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8일 화요일

패딩이 갔다, 코트가 돌아왔다

늘씬한 실루엣 살려주는 롱앤린 코트가 대세


패딩에 밀려 자취를 감췄던 코트가 귀환했다. 길고 날씬한 라인의 롱앤린 코트는 올해의 새로운 트렌드다. 에잇세컨즈 제공

패딩을 입고 있으면 패션의 사명이 오직 추위와 맞서 싸우는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다. 두툼한 깃털 외투라고 라인과 핏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따숩겠는데’ 한 마디로 결정적 평가가 끝나버리는 패딩은 자기 표현이라는 패션의 정체성을 본질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다. 패딩으로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코트가 귀환했다. 조심스레 부활의 조짐을 보이던 코트가 올 겨울도 지난해만큼이나 춥지 않을 것이라는 기상예보에 환호하듯 거리마다 만개했다. 크고 넉넉한 품의 오버사이즈 코트는 이미 지난해부터 패딩과 맞붙어 고군분투했던 트렌드. 여기에 1970년대 스타일의 드라마틱하게 길고 슬림한 롱앤린(long&lean) 코트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삼성패션연구소 박민선 연구원은 “새롭게 트렌드로 떠오른 롱앤린 코트는 슬림하면서도 긴 기장,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한 스타일로 주목 받고 있다”며 “특히 깃 없이 디테일을 절제한 미니멀 스타일에 길이는 무릎에서 미디나 맥시까지로 길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왼쪽: 허리를 강조해 여성스런 실루엣을 드러내는 구호의 리본(Re-born)코트. 구호 제공

길이가 길어졌다는 것은 우아함이 스타일링의 키워드란 뜻이다. ‘방한갑옷’ 안에 갇혀 있던 몸이 긴 코트 속에서는 움직임에 따라 너풀거리는 옷자락으로 해방을 구가한다. 롱앤린 코트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역시 착시를 통한 8등신으로의 변신. 롱코트를 입기 위해 반드시 슈퍼모델의 신장을 가질 필요는 없다. 거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과감하게 긴 기장이 오히려 늘씬해 보이는, ‘한 뼘의 기적’이 롱앤린 코트에는 있다. 속 안에 입은 옷을 다 덮어버리는 코트와 그 아래로 드러난 하이힐 발목은 패딩을 입으며 잊고 지냈던 ‘섹시한 동시에 우아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곧장 환기시킨다.

어깨선이 낮게 내려오면서 소매가 둥글게 떨어지는 박시 핏의 오버사이즈 코트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코트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아이템이다. 디테일을 절제한 미니멀 스타일과 와이드 칼라로 테일러링을 강조한 스타일 모두 강세다. 다양한 레이어링이 가능한 망토 스타일의 케이프코트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복고 열풍 속에 90년대를 강타했던 더플코트도 학생복 스타일을 벗어 던지고 되돌아왔다. 코트 안쪽에 양털을 입힌 시어링이나 퍼를 덧대는 식으로 질감을 살린 소재, 프린트가 강조된 패턴 등으로 트렌디하게 재해석된 더플코트는 캐주얼뿐 아니라 정장 차림으로도 손색없다.

남성복에서도 길이와 볼륨으로 실루엣을 살리는 롱코트가 대세다. 빨질레리 제공

남성복은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긴 길이에 암홀과 소매 폭이 넉넉한 오버사이즈 디자인에 얇고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은 높인 하이브리드 코트가 대세다. 갤럭시 이현정 디자인실장에 따르면, “클래식 무드를 기반으로 품위를 잃지 않는 현대적 디자인의 코트에 아웃도어의 전유물이었던 기능성을 결합한 옷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도시적 감성의 정장에 방풍, 발열, 발수, 투습 등 아웃도어의 기능성이 도입되면서 격식을 차리면서도 실용성을 추구하는 ‘유틸리티 룩’이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울 소재의 고급스런 코트지만 내부는 고기능성을 갖춰 품위와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식이다.



캐시미어 소재로 패딩의 캐주얼한 이미지를 품격 있게 바꾼 무레르의 '단테 TI' 패딩. 무레르 제공

코트의 르네상스는 패딩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왔다. 코트의 외피를 쓴 패딩의 출현이다. 섬유의 보석이라 불리는 캐시미어나 울 같은 고급스런 원단으로 만든 패딩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비즈니스 룩에 매치하기 좋은 코트 디자인의 패딩을 선보이는 이탈리아 프리미엄 구스다운 브랜드 무레르는 지난해 국내 첫 입점 후 ‘완판 행진’을 이어가며 백화점 내 팝업매장을 확대해가고 있다. 200만원대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코트 스타일의 디자인이 우아하게 보디핏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패딩과 코트의 변증법이라 할 만하다.
<기사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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