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8일 목요일

낮잠 많이 자면 치매 걸린다고?

최근 몇몇 환자들로부터 “낮잠을 자면 치매에 걸리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TV의 모 건강프로그램에서 낮잠을 많이 자면 치매에 걸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들을 보니 ‘낮잠 잦아지면 치매 발병 조심해야’ 혹은 ‘밤잠 적고 낮잠 많으면 치매 위험’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걱정스러움이 당연했다. 이와 관련된 논란은 최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협회 세미나에서 촉발된 것이다. 

세미나 발표내용을 살펴보니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가 65세 이상 노인 500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더니 과도한 낮잠은 인지능력이나 치매초기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결과를 보니 오랜 시간 꾸준하게 낮잠을 자 온 사람들은 인지능력테스트에서 20% 정도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낮잠이 치매의 원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치매에 걸리면 초기증상 중 낮잠이 많아진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즉 낮잠을 많이 잔다고 해서 치매에 걸린다는 연구논문이 아니다. 낮잠은 치매를 유발하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낮잠을 즐기는 나라가 있다. 스페인이나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라틴아메리카, 지중해 연안 국가에는 전통적으로 즐기는 낮잠을 시에스타(siesta)라고 한다. 중동국가나 중국, 인도 등에서도 낮잠을 자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낮잠을 즐기는 나라에 치매환자가 더 많다는 증거는 없다.

낮잠은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다. 최근 매사추세츠대학연구팀의 연구 결과 유치원생들에게 낮잠(80분 정도)을 재웠더니 기억력 점수가 10% 이상 높게 나왔다. 낮잠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결과를 보면 낮잠은 기억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창조력도 높인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낮잠을 자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학습과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밝혔다. 익히 알다시피 낮잠은 심혈관질환의 발병률을 낮춘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도 ‘사람이 낮잠(晝眠)을 자지 못하면 기(氣)가 빠진다’고 했다. 

인간의 수면주기는 밤사이의 렘수면(꿈주기)과 논렘수면(숙면주기)을 제외하고도 하루가 대략 8시간 주기로 맞춰져 있다. 따라서 숙면을 취했어도 깨어난 뒤 대략 8시간 후에는 졸음이 오는 것이 당연한 생리적인 현상이다. 만일 아침 6시에 기상했다면 오후 2시경에는 졸음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 집에만 있는 어린이들의 수면주기와 빛을 차단한 동굴에서 실험한 수면주기를 따져 봐도 대략 8시간이다.

하지만 낮잠을 무작정 많이 잔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낮잠을 자는 시간은 이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밤에 잠을 충분하게 자지 못해 어떨 수 없이 자는 낮잠이라면 1~2시간 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보통 20~30분 이내의 낮잠만으로도 충분하다. 너무 긴 낮잠은 생체리듬을 깨뜨리기 때문에 불면증의 원인이 된다. 나이가 들어 밤잠이 줄고 낮잠이 늘어가는 것은 노인의 정상적인 수면패턴이다. 따라서 낮잠을 많이 자면 치매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치매 초기에 낮잠이 많아지는 증상이 있을 뿐이다. 

필자도 20~30분 정도 낮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축복과 다행이라 여길 것이다. 현대에도 미국 뉴욕에는 메트로냅(metronaps)이라는 낮잠캡슐을 대여해 주는 곳이 있고 일본 도쿄에는 낮잠방이 있다고 한다. 낮잠은 밤의 부족한 잠을 채워주거나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풀어줌으로써 일의 능률을 높일 뿐 아니라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는 걱정 없이 건강한 낮잠을 청해보도록 하자.
<기사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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