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8일 금요일

목회는 서열이 아니고 동역이다

한국교회에서 목회하기 어려운 점 중 하나로 서열목회 분위기가 있다. 목회자 간의 질서와 예의는 서열의식과는 엄격하게 다른 인격적인 문제인 동시에 신앙적인 문제요 신학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 안에는 목회자들 상호 관계 속에 너무나 뿌리 깊은 서열문화가 만연되어 있다.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복음을 전할 때 어려워했던 점이 사랑방에 들어가 앉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좌석의 서열이었다.
 
목사에는 위임목사, 담임목사, 부목사, 전도목사, 기관목사, 선교목사, 원로목사, 공로목사, 은퇴목사, 유학목사, 군종목사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가 위임목사(흔히 담임목사로 부름)와 부목사의 관계이고, 그보다 더 어려운 관계는 새로 부임한 위임목사와 은퇴한 원로목사와의 관계이다.
 
이들 상호 관계 속에는 한 두 가지의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긴장과 갈등도 많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8년 정도 부목사로 사역을 한 바 있다. 부목사 때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목사'가 될까 하는 점이었다. 그럴 때, 쉽게 찾은 기준은 (위임)담임목사의 마음을 가지고 목회하는 일이었다. 자평한다는 것이 어폐가 있지만, 담임목사의 마음을 가지고 부목사로 목회했던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담임목회를 시작하면서 부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에게 그와 같은 내 생각을 피력하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담임목회를 시작한 지 채 6개월도 못 가서 그런 나의 생각과 요구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이유는 목회의 기준은 담임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같은 신념과 요구를 곧바로 철회했고, 담임목사부터 부목사 전도사 모두가 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목회하실까'를 고민하면서 목회하자고, 제안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할 때,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난 온갖 시시비비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혼자 씨름하다 장인 이드로의 권고를 받아들여 온 백성들 가운데 능력 있는 사람들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으로 세워 동역한 일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그저 쉽게 서열과 계급이라 생각하겠지만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은 모세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배우고 공유해서 백성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보여주는 '동역자들'이었다. 모세도, 그들 그 누구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기준 삼아 백성을 다스리고 이끄는 동역자들이었던 것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위임)담임목사가 부목사와 전도사들 앞에 가부장적이고 제왕적인 리더십의 상징으로 서 있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하신 말씀 앞에서 (위임)담임목사가 가장 먼저 예수님의 길과 섬김의 본을 따르는 교회로 다시 세워지기를 갈망해 본다.
 
주와 선생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이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는 것이 옳다"하신 말씀에 응답하여, 가부장적인 서열목회를 버리고 동역의 목회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박은호 목사 / 정릉교회
<기사 출처 : 기독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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