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일 화요일

카르보나라


동아일보DB
정동현 셰프
영국 살 때 내 동거인이었던 알베르토는 이탈리아 출신답게 파스타 마니아였다. 그의 주식은 달걀 파스타였다. 그 흔한 마늘, 토마토 같은 부속물은 전혀 쓰지 않았다. 레시피랄 게 아예 없었다. 삶은 면에 달걀노른자를 버무려 소금과 후추를 뿌리기만 했다.

“너네 고향에서도 이렇게 해먹어?”라고 물으면, 태양의 도시이자 피자 원산지인 나폴리 출신답게 알베르토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럼! 맛있잖아. 간단하고.”

알고 보면 알베르토가 먹던 달걀 파스타는 카르보나라의 원형이다. 그런데 카르보나라에 할 말 많은 정통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카르보나라에는 달걀이랑 치즈만 쓰는 거라니까” “크림과 우유를 쓰는 건 영미식이야”라며 핏대를 세운다.

그래서 세계적인 셰프는 어떻게 카르보나라를 만드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초대한 이는 영국의 전설적인 셰프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다. 그는 1994년, 서른세 살에 미슐랭 3스타(당시 최연소 기록)를 받으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가 1999년 홀연히 은퇴했다. 그가 파스타를 삶는 방식부터 범상치 않다. 소금물이 아니라 닭 육수에 삶는다. 전주비빔밥을 할 때 쇠고기 육수로 밥을 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육수가 스며들어 더 맛있어진다.

“베이컨, 치즈, 달걀노른자, 크림, 닭 육수, 베이컨과 치즈로도 충분하니까 파스타 삶는 물에 간은 하지 않는 거야.”

“아∼, 그렇군요. 면 삶는 물에 올리브유는 넣나요?”

“글쎄, 파스타 삶는 물에 기름을 넣을지 말지 논쟁들을 하는데, 난 넣어. 아, 말했나? 우리 엄마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베이컨이랑 치즈는요?”

“베이컨은 따로 볶아 놓고, 파르메산 치즈도 갈아 놔. 달걀노른자와 크림은 큰 볼에 따로 섞고.”

“예스 셰프. 근데 면은 얼마나 삶죠?”

“봉지마다 설명이 다른데 나는 그걸 따르지 않아. 봉지에 적힌 것보다 1분 30초 정도 덜 삶아. 왠지 알아? 파스타를 끓는 물에서 건져내도 잔열 때문에 계속 익거든. 봉지에 적힌 대로 삶으면 알 덴테(Al Dente·씹을 때 단단한 느낌이 난다는 뜻)와는 이별이지. 꼬들꼬들해지는 게 아니라 푹 익어서 흐물흐물해진다고.”

“면 가운데에 흰 심이 살짝 남도록 삶는 게 중요하군요?”

“말이라고 하니 그걸? 이제 면이 다 익은 것 같군. 아까 크림이랑 달걀노른자 섞어둔 그릇에 면을 넣고 잘 비벼. 파스타의 잔열로 익히는 거야. 팬 위에서 가스 불로 익히면 달걀이 스크램블이 돼. 한 가지 더 알아둘 게 있어. 나는 파스타에 치즈를 섞지 않아. 소스가 너무 걸쭉해지거든. 소스를 비빈 파스타를 그릇에 담고 따로 치즈와 베이컨을 뿌리면 완성이지.”

“좋아요. 마르코!”

마르코식으로 만든 카르보나라는 익숙한 맛이다. 크림 때문이다. 진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크림의 향미가 입안 가득 맴돈다. 그럼 내 친구 알베르토가 만든 정통 카르보나라의 맛은 어떨까? 크림을 쓰지 않고 달걀노른자와 치즈로만 맛을 낸 것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맛있다. 크림이 빠져 진한 맛은 덜하지만 담백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뭐가 더 맛있냐고? 글쎄다. 이탈리아 친구가 먹던 달걀 파스타도, 마르코가 만든 카르보나라도 나는 다 맛있다. 그럼 뭐가 원조에 가깝냐고? 참내, 도대체 원조가 뭔가? 원조 김치는 뭐고 원조 김치찌개는 뭔지 대답해줄 한국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쯤 되면 ‘맛있으면 그만이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르코도 이렇게 말했다.

“크림을 넣고 안 넣고는 중요하지 않아. 맛만 있으면 되는 거야.”

오는 주말에는 모두가 아닌, 단 한 명을 위해 카르보나라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크림과 달걀노른자를 잔뜩 섞든, 정통파답게 달걀과 치즈만 쓰든, 그건 당신 맘대로다. 카르보나라를 호로록 입 안 가득 넣고, 웬만한 와인도 한잔 마시면서, 형편이 된다면 진하게 입도 맞추는 거다. 그리고 설거지는 나중에, 아마 내일 점심쯤에나.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3)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트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
<기사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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