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일 금요일

부모는 맞벌이에,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동심'이 멍들고 있다. 서구형 체형과 인터넷 정보는 초등학생들을 '애어른'으로 급속히 바꾸고 있다. 몸도, 마음도 더 이상 10년전 초등학생이 아니다. 흡연과 폭력, 심지어 성범죄까지 벌어진다. 이른바 '3.5춘기'를 겪는 초등학생들의 배경에는 가정의 무관심과 입시위주의 경쟁교육 등이 있다.

머니투데이는 '마음이 아픈 초등학생'을 들여다 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한국을 이끌어갈 동량들의 실태를 분석하고 대안과 해법을 제시한다.

[[2013 초등학생 보고서④]맞벌이 느는데 돌봄서비스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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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찾은 서울 목동의 학원단지는 주상복합과 아파트 내에 위치해 아이들이 학원을 집처럼 드나들 수 있는 구조였다. /박소연 기자
지난 29일 오후 3시 서울 목동의 아파트 학원단지. 책가방을 메고 양손엔 학습지와 휴대전화를 든 아이들이 어디론가 바삐 걸었다. 행선지는 대부분 '학원'. 초등학교 3학년 유진이(9·가명)는 "얼른 숙제하고 30분 후 학원에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유진이가 다니는 학원은 영어, 수학, 논술, 생활체육 등 9개. 화·목요일엔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까지 받는다. 학원을 모두 마치고 귀가하는 시각은 오후 7~9시. 영양사 일을 하는 엄마와는 밤 시간에 논다. 매일 야근하는 아빠 얼굴은 보기 힘들다. 

유진이는 "친구들이랑은 학원에서 만나고 학교숙제는 학원에서 한다"며 "학원을 안 다니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갈 곳 없는 초등학생들이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맞벌이 부모가 아이들을 '케어(돌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방과 후 돌봄서비스를 늘리고, 부모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아이들 부모 품 떠나 '학원 뺑뺑이'…"친구 사귀러 학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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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은 초등학생들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난 6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0.9%로 중학생(70.6%), 고등학생(57.6%)보다 높았다. 방과 후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찾지 못한 맞벌이 부모에게 '학원 뺑뺑이'는 그나마 돈과 노력이 덜 들어가는 현실적 대안으로 지목된다. 

초등학생 4학년 아들을 둔 이모씨(38·여)는 "아이를 맡아줄 할머니나 도우미 이모가 없는 맞벌이 부모가 학원을 많이 보내는 건 기정사실"이라며 "아이들은 방과 후 친구들 집에서 모여 놀다가도 각기 학원으로 흩어진다"고 전했다.

전업주부들도 '학원 뺑뺑이'에 동참한다. 아이들이 학원에 모이기 때문에 "친구 사귀려 학원 보낸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 은평구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김모씨(39)는 "인근 학교 4학년 3반 남자아이들 전체가 우리 학원에 다닌다"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을 적게 다니는 아이들은 밤까지 놀이터에서 부모를 기다리다가 중고생들에게 담배를 배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또래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학원이 오히려 안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통계청 발표에서 맞벌이 가구 비율은 43.5%(509만7000가구)에 달한다. 대한민국 가구의 절반가량인 셈이다. 하지만 보육정책은 영유아에 치중돼 초등생 대상 '돌봄교실', '지역아동센터' 등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방과 후 돌봄교실 수용인원은 15만9000여명으로 초등학교 1학년생(42만여명)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부모들은 고육지책으로 학원을 선택한다.

◇아이들은 스트레스, 부모들은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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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괴롭다.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5년째 OECD국가 중 '꼴찌'다. 학원이 끝나도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 형민이(8·가명)는 "학원을 2개만 다니지만 엄마가 숙제하라셔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학원 11개 다니는 친구는 매일 학교에 지각한다"고 말했다. 

바깥에서 놀아야 하는 아이들은 점점 손안의 세상이나 수동적인 생활에 젖는다. 특히 스마트폰에 쉽게 중독된다. 의사 아빠와 피아노 강사 엄마를 둔 지훈이(8·가명)는 "태권도와 영어, 미술학원을 다니는 도중 스마트폰으로 '드래곤플라이트' 게임을 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토로했다. 

부모들도 괴롭다. 부모들은 사교육에 월평균 21만9000원(지난해 기준)을 쏟아부으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워킹맘' 정모씨(38·여)는 "아이들이 PC방, 스마트폰에서 유해물을 접해도 알기 어렵다"며 "아이가 학원 스트레스로 인격형성에 지장을 겪을까 걱정되지만 일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지속가능한 일-보육 위한 정책보완과 부모결단 절실 

전문가들은 일과 보육의 양립을 위한 정책보완을 촉구했다. 학원 의존을 줄이는 부모들의 현명한 '결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정책센터장은 "돌봄인프라 확충이 중요하지만 OECD 최장시간 노동 관행이 깨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기업이 정시퇴근제, 주40시간 노동시간을 준수하도록 정부가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순형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북유럽처럼 방과후에 학습이 아닌 체육, 예술활동 프로그램을 구축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길러주는 게 바람직하다"며 "어린 나이부터 과도한 학업을 시킨다고 성취동기가 강화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영숙 숙명여대 가정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서 교수는 "일하는 부모는 아이들에게 당당하되 밤에 잠이라도 같이 자고 주말은 같이 땀흘리며 부모의 애정을 표현해야 한다"며 "승진이나 아이 학습속도가 떨어질 수 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출처 :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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