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0일 목요일

유전무죄 무전유죄, 부자와 빈자에게 벌금의 무게는 똑같을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진실? 부자와빈자의 벌금의 무게는 똑같을까
※이 기사는 돈을 '쩐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의인화해서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돈 있으면 무죄고 돈 없으면 유죄라는 유명한 말이야. 벌써 27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탈주범 지강헌이 외친 이 말은 두고두고 회자됐지. 당시만해도 한국사회 법제도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한 이야기라고 해서 이슈가 많이 됐었는데 아직도 이 말이 유효하단 생각이 들어. 만인에게 평등해야 할 법인데 현실은 달라. 장발장 아저씨처럼 배고파서 빵을 훔친 죄로 19년을 살아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반면에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절러놓고도 버젓이 법망을 빠져나오는 사회 지도층들이 많잖아. 그래서 오늘은 죄와 법, 벌금과 과태료 등의 형평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벌금 낼 돈 없어서 유치장으로 현대판 장발장들

자베르 : 그놈을 데려와 24601, 넌 이제 가석방이 되었다. 그 뜻을 알지? 

장발장 : 나 자유의 몸.

자베르 : 아냐, 가석방일 뿐이야 24601, 가석방! 

장발장 : 빵 한 덩어리에. 

자베르 : 넌 강도야. 

장발장 : 유리창을 깼지, 배고파서 죽어 가는 조카 때문에.- 

자베르 : 또 굶게 될거다. 법대로 살지 않는다면. 

장발장 : 지나간 19년 동안 나는 법의 노예였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희곡으로 각색한 대본에 나오는 대사야. 고지식해서 법치주의만을 내세우는 자베르와 억울한 상황에 처한 장발장의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지.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장발장처럼 죄질에 비해 너무 큰 형벌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야. 벌금 낼 돈이 없어서 교도소로 가서 '몸으로 때워야 하는 사람들'이지.

얼마 전 뉴스야. 기초생활수급자 A씨가 취객한테 폭행을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어. 다친 데가 많아서 입원비가 140만원이나 나왔지. 기초생활수급자 처지에 140만원이나 되는 병원비를 낼 수 없었지. 신용등급이 낮아서 은행대출도 안되고, 그렇다고 사채를 쓸 수도 없고. 그래서 A씨는 병원비를 못냈고 퇴원수속도 안밟고 병원을 나와버렸어. 화가 난 병원이 A씨에게 소송을 했지. 법원은 사기죄로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지. A씨는 이 벌금낼 돈도 없는거야. 그러자 법원은 교도소에서 형을 살라고 해. 줄줄이 달린 식구가 있는 A씨는 그러지도 못했어. 그래서 결국 장발장처럼 지명수배자가 되는거야. 과연 이런 사람들한테 '법치주의'를 내세워 벌금을 왜 못내냐고 말 할수 있을까? 죄질이 약해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도 돈이 없어서 징역형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매년 4만명 정도라니 정말 많지.

이번에는 아나운서 노현정씨와 배우 박상아씨 얘기야. 두 사람이 서류를 조작해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부정 입학시켜서 문제가 됐었지. 두 사람은 각각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어. 1500만원이 이들에게는 큰 돈이 아니었겠지. 이 이야기와 A씨의 사연이 겹치면서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했지. '부자에게는 죄값이 껌값이지만 서민에게는 목숨값'이라고.

◆'일수벌금제' 부자는 과태료 벌금을 더 내는게 합당한가

그래서 부자는 벌금을 더 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 해외에선 어떻게 할까. 2002년 핀란드에선 과속 과태료로 벌금 11만6000유로(약 1억5500만원)를 낸 사람이 있어. 대기업 부회장이었지. 과속한 죄로 1억5500만원이 심하다고? 핀란드에선 가능한 일이야. 수입에 따라 벌금이 비례해서 부과되는 '일수벌금제' 때문이지. 일수벌금제의 전제는 '부자가 빈자와 같은 벌금을 내면 벌금이 적게 느껴져서 형벌로서 효과가 없고, 그러면 교통안전이 위협받을수 있다'는 거지. 반면 우리나라는 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같은 책임에 대해 같은 벌금을 내는 '총액벌금제'지.

두 제도 중 어떤게 좋을까. 총액벌금제가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부자가 돈이 많은 이유가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거둔 성과일수도 있는데 단순히 돈이 많다고 같은 죄를 더 무겁게 다스린다면 문제가 있단 이야기지. 하지만 반대편의 주장이 최근엔 더 설득력을 얻고 있어. 같은 책임에 대해 같은 벌금을 부과한다고 해서 똑같은 부담감을 가지는 건 아니잖아. 하루세끼 먹기 힘든 노숙자에게 벌금 10만원과 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난 재벌 2세의 벌금 10만원은 하늘과 땅 차이란 말이지.

벌금형의 취지를 보자고. 벌금형이라는 게 돈으로 취할 수 있는 편리함이나 즐거움을 얼마간 빼앗아서 형벌의 기능을 대신하자는 거잖아. 그런데 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같은 잘못에 대해 같은 액수의 벌금을 묻는다면 그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거지. 부자, 중산층, 서민이 각각 느끼는 고통의 정도가 다른 만큼 벌금의 규모도 달라야 한다는 거지.

이에 대해 독특한 반대논리도 있어. 우리나라는 재산파악이 정확히 안돼 '일수벌금제'를 도입하기 시기상조라는거야. 수입에 비례해서 벌금을 매기려면 그 '수입' 자체가 정확하고 투명하게 확인이 돼야 하는데, 조세피난처니 뭐니 해서 재산을 숨기는 바람에 일수벌금제가 정착하기 어렵다는 논리지. 결국 '유리지갑'인 봉급생활자들만 벌금폭탄을 맞는거야. 아무튼 결론은 여전히 우리사회가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모순을 갖고 있다는 거야. 법의 여신 디케의 저울이 우리나라에서만 고장이 난 꼴이지.
<기사 출처 :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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