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5일 수요일

개인회생 惡用… 연봉 6500만원도 빚 94% 탕감

[10년간 급증하던 개인회생, 브로커 단속 후 신청 급감]

개인회생 후 남는 채무 수兆… 금융기관·사회가 짊어져
"서민만 혜택받게 제도 보완을"


 연도별 개인회생 신청 건수 그래프
은행 대출로 빚이 4억5000만원 있는 이모(35)씨는 올 1월 법원에서 개인회생 결정을 받았다. 그는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가장으로서 면목이 없다"며 심사위원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 시간제 학원강사로 한 달에 200만원을 번다는 이씨는 이 결정으로 가족 생계비 155만원을 뺀 45만원을 5년간 매달 납부하면 나머지 빚을 모두 탕감받게 된다. 5년간 전체 채무의 6%인 2700만원(45만원×60개월)을 납부하면 5년 후에는 나머지 94%인 4억2300만원은 갚지 않아도 된다. 법적으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하다. 개인회생제도가 최장 5년간 본인의 능력 안에서 일정 금액을 갚으면 남은 빚을 면책시켜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은 지난달 이씨의 개인회생 결정을 전격 취소했다. 법원을 속인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월급 200만원짜리 시간제 강사라던 이씨는 대학 졸업 후 줄곧 IT 업체에서 일하며 연평균 6500만원을 벌었다. 주식 투자로 빚이 생기자 회사를 그만두고 월급 200만원짜리 강사로 신분을 위장했다. 고소득자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면 갚아야 할 돈이 늘기 때문에 꼼수를 쓴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수억대 빚이 있는 사람치고는 통장 내역이 너무 깨끗해 추가 서류를 계속 요구하자 결국은 꼬리가 잡혔다"며 "그동안 제출한 허위 서류만 수십개라 전문 브로커의 도움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이 작년 10월부터 개인회생제도 악용 사례 적발에 적극 나선 이후 적발 건수는 늘고 반대로 신청 건수는 급격히 줄고 있다. 작년 하반기까지 월평균 2100건을 넘던 신청이 작년 11월 1900건대로 줄었고, 올해는 평균 1700건대로 감소했다. 지난 10년간 늘기만 하던 개인회생 신청이 이처럼 20% 가까이 급감한 것은 처음이다.

가장 큰 이유는 브로커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브로커 개입을 의심하고 자료를 상세히 들여다보니 '대리신청인의 사무실 주소는 다 다른데 이름과 전화번호가 똑같은 사례'나 '신청 서류가 이름만 빼고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중앙지법은 지난 1월 브로커로 의심되는 19명에게 서면 경고장을 보냈으며, 조만간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할 예정이다.

개인회생을 신청해 구제받는 비율은 지난해 92%였다.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04년 이후 줄곧 90% 안팎이었다. 신청이 곧 빚 탕감이었던 셈이다. 높은 구제율과 복잡한 절차는 '브로커 천국'을 낳았다. 개인회생을 주로 맡는 한 변호사는 "신청에 필요한 서류만 최소 20개가 넘는다"며 "신청인은 조금이라도 빚을 깎으려 하는데 절차는 까다롭기 때문에 전문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개인회생제도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이후 빚더미에 눌린 서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10년 넘게 비슷한 심사 방식을 유지하다 보니 악용 사례가 급증하고, 총 채무액은 치솟았다. 전국에서 10만5800여명이 개인회생 신청을 했던 2012년, 법원이 표본조사를 해보니 평균 채무액은 7000만원이었다. 단순 계산만 해도 7조원이다. 법원 관계자는 "개인회생 신청자가 5년간 갚는 돈은 보통 채무액의 30~40%에 그친다"며 "나머지 수조원을 직접적으로는 금융기관이, 넓게는 사회가 짊어진다"고 말했다.

중앙지법 소속의 한 회생 심사위원은 "뭘 묻기도 전에 펑펑 울면서 대답도 제대로 못 하던 신청자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부 허위 서류에 거짓말이었다"며 "정말 힘든 사람들만 도움을 받도록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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