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1일 금요일

고혈압-당뇨환자 ‘막말 주의보’… 심장 멈추는 뇌관 될수도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2부>당신을 죽이고 살리는 말

나쁜 말, 몸까지 망가뜨린다


《 ‘나쁜 말’의 폐해는 감정에만 그치지 않는다. 본보 기자가 직접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나쁜 말’을 들은 직후 스트레스지수가 2분 만에 5단계나 수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또한 빙산의 일각. 언어폭력은 두통, 불면증, 근육통, 우울증은 물론이고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까지 유발한다. 장기적으로 사람의 인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도 결국 말이다. 동아일보 연중기획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2부에서는 말이 신체 및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봤다. 》

“야, 이 답답아. 똑바로 하란 말이야!” 

오늘도 직장 상사의 폭언이 시작됐다. 심장이 정신없이 쿵쾅거렸다. 등과 손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을 상사의 폭언으로 시작한 지는 벌써 4년째. 회계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 A 씨(37·여)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낮에는 두통과 현기증이, 밤에는 불면증이 찾아왔다. 뭘 먹어도 소화가 안 됐다. 목과 어깨, 허리는 전보다 자주 결리고 쿡쿡 쑤셨다. 우울한 감정도 잦아졌다.

한 달 전 찾은 병원에서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했다. 가벼운 목 디스크 진단까지 받았다. 심리상담을 진행한 의사는 “직장 내에서의 언어폭력이 우울증과 목 디스크 악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며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 폭언, 정신뿐 아니라 신체까지 파괴 

폭언에 장기간 노출되면 스트레스 등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 의료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A 씨처럼 신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막말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두통, 어지럼증, 불면증, 근육통, 우울증 등 가벼운 증상은 기본. 심할 경우 고혈압, 당뇨병, 불임 등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폭언에 노출되면 1차적으로는 흥분하거나 긴장했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당황한 나머지 숨이 가빠지거나 혈압이 상승해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진다. 심하면 식은땀이나 어지럼증, 두통 등을 호소한다. 폭언은 불면증과 불안증, 우울증, 근육통 등을 유발해 심신을 들쑤신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근육이 긴장상태에 빠져 평소 하지 않았던 실수도 반복할 수 있다. 

○ 자율신경계 호르몬 뇌파의 균형을 깨뜨려

이 같은 몸의 반응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뇌파가 막말에 반응해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자율신경계는 폭언에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리 몸은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가 균형을 이뤄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폭언과 같은 외부 자극에 노출되면 교감신경계의 활성도가 높아져 자율신경계 균형을 흐트린다. 몸에서는 가슴이 조여 오거나 심장이 빨리 뛰는 증상, 근육통, 식은땀, 어지럼증 등의 이상기운이 감지된다.

나쁜 말은 호르몬 분비에도 영향을 끼친다.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코르티솔은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임파구의 수를 감소시켜 면역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는 감염성 질환과 암 등 각종 질환에 취약해질 수 있어 위험하다. 폭언으로 인한 불면증, 우울증 등도 코르티솔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돼 생기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뇌파의 균형도 깨져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건강한 몸 상태에서는 알파파가 활성화되지만 폭언을 들으면 베타파가 활성화된다. 베타파는 긴장과 흥분 상태를 지속해 불안증을 일으킨다. 김 교수는 “실제 아내에게 비난받은 남편의 뇌파를 측정해본 결과 욕을 듣기 전보다 베타파는 더욱 항진됐다”며 “막말은 뇌파를 자극해 신체에 부정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폭언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위산과 펩신을 과다 분비시켜 소화불량, 위궤양 등을 생기게 할 수 있다. 

○ 고혈압, 당뇨병 환자들에게 막말은 시한폭탄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을 지병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막말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막말에 노출되면 코르티솔이 분비돼 혈당과 혈압 수치가 급격히 오르는 등 격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막말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에겐 단 한 번의 폭언도 방심해선 안 된다. 최홍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한 경우 뇌중풍(뇌졸중)과 심근경색 등이 한꺼번에 올 수 있다”며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취약한 사람에게 폭언은 특히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말의 상처는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오래간다고 입을 모은다. 잠깐의 소음처럼 어쩌다 한 번 받는 스트레스는 그 순간을 넘기면 금방 잊히곤 하지만, 폭언은 편도체라는 뇌의 회로에 오래도록 저장된다. 건강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폭언과 막말 중에서도 적대감이 동반된 비난 섞인 말이 신체에 가장 좋지 않다”며 “나쁜 말로 인한 충격과 질병을 피하기 위해선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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