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6일 토요일

배워서 남 주냐고? 배워서 남 준다!

'배워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경구가 있지만 정작 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남을 위한 봉사를 목적으로 배움에 나선다면 대단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애써 배워 남에게 주려는 사람들인 것이다.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스스로 재능을 만들어 봉사에 나선 사람들을 만났다.

지난 22일 부산 사상구 괘법동 사상여성인력개발센터 9층에서 '교육봉사단 발대식'이 열렸다. 심리상담에 관심이 많아 힐링 코디네이터 지도자 과정을 마친 40대 주부, 평소 천연염색을 하고 싶어 관련 과정을 이수한 50대 여성, 영양사로 일하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뒤 숲체험학습 지도사로 변신에 성공한 40대 주부 등이었다. 타고난 재주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전문교육을 받고 봉사활동에 나선 의지의 여성들이었다.

사상여성인력개발센터서
22일 교육봉사단 발대식
기존의 재능 나눔은 물론
배워서라도 이웃에 나눠


이들이 외쳤다. "배워서 남 주자!"

남을 위해 내가 배운 것을 베풀자고 선언했지만, 그동안 배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4∼6개월 과정의 전문교육을 이수하는 것부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강의 요령까지, 그리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모두 시간, 돈, 관심, 노력이 크게 요구되는 일이었다. 특히 성장기의 10대 자녀를 둔 40∼50대 전업주부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능 없으면 배워서라도 봉사한다

이날 교육봉사단 발대식에 참가한 주부 한옥희(46) 씨. 그는 지난 19년 동안 전업 주부로 살았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심리상담에 대해 관심을 가졌어요. 아이들의 심리를 읽는 것이 육아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 관심이 어느 날 힐링 코디네이터 교육장으로 인도했다. 그는 과정을 이수한 뒤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이번 교육봉사단 발대식에 참가했다. "제가 배운 것을 고스란히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뿌듯합니다."

지난 6개월간의 힐링 코디네이터 지도자 과정을 마친 30대 주부 권미경 씨도 같은 경우다. "육아 때문에 바빠 수업을 제대로 듣기 힘들었어요. 도중에 포기할 생각을 여러 차례 했지요." 어렵게 배운만큼 그는 많은 이웃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일 사상구청이 마련한 1시간짜리 힐링 강좌에 나섰다. 저소득층 아이들과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 같은 것이었다. 

50대 주부인 고언남 씨는 평소 천연염색에 관심이 많았다. 지난 4월 우연히 천연염색 지도자 과정에 등록했는데, 과정을 다 마치고 보니 자신의 새로운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커튼이나 벽걸이처럼 집안의 생활용품을 제 손으로 직접 염색해 만들어 보니 집 분위기도 달라지고 삶에 활력도 느꼈어요. 그 기분을 고스란히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어요."

영양사로 일하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포기한 황정희(49) 씨는 올해 초 숲체험학습지도사에 도전했다. 160시간의 지도사 양성과정을 거쳐, 최근에는 주말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숲 체험활동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숲체험학습지도사 자격증을 딸 때에는 취업의 하나로만 여겼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수입 못지않게 보람을 더 크게 찾고 있다. 그도 이번 발대식에 참석하면서 "사회로부터 배운 새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발대식을 통해 정리수납컨설턴트 강의 봉사를 선언한 민선희(45) 씨는 "주부에게 집안 정리와 청소는 생각하기에 따라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일상적으로 하는 집안 일이라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본다는 실제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재능 어떻게 만들고, 기부 어떻게 하나

타고난 재능이 없어 사회에 기부할 재능도 없다며 사회봉사를 주저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수많은 커리큘럼이 평생교육 형태로 여성단체와 복지관 에서 제공되고 있다. 수강료도 부담스럽지 않다. 문제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하겠다는 실천 의지다.사상여성인력개발센터 양영주 관장은 "지역 여성센터에서 다양한 방면의 지도사 과정을 검색할 수 있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혹은 잘 할 수 있는 과정을 수강한 뒤 경력을 쌓아 복지관과 아동청소년기관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지도자로서 재능을 기부하려면 각 지역에 포진하고 있는 여성인력센터나 구·군청 주도의 학습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된다. 사상여성인력개발센터의 경우 힐링 코디네이터, 천연염색 지도사, 체험학습 지도사, 정리수납컨설턴트, 숲체험학습 지도사 과정을 상설화하고 있다. 교육 과정은 4~6개월.

구·군청 평생학습 과정도 동화구연 지도사, 방과후 수학 지도사, 진로상담사, 인성교육 지도사, 미술심리 치료사 등을 배출한다. 지도자 재능 기부는 지역 여성인력개발센터나 부산시자원봉사센터 등에 문의하면 된다.

한편 이날 교육봉사단 발대식에 참가한 60여 명의 재능 기부자들은 앞으로 매달 두 차례 이상 복지관, 도서관, 지역아동센터, 주민자치센터, 노인 관련 센터 등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게 된다. 
<기사 출처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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