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6일 일요일

2000년 넘은 온천, 이름도 가지가지

독일, 오스트리아-2 아헨 시청과 온천


▲  아헨성당에서 바라 본 시청: 오른쪽이 그라누스탑
ⓒ 이상기

아헨 시청은 성당의 북쪽 카취(Katsch) 광장 위쪽에 있다. 그리고 시청 앞쪽으로는 넓은 시장 광장이 있다. 우리는 시장 광장으로 가 시청의 정면을 살펴본다. 시청은 칼 대제 시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건물에는 두 개의 탑이 있다. 왼쪽에 보이는 탑이 그라누스(Granus)탑으로 칼 대제 시대의 것이다. 그리고 1330-1349년 무너진 궁전 건물 위에 시청이 새로 지어졌다. 오른쪽에 보이는 마르크트(Markt)탑도 그 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부터 시청사는 행정 관청으로 기능하면서 대관식 등 축제와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1656년 대화재 후 일부가 바로크 양식으로 복원되었고, 1727-1732년 건축가 쿠벤(Johann Joseph Couven)에 의해 상당 부분이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건물 입구의 계단과 전면부에서 바로크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  아헨 시청
ⓒ 이상기

1883년 다시 화재가 나 내부가 전소되었고, 1891년부터 1895년까지 리모델링이 이뤄졌다. 1900년대 들어 다시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고, 1902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시청은 3층 건물로 탑의 모양을 제외하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건물 중앙 양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정문을 통해 현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수위가 우리를 제재한다. 오전 10시가 넘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잠깐 보고만 나온다고 해도 안 된다. 나는 자료를 통해 시청 내부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시청 내부는 크게 8개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 가장 볼 만한 곳이 대관식 홀과 그라누스탑이다. 대관식 홀은 시청에서 가장 큰 방으로 길이가 45m, 폭이 18.5m에 이른다. 이곳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과 그림이 있다고 한다.

그라누스 탑은 외부에서도 잘 보인다. 지붕을 포함해 4층 건물 위에 2층을 더 얹은 형태로 만들었다. 이 탑은 오르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 탑 이름이 그라누스라 불리게 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다. 로마 시대 아헨이라는 도시를 건설한 게르마니아 총독이 그라누스(Granus Serenus)인데, 그가 이곳에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왔기 때문이다. 그라누스탑은 1979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시청 앞 분수의 칼 대제 동상

▲  칼 대제 동상
ⓒ 이상기

시청 앞에는 분수가 하나 있다. 분수 이름이 칼 분수(Karlsbrunnen)다. 분수 상단에 칼 대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칼 대제는 오른손에 왕흘을, 왼손에 십자가 달린 지구본을 들고 있다. 수염을 멋지게 길렀으며, 머리에는 십자가 달린 관을 쓰고 있다. 갑옷을 입고 칼을 찼으며, 백성을 설득하거나 이끄는 형상이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칼 대제가 시청을 등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관의 대변자 즉 공복(公僕)으로서 백성을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동상은 복제본이다. 원본은 1969년부터 시청 대관식 홀에 전시되고 있다. 이 분수가 이곳 시장 광장에 처음 자리 잡은 것은 1334년이다. 당시는 다각형의 수조로 이뤄진 고딕식 분수였다.

▲  칼 분수
ⓒ 이상기

이것은 1620년 확장되었다. 그리고 1730년대 쿠벤에 의해 상단부 청동 수조가 만들어졌고, 칼 대제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러므로 칼 분수가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735년이다. 1792년에는 프랑스 군대가 아헨에 진주했고, 칼 동상을 전리품으로 파리로 가지고 갔다. 그러나 1804년 아헨 시장이었던 요한 빌헬름 고트프리트 폰 로메셈(Johann Wilhelm Gottfried vonLommessem)의 요청으로 되돌려 받았고, 이듬해 다시 제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칼 분수가 다시 수난을 당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다. 이 때 청동 수조와 칼 대제 청동 상이 분리돼, 숨겨 보관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3년 후인 1948년 칼 분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고, 몇 번의 수리와 교체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수리를 해야 하는 것은 청동 수조의 부식, 석조 수조의 갈라짐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수리한 것은 2008년이다.      

아헨 온천의 원탕은 어디일까?

▲  아헨 온천 원탕
ⓒ 이상기

아헨은 온천으로 유명하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왕의 온천(Bad derKonige)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헨 온천의 역사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나는 아헨 온천을 찾아본다. 로마 시대 아헨의 이름은 아쿠이 그라니(Aquae Grani)였다. 번역하면 물의 그라니다. 아헨 성당 주변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났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로마 시대에는 주둔군과 지역 주민이, 프랑크왕국 시대에는 왕과 귀족이, 중세에는 수도승이 이곳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헨 온천을 칼의 온천(Carolus Thermen)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헨 온천이 대중화된 것은 1600년대 후반 들어서다. 1682년 황제 온천(Kaiserbad)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했고, 요양 시설을 갖춘 집과 정원 등이 생겨났다. 그리고 1820년대 호텔 등 숙박 시설이 지어졌고, 1865년 경 현대적 개념의 요양 호텔이 자리 잡았다.

