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3일 월요일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전 초대총리 별세..."살던 집 허물라"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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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싱가포르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초대총리가 향년 92세로 타계했습니다.

리 전 총리는 리더십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아시아 최고 부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는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지순한 기자!

얼마전 오보 사건도 있었는데, 결국 리콴유 전 총리가 별세했군요?

[기자]
1923년 9월 16일 생인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향년 92세로 타계했습니다.

앞서 리 전 총리는 지난달 5일 폐렴으로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집중치료를 받을 정도로 병세가 위중했습니다.

때문에 지난 주에 미국 CNN과 중국 CCTV 등이 리 전 총리가 타계했다는 내용의 오보를 낸 뒤 정정보도를 하는 등 큰 소동을 빚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싱가포르 총리실]
"리콴유 전 총리가 오늘 새벽 3시 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인데요, 싱가포르가 초대 총리 등 모두 31년 동안 총리를 역임하며 인구 300만의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기적과 신화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 GDP는 리 전 총리가 퇴직한 1990년에 1만2750달러를 기록했고요, 지난해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에 올랐습니다.

세계경제포럼 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입니다.

리콴유 전 총리 이같은 싱가포르 신화를 만든 주인공이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습니다.

[앵커]
강소국 싱가포르의 신화를 일군 리콴유 전 총리가 어떤 인물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 볼까요?

[기자]
리 전 총리는 영국 식민통치 시기인 지난 1923년 싱가포르에서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법학과에서 유학했고, 고국으로 돌아와 노동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후 화교와 노동계를 규합해 1954년 인민행동당을 출범시켰고, 창당 사무총장을 거쳐 초대 의회의 의원으로 당선됐습니다.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고요, 그 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26년 간 총리로 재직했습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경제기적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인터뷰:토니 청, 싱가포르 시민]
"리 전 총리는 조국을 위해 헌신했고 제3세계 도시 국가를 선진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죠."

리 전 총리는 재정 안정화와 서민주택 보급 그리고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고요,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가운데 한 곳입니다.

또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석유파동 속에서도 미래에 대비해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등 주요 사업에는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결국 이 같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는 싱가포르를 동서양 물류와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고요,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앵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리 전 총리가 비판을 받는 부분도 있죠?

[기자]
리콴유 전 총리의 리더십에는 비판과 논란도 뒤따르고 있는데요, 아시아의 히틀러로 불리는 그의 별명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벌금과 태형 같은 엄격한 통제를 통해 국가경영의 효율성을 높여 한때 경제적인 부에도 싱가포르의 국민행복지수가 전 세계 꼴지에 가깝게 나온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 전 총리의 이른바 '온건한 독재'나 '가부장적 통치'가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과 달리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요, 자신의 통치를 위해 무력을 동원하지도 않았고요, 또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나 인권침해 논란 또한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또 노조활동과 임금인상은 억제했지만 성과급 제도를 적극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리 전 총리는 1990년 고촉동 전 총리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는데, 2004년 고 전 총리가 물러난 뒤에는 리 전 총리의 첫째 아들인 리셴룽 현 총리가 취임했습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이 아니냐는 비판도 불러 일으켰는데요, 하지만 오랫 동안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긴 시간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리 전 총리는 유언을 남겼는데요, 자신이 살 던 집을 허물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사 출처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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