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1일 월요일

세관은 당신이 산 일을 알고 있다



외국 여행 다녀올 때 짐을 찾고 나서 세관을 통과할 때 괜히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학창 시절 무서운 학생부 선생님이 두발 검사를 위해 서 있는 교문 앞을 지날 때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괜히 눈치가 보입니다.  혹시 가방 검사를 당하는 건 아닌지, 세관 신고서에 신고할 내용이 없다고 적었는데 내가 산 물건이 걸리는 건 아닌지 죄인이 된 듯 찝찝한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여행객을 주눅들게 하고 공항 입국장에서 세관과 여행객사이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면세 한도 때문입니다. 현재 면세한도는 미국 돈 400달러입니다. 현재 환율로는 43만 원쯤 됩니다. 18년째 그대로인 면세 한도를 우리 경제 규모에 맞게 상향 조정해야한다는 의견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지난 20일 규제개혁 회의에서도 공식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추가 검토 이후 올해 안에 면세 한도 상향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면세범위 확대 효과와 해외여행자 면세품 구매 실태, 다른 나라의 국민소득 대비 면세 한도에 대한 사례를 종합 검토해서 면세 한도 조정 여부를 연내에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사실 면세 한도를 높이자는 의견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합니다. 특히 신혼 부부나 장기 체류자들은 공항 면세점이나 외국에서 선물 몇 개 사면 40만원은 금방 넘어간다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또 면세점에서 산 물건 외에 현지에서 구입했거나 경유 공항 면세점에서 산 경우엔 세관에 적발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즉 대부분 여행객이 면세 한도를 넘어서 물건을 들여오는데 운이 없으면 세관에 걸린다는 항변입니다. 또 현재 400달러 한도에서 담배와 술 향수는 제외됩니다. 담배는 1보루, 향수는 20ml, 술은 400달러 한도 내에서 1병입니다. 그러니 담배와 술, 향수까지 최대한 구입하면 현재 면세한도는 사실상 800달러에서 1000달러까지 늘어나는 셈입니다. 때문에 담배나 술을 사지 않는 사람은 차별을 받는다는 불만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술, 담배, 향수 구분 없이 800에서 1000달러로 면세 한도를 늘리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외국 여행 나갈 때 가능하면 국내 면세점 이용하라고 만든 제도인데 면세 한도 때문에 오히려 해외 소비를 부추겨 내수가 위축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면세 한도를 늘리는 데 있어서 기재부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면세 한도를 높이면 그만큼 세금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또 면세점 이용객이 국민의 15% 정도인데 나머지 85%의 박탈감도 감안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번 규제개혁회의에서 건의된 52개 과제 가운데 면세 한도 조정 건은 추가 검토 사안으로 분류됐습니다.

면세 한도 외에 올해부터 여행객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외국의 면세점이나 백화점에서 분기당 5천 달러, 우리 돈 530만원 이상 카드로 결제할 경우 관세청에 명단이 통보되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외국에서 연간 1만 달러 이상 신용카드를 사용한 여행자들의 명단과 사용내역을 여신금융협회가 관세청에 통보했는데, 올해부터는 분기별 사용액 5천 달러 이상 사용자에 대한 정보를 통보하도록 관세청법이 바뀌었습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외국에서 신용카드로 물품을 구매하고, 현지 화폐로 인출한 금액이 5천 달러가 넘는 사람은 결제 내역이 다음 달 관세청에 통보됩니다. 관세청은 5천 달러가 넘는다고 해서 무조건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고액 사치품을 샀는지, 구매한 물건을 국내로 반입했는지 정밀하게 조사해 관세 누락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고액 결제자 리스트를 만들어 공항 세관에서 휴대품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내 면세점 대신 외국에서 물건을 사거나 현지 화폐를 인출해 구입한 뒤 세관에 축소 신고하는 꼼수를 차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면세 한도에 분기별 신용카드 해외 결제액까지 챙겨야하니 여행객들 입장에서 오랜만에 해외 나들이에서 마음 놓고 쇼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관에 신고안하고 몰래 들여오다가 적발되면 원래 세금보다 더 큰 금액을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성실하게 관세를 납부하고 당당히 물건을 들여오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고가의 물건을 산 경우 혹시 운만 좋으면 세관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겠지? 내가 샀는지 어떻게 알겠어? 라는 섣부른 희망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고가의 물건을 산 사람의 경우 입국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곳곳에 배치된 공항 세관 직원들의 집중 마크를 받게 됩니다. 화장실에 숨어있다 나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물건을 내보내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세관 직원들의 일대일마크 능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관 직원들은 이미 조용히 추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공항에서 바로 신용카드로 관세 납부가 가능합니다. 여행 성수기에 접어드는 요즘, 기분 좋게 외국 다녀와서 찝찝한 마음에 세관 통과하지 마시고 납세의 의무를 당당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기사 출처 : S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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