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1일 금요일

게시판 뒤덮은 '김일성 만세'…고려대는 '표현의 자유' 논쟁 중

‘김일성 만세/ 한국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김수영의 시 ‘김일성 만세’ 중 일부)

11일 오후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경대학 후문. ‘김일성 만세’를 제목으로 한 대자보 10여개가 이곳 게시판을 가득 뒤덮었다. 전날 경찰이 같은 제목의 대자보를 수거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대자보 게재에 나서면서 벌어진 진풍경이다.

11일 오후 고려대 서울캠퍼스 정대후문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서울 성북경찰서, 학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전날 밤 이 학교 소속 한 대학원생이 이 게시판에 붙은 ‘김일성 만세’ 대자보를 직접 수거해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대학원생은 “여기가 김일성종합대학이냐, 고대에 이게 붙어 있는 게 말이 되냐”며 화를 내며 해당 게시물을 뜯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직접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 학교 사회학과 소속 권순민(20)씨는 "김수영 시의 맥락은 검열에 저항한 것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면서 “김일성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을 비판하고 자유를 확산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뜻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해당 게시판에는 ‘김일성 만세’ 대신에 ‘전두환 만세’나 ‘천황폐하만세’ 등을 삽입해 반대의 뜻을 전하는 대자보도 등장했다. 이 대자보는 “독일, 러시아에선 ‘하켄크로이츠’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며 “상식적인 선을 지키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대학을 다니는 학생 박상용(20)씨는 “개개인이 대자보를 붙이는 취지는 모두 다를 것이지만, 이런 논의가 다른 대학으로도 확산되면 생산적인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학 사학과 소속 이건희(20)씨도 “대자보를 일방적으로 뜯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대자보가 담은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건전하게 자신의 반대 의견을 같은 형식으로 게재해야 공론 활성화에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김일성 만세’ 관련 신고를 받은 성북경찰서 관계자는 “신고자로부터 해당 대자보를 전달받아 관련 사실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앞 서 ‘김일성 만세’ 대자보는 최근 경희대 서울캠퍼스에 처음 붙었다가 수거돼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이 대자보는 지난달 ‘독재자의 딸’이라는 문구가 담겼다는 이유로 마포구의 한 가구공방에 붙은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 홍보 포스터를 경찰이 직접 수거한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게재됐다.
<기사 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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