▲  겔트 샘
ⓒ 이상기

이곳에서 나오는 광천 온천수는 수온이 50~70℃다. 물이 석회석 층을 뚫고 나오기 때문에 유황, 불소, 염화나트륨, 중탄산염 등 광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찾아간 아헨 온천 원탕은 황제의 샘(Kaiserquelle)이라 불리는 곳이다. 성당의 동쪽 공원 한 가운데 있다. 공원 안에 지붕과 기둥 개념의 철책을 설치한 가건물이 있는데, 그것이 황제의 샘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물이 다 말랐고, 발굴 흔적만 있다. 

오히려 그 옆에 있는 겔트 샘(Geldbrunnen)을 통해 이곳에서 온천수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샘 주변에는 물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청동 조각상이 있을 뿐이다. 현재 아헨에는 10개 정도의 온천이 성업 중이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엘리제 온천(Elisenbrunnen)이다. 이 온천은 1827년부터 영업을 해왔다. 2001년 수영장과 사우나를 갖춘 현대적인 온천으로 거듭난 카롤루스 온천이 유명하다. 

독일 사람들의 여행 방식

▲  쾰른 관광의 백미 쾰른 성당
ⓒ 이상기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쾰른이다. 아헨에서 쾰른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E40번 고속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프레헨(Frechen)이 나오고 이곳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쾰른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면 된다. 시간 여유가 있어, 독일에서 나온 관광 프로그램 책자를 통해 그들의 여행 방식을 잠깐 살펴본다. 그들도 역시 시내 명소 관광, 가까운 도시로의 당일 여행, 먼 거리로의 장기여행을 하고 있었다.
시내 명소 관광은 시티 투어라는 이름으로 진행이 된다. 운송수단에 따라 걷기, 자전거, 버스, 유람선을 이용한 투어가 있다. 주제에 따라 성곽 투어, 강 투어, 역사 투어, 예술 투어가 있다. 가까운 도시로의 여행은 관광 버스를 타고 하루 동안 인근의 도시를 관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쾰른에서 아헨까지는 22유로, 브뤼셀까지는 28유로, 암스테르담까지는 33유로, 파리까지는 42유로를 내면 된다.

▲  암스테르담 중앙역과 운하 그리고 유람선
ⓒ 이상기

암스테르담 여행은 대개 오전 6시에 출발하고, 오후 4시 30분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현지에서의 관광은 자유 여행 방식이다. 이럴 경우 여행 안내와 점심은 각자 선택하고 해결해야 한다. 암스테르담을 찾는 사람들은 왕궁 등 문화 유산, 운하, 박물관, 시장 등을 방문한다고 한다.

장기 또는 장거리 여행은 3일짜리부터 11일까지 다양하다. 이것은 대부분 독일 국내 또는 유럽 여행이다. 독일 국내 여행은 남쪽의 보덴 호수로부터 북쪽의 동해까지 행선지가 다양하다. 함부르크 3~4일, 드레스덴 4일, 하르츠 산지 4일, 보덴 호수 5일 하는 식이다. 보덴 호수 5일의 경우에는 문화 유산과 자연 유산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보덴 호수의 낭만, 마이나우 섬, 라이헤나우 수도원, 콘스탄츠, 프리드리히스하펜, 메어스부르크 등을 방문한다.

▲  독일 사람들이 선호하는 프라하
ⓒ 이상기

유럽으로의 여행은 따뜻한 남쪽 나라 즉 남유럽이나, 물가가 싼 중동부 유럽이 선호된다. 프로그램이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이탈리아 여행이다. 예를 들어 토스카나 8일짜리 여행을 보면, 아침과 저녁을 포함한 일급호텔 7일 숙박, 여행안내로 이루어져 있다. 비용은 789~875유로다. 이 비용에는 점심 식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 또 1인실을 이용할 경우 180유로의 부가 요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관광 코스는 1일 가르다 호수, 2일 몬테카티니, 3일 시에나, 4일 피렌체, 5일 선택 관광 (비용 별도) 볼테라와 산 지미냐노, 6일 루까, 7일 피사, 8일 귀환이다. 그러므로 토스카나 지방의 역사 문화 도시는 다 관광하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보다는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관광하는 방식이다. 전체적으로 휴양형 보다는 문화 유산 관광형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여행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는 골프 여행은 찾아볼 수 없다. 

버스에서 멀리 쾰른 도심의 파노라마가 보인다. 버스는 이제 내리막길을 따라 가더니 시내 쪽으로 접근한다. 시내 곳곳이 공사 중이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된다. 잠시 후 우리는 쾰른 성당 앞 버스 정차장에서 내린다. 그러자 버스가 주차장을 찾아 이동한다. 

우리는 쾰른 성당을 구경하기 전, 성당이 잘 보이는 중국식당 베이징(北京)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1989년 아내와 함께 쾰른을 여행할 때 와 봤던 식당이다. 그런데 그때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쾰른 성당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  쾰른 파노라마
<기사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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