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0일 목요일

설계사도 이해 못할 보험약관 언제까지?

이해도 ‘우수’ 손보 1곳도 없어
전문용어·일본식 표현 많은 탓
업계 자율 이유로 손질도 미적


“대장점막내암이란 종양이 대장 점막층(mucosa)의 상피세포층(epithelium)을 넘어 기저막(basement membrane)을 뚫고 점막고유층(lamina propria)을 침윤하였으나 점막하층(muscularis mucosa)까지 침윤하지 않고 여전히 점막층에 존재하는 질병을 말하며, 대장은 맹장, 충수, 결장, 직장을 말합니다.”

의학용어사전이 아니다. 손해보험 약관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소비자는 물론 설계사들도 울고 간다는 ‘어려운 보험약관’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보험개발원이 실시한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결과’를 보면, 여행자보험과 운전자보험을 위주로 평가한 손해보험의 평균 점수는 58.9점으로 ‘미흡(60점미만)’등급에 머물렀다. 17개 손해보험사 가운데 우수등급(80점 이상)을 받은 보험사는 단 한 곳도 없었고 미흡등급을 받은 곳은 10개나 됐다.

보험개발원 쪽은 “예를 들어 LTC·CI·감액완납·삭감기간 등 어려운 용어에 대한 해설이 없거나, 사기에 의해 계약이 취소됐을 때 향후 처리에 대한 내용이 없는 등 필요한 설명이 누락된 경우까지 감점요인이 다수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2년부터 1년에 2번씩 이뤄지는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는 24개 생명보험사와 17개 손해보험사의 대표상품(지난해 신규계약 건수가 가장 많은 상품)을 선정, 평가위원과 일반인이 명확성·평이성·간결성·소비자 친숙도 항목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암호문에 가까운 보험 약관이 널리 쓰이는 이유는 뭘까?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한국 보험업이 일본에서 수입되면서 약관까지도 그대로 베껴와 일본식 한자어가 많다”며 “약관 자체가 계약서의 일종이라 법률용어가 많고, 사망과 질병 등을 다루다보니 의학용어도 많아 더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매년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 결과를 통보하지만, 보험사들의 개선 의지는 소극적이다. 보험개발원 이영우 약관업무팀장은 “어려운 용어는 해설을 달아 설명하도록 권하지만 200~300쪽으로 방대한 약관 분량이 더 늘어난다는 이유로 잘 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보험계약 내용을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애매한 표현이나 규정 탓에 분쟁까지 빈발하자 ‘쉬운 약관’을 법률로 강제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나 이마저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 5월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보험 약관 이해도 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받으면 금융위원회가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금융위와 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민병두 의원은 “금융위는 행정력 낭비와 업계 자율성 보장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보험업계 역시 약관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조처를 하는 것은 부당한 행정력 행사라며 반대해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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