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26일 수요일

행정고시 보는 의대생…알고보니 '장학금 헌터'



대학 '고시 장학금' 허점 노린 위장 고시생들

1차 합격 땐 100만~1000만

돈만 받고 2차는 치르지 않아…2013년 결시율 16% 543명 달해

대학들 학교 알리기에만 급급…비효율적 장학제도 개선 필요


[ 박재민 기자 ] 서울 A대학 한의예과에 재학 중인 김모씨(24)는 지난해 4월 행정고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김씨는 작년 7월 실시된 2차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애초부터 1차에 합격하면 받을 수 있는 ‘고시 장학금’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두 학기에 600만원을 장학금으로 받았고, 지금은 한의사 자격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고시 장학금을 노린 ‘위장 고시생’이 대학 장학금 분배를 왜곡하고 있다. 대학가에선 이들을 ‘장학금 헌터’로 부른다. 고시 장학금은 행시, 사법시험, 공인회계사시험 1차 관문을 통과한 학생들에게 주는 특수장학금의 일종이다. 

고시 합격자 수를 늘려 영향력을 키우려는 대학과 장학금을 겨냥한 일부 학생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맞물려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준비 상대적으로 쉬운 행시에 몰려


장학금 헌터들은 4~6개 과목을 상당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하는 사시와 회계사시험보다 공직적격성테스트(PSAT)만 준비하면 치를 수 있는 행시 1차에 주로 몰리고 있다. 

2005년까지 행시 1차 과목은 헌법 한국사 PSAT 등이었다. 그러다 2006년 한국사, 2007년 헌법이 시험과목에서 차례로 제외됐고, 이후엔 PSAT 성적만으로 합격자를 선발하고 있다. PSAT는 언어논리·자료해석·상황판단 등 3개 평가 영역으로 이뤄져 암기보다는 이해력과 분석력에 따라 당락이 좌우된다.

고시생인 김세용 씨(25)는 “PSAT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험”이라며 “한의대생과 의대생이 단기간 준비해 합격하는 걸 많이 봤다”고 전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행정·기술직 5급 공무원 공채시험의 1차 합격자는 3265명이었다. 하지만 이 중 2차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인원은 543명으로, 결시율은 16.6%에 달했다. 주로 이공대생이 치르는 기술직의 결시율은 27.3%까지 치솟았다. 이 중엔 ‘장학금 헌터’가 상당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2년부터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 이상을 따야 1차 시험자격을 주고 있지만, 장학금 헌터들의 도전은 여전하다는 게 고시생들의 설명이다. 

○대학들, “합격자 수 늘려라” 지원 경쟁

대학들은 고시 합격자 수를 늘리려고 앞다퉈 장학금 지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적게는 현금 100만원에서 많게는 두 학기 등록금, 약 1300만원을 지원하기도 한다. 

중앙대는 1차 합격자에게 1년 수업료 전액(876만~1294만원)을 면제해 준다. 성균관대는 한 학기 등록금(평균 554만원)의 50%를 깎아주고, 한국외국어대는 잔여 학기의 등록금 40%를 감면해 준다. 연세대는 1회에 한해 100만원을 지급한다. 고시 공부에 뜻이 없는 학생들이 등록금이나 생활비 충당을 위해 1차 시험에 나서는 이유다. 

서울 B대학에 다니는 강모씨(24)는 “학교에서 주는 금전 혜택이 워낙 커 학생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대학 장학금 지급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용재 건국대 경영대학장은 “성적과 고시처럼 성취 결과만을 기준으로 장학금을 주는 것은 후진적”이라며 “고시 합격자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을 없애거나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사 출처 : 한경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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