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4일 목요일

국회의 흰 코끼리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정문에 들어서면 해태 석상 한 쌍이 눈에 들어온다.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사람들이 다툴 때 바르지 못하거나 옳지 않은 사람은 뿔로 받아 제거한다고 전해져 법을 공평무사하게 심판하는 ‘정의의 동물’로 신성시되고 있다.

요즘 국회에서 활개를 치는 동물이 또 하나 있다. 흰 코끼리다. 석가모니의 생모인 마야부인이 태몽으로 6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해서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 동남아 불교국가에서는 정의와 평화의 상징이다. 좋은 의미만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처치 곤란한 물건을 비유하기도 한다. 고대 인도 국왕은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하사했다고 한다. 신하는 신성한 흰 코끼리를 죽이지도, 일을 시키지도 못하고 평생 모셔야 한다. 문제는 이 거대한 코끼리가 먹어치우는 음식이 엄청나고 수명도 70년에 달한다는 점이다. 결국 신하는 사육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된다.

지금 국회의 흰 코끼리는 댓글 사건이다. 지난 대선 이후 줄곧 정치를 옭아매온 이 사건이 실타래처럼 점점 더 얽히고 있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국정원과 국방부 직할 사이버사령부가 연계된 흔적과 댓글이나 트위터를 통한 공작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 달이나 늦게 개원한 국회는 국감을 계기로 부딪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검찰 수사과정이 공개되면서 외압과 항명 등 검찰 내분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가 전체가 이 사건의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다. 

겉으로 보면 민주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흰 코끼리를 받아든 쪽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드러내 놓고 공론화시킬 수도 없는 입장이다. 대선 불복으로 비칠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는 천막당사를 차리고 장외투쟁까지 하면서 불씨를 살려왔다. 고통도 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무엇 때문에 풍찬노숙했는지 모른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정당 지지율도 여전히 새누리당의 절반 수준인 데다, 실체도 없는 안철수 신당에 비해서도 10%포인트 가까이 뒤지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여당과 청와대는 돌아 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흰 코끼리를 하사한 왕처럼 말이다.

댓글 사건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이를 계기로 국정원의 잘못된 행태도 바로 잡아야 한다. 책임자 문책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여야가 이 문제에 올인하고 주요기관이 이 문제로 삐걱거리고 있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아니다. 경제활성화 등을 위해 정부가 제출한 법안 102건에는 먼지만 차곡차곡 쌓인다. 이러는 사이 경기침체로 직장을 잃고 전셋값 급등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가슴에는 울분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안이 댓글 사건밖에 없는가?”라는 대목에 이르면 국민들은 참담함마저 느낀다. 남편하고 국회의원의 공통점은 내가 골랐지만 참 마음에 안 든다는 우스개도 있지만 이쯤 되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넘어 분노까지 치민다.

국회의사당 앞에 해태상을 세운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정의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막무가내식이 아니라 합리적 정의다. 과거 재상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은 해태상의 꼬리에 손을 얹고 마음을 바로 잡았다고 하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흰 코끼리의 발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국민은 없는지 항상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제안한다. “국민 여러분! 국회에 흰 코끼리 석상 놓아 드려야겠어요.”
<기사 출처 : 건설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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