼싸안았다.
다음 날 오후 루브르 박물관 옆 카페에서 만난 조성진은 한결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3일과 5일 아슈케나지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영국 무대에 데뷔한 데 이어 파리 독주회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낸 덕분이다. 쇼팽콩쿠르 우승 이후 하루 네댓 시간 눈 붙이는 빠듯한 일정이지만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피곤이 사라진다"며 웃었다. "기분 좋아요. 콩쿠르 참가 이유가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서인데, 지금까지 확정된 연주만 60회거든요. 1년에 스무 번 남짓이었던 예전과 비교하면 세 배 넘게 늘었어요." 그는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그걸 이겨내고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는 연주 여행이 내겐 '휴가'나 다름없다"고 했다.
지난달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승자로 이름이 불렸을 땐 멍했다. "그때까지 이름 안 불린 사람이 4명이나 더 있었거든요." 지금도 믿기지 않긴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연락해오는 걸 보면서 조금씩 실감하죠. 무엇보다 더 이상 콩쿠르에 안 나가도 된다는 게 신나요." 우승 상금 3만3000유로(약 4000만원)는 어디에 쓸 거냐고 물으니 '21세 쇼팽'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런 생각 안 해봤는데요."
"브라보" 파리의 관객들 기립박수 - 7일 오후 10시 30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콘서트장 살 가보에서 첫 독주회를 마친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 관객 900명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 /파리=김경은 기자
지난 9개월, 그는 매일 쇼팽과 살았다. 쇼팽의 묘지가 파리에 있고,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려준 초상화도 이곳에 있어 가보고 싶은 데가 많았다. 쇼팽의 흔적이 남아 있는 박물관과 유적지, 문화재는 그의 '쇼팽'을 살찌웠다. 3시간씩 다섯 번 본 루브르 박물관은 너무 커서 아직도 다 못 봤단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4시간 연습은 빼먹지 않는다. "대(大)작곡가들의 작품 중 치기 쉬운 곡은 하나도 없어요. 쇼팽을 잘 치려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도 잘 알아야 그들과 쇼팽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할 수 있죠. 그런 작품들을 쉽게 대하는 건 예의가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모국에서의 '조성진 돌풍' 소식에 청년 피아니스트는 얼굴을 붉혔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로 자기 이름이 올라 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란 타이틀은 "되도록 피하고 싶다"고 했다. "한때 '조성진다운 게 뭘까' 많이 고민했는데, 이제는 안 하려고요. 개성은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몸에서 나오는 거죠. 자연스럽게."
콩쿠르 심사위원 대부분이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을 줬는데 반해, 심사위원 필립 앙트르몽이 본선 무대에서 1점을 줬다는 걸 알게 됐을 때에도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제 음악, 아니면 제가 싫었을 수 있어요. 그분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요. 어쨌든 제가 우승한 걸요(웃음)." 조성진은 "타고난 성격이 긍정적"이라고 했다. "연주 일정이 없을 때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잘되겠지, 생각했어요. '나를 왜 안 알아봐 줄까' 싶은 마음도 물론 들었죠.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썼어요." 만사에 '쿨'해 보이는 이 청년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사소한 거긴 한데, 연주할 때 제 얼굴 표정요. 그게 맘대로 안 돼요. 연주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표정이 나와요."
앞날이 창창한 이 젊은 대가는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책임감이 커졌을 뿐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연주자로서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기사 출처 : 조선일보>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